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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택시기사 "부천까지 8만원짜리 대리운전해 준 사연"

택시기사 "부천까지 8만원에 대리운전해 줬다"
택시기사와의 이야기 下 - "경제 살아야 우리도 살죠" 


(상편에 이어)

"어디 택시기사 설 자리가 있습니까."

택시기사는 "그나마 우리가 설 자리는 새벽 할증 타임인데 그나마도 서울 어지간한 덴 대중교통이 새벽 2시까지 있고 대리운전도 있겠다"라며 헛헛 웃었다.

"헌데 뭐 어떤 일 하세요? 연예인?"
"하하, 기자질합니다. 차림새가 이상하나요?"
"타실 때 사람들과 인사하는 걸 보고..."
"아아, 거기 분들은 연극인들이예요. 그 사람들은 진짜 연예인들이죠."(당일 취재한 글은 http://kwon.newsboy.kr/1327)

그런데, 대리운전 이야기가 나온 상황에서 예상 못했던 이야기가 하나 흘러나왔다.

"이런일이 있었어요. 한 밤 중에 누군가 차를 세우던데, 태워달라는게 아니라 나더러 운전을 해 달라는 거예요."

바깥엔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고. 택시기사에게 대뜸 트럭을 몰아달라 부탁하는 거였다. 정황을 짐작컨대 분명 술을 마신 모양이다.

"나더러 4만원 줄 테니까 부천까지 차를 몰아달라는 겁니다."
"그 때 거기가?"
"천호동... 풍납동이었죠. 거기서 부천까지요."

그는 처음엔 거절했다고 밝혔다.

"첨엔 안 한다고 했죠. 아 요새 대리운전이 좀 쌉니까.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헌데, 대리운전은 싫대요. 그러더니 더 많이 제시하더라고요. 6만원을 불러요. 근데 내가 암만 생각해도 이상해서 또 싫다고 하니까, 그럼 8만원 줄 테니 가자는 겁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내를 가로질러야 한다지만 꽤나 두둑한 페이다. 객관적으로도 선뜻 이해가 안 가는 거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결국은 받아들였죠. 함께 가면서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8만원 주고 믿을만한 사람한테 맡기는게 대리운전보다 낫다'는 겁니다."

사연은 이랬다. 이미 한 번 대리운전을 써 본 경험이 있던 그 사람, 나중에 생각치도 않았던 문제에 둘러싸였다는 거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아 집에 돌아가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글쎄, 뭐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날아든 교통위반 딱지가 3장이랍니다."
 
"허허, 참."

"벌금이 얼마야. 그런데 자기는 어떻게 왔는지 도통 기억도 없고."

그러나 범칙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찾아보니 금품도 사라져 있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해요. 기억은 전혀 없는데 뭐라 따질 수도 없고. 결국은 벌금 물어야 돼, 피해는 피해대로 봐... 싸게 먹힌다고 대리운전 맡겼다가 이래저래 후회가 막심하죠. 그러니까 차라리 8만원 주고 나한테 키 맡기는게 훨 낫다고 하는 거예요. 그제서야 이해가 가더라고요."

잘못된 대리운전자를 만났다간 상황에 따라 땅을 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택시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별의별 인간군상을 다 전해 듣지만 이런 케이스는 또 처음이다.

"택시는 놔두고 가셨겠군요."
"차야 뭐, 나중에 다시 찾으러 갔죠. 뭐 살다보니 그럴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미터기가 19000원을 넘겼다. 나는 푸념하며 말했다.

"요샌 차비도 만만찮은데, 그냥 조그마한 오토바이(스쿠터)하나 중고로 구할까 생각도 합니다. 그게 싸게 먹힌다더라고요."
"아아, 헌데 그건 사고났다 하면..."
"죽죠. 하하"
"바로 가죠. 하하"

끔찍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잘도 나눈다. 그렇게 대학로에서 까치산까지 나온 요금이 19680원. 차에서 내리기 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택시를 보면, 경제가 어떤지 곧장 알죠. 밤 중에 빈차가 없으면 살만 한 세상이고, 많으면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는 겁니다."
"맞아요. 돈 없는데 택시를 타고 다니나요. 저도 좀 형편이 좋아져야 여차하면 손님으로 찾아올 텐데."

차를 내려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새벽 2시.
어려워진 경제상황, 택시비 인상요금은 기사에게 그나마 있던 기본요금 손님마저 빼앗아 갔다. 유류비는 천정부지로 솟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이르렀다.

대리운전이라고 하는 저렴하고 편한 방법이 생겨났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면 이게 또 예기치도 못한 불상사로 이어진다. 때문에 수만원을 치르면서도 택시기사에게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 불신의 시대다.

미터기 요금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즐겨야 하는 서민도 있다. 
교통비 절감을 위해 스쿠터를 생각하다 '까딱하면 죽는다'는 말을 웃으며 주고 받고, 그러다 "어쩌겠어요, 어쩔 수 없는 거지"라고 서로 수긍하는 시추에이션도 여러모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도시의 봄은 정녕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