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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바에서 서비스 칵테일 한잔 받는 법?

[오아시스] 바에서 서비스 칵테일 한잔을 받다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요새 연재물을 위해 매주 주말이면 바를 찾는다. 혹 아직 바를 찾은 적 없는 당신에겐 이런 기대감이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한 잔 사죠"하고 바텐더가 내놓는 공짜 술을 받아드는 모습... 그리곤 "아아, 내가 드디어 단골이 되었구나"하며 자그마한 기쁨을 누리는 그런 그림 말이다.
난 그랬다. 바텐더와도 어느정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겠다, 해서 언젠가는 서비스 한 잔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하지만, 그 기대를 크게 부풀릴 순 없었다. 딱 한잔만 마시고 자리를 떠 버리는, 실속 없는 손님인 걸.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딱 다섯번째 방문만에 서비스 한 잔을 받아들었다.  


62. 바에서 서비스 칵테일 한잔을 받다
 
2주전 토요일 밤.
내 말을 들어주는 바텐더가 있다. 그래서 바의 문을 밀고 들어설 때면 마치 고해성사를 위해 성당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저 쪽에서도 이런 내게 화답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곧잘 들려준다. 개인적으로는 환영할 사안. 서로가 신부님이 되어 토닥대는 시간이라 해야 하나.
마침 그 날은 내 생일이 하루 지난 날이었다.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해 놓고서 달그락 대던 나, 바텐더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게 내겐 자축하는 한 잔" 이라고. 그 날 선택한 한 잔은 피치 크러쉬.
     
  
    

  
 
"아 그런가요?"하며 웃어보이는 그에게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마침 그는 지난 주, 사랑하는 이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교제를 허락받은 상황이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얼음까지 와드득 씹어먹으며 깨끗하게 한 잔을 비운 나, 그제사 또 하나 배웠다. 칵테일은 양이 많다고 오래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도수 낮고 시원한 이 칵테일은 여름 밤에 그냥 들이키기 딱 좋았다.
"오늘은 한 잔 더 할까요?"
나로선 나름 파격적인 한 마디였다. 주머니 사정상 '딱 한 잔'이란 나만의 규칙을 달고 있었기에. 하지만 이 날은 특별한 날이니까. 만 스물아홉, 이제 20대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1년이 시작됐고 그 우울한 자축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만끽하고 싶었다. 마침 월급날이 돌아온 것도 한 몫했다. 그리고, 무더운 날씨에 낮은 도수의 술을 시킨 것이 결정을 부추긴 점도 없지 않았다.
'다음 코스'를 처음으로 주문한다. 내가 선택한건 스크류 드라이버. 언더락 스타일이 맘에 든 탓에 이걸로 선택했다.
       
  
    

 

아직 연재에 소개하지 않은 이 술로 아직 가시지 않은 갈등을 달랬다. 그 와중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소개한 일을 잘 치루고자 헤어스타일에 수염까지, 한층 말끔해진 그는 그대로 고민이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되면 다른 직업을 생각해야 한다나. 아직 한국에선 바텐더라는 직업이 가정을 꾸리는데 있어 여러모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난 나대로 고민이 산재했다. 그를 바라보며 하고픈 일, 이루고픈 일 앞에서 솔로라는 사실은 축복임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많아지는 고민들, 삶의 스크래치가 홀로 맞는 외로운 생일의 여운을 뒤흔든다. 바를 앞에 두고 조금은 묘하게 흐르는 정적. 
그런데 말이다. 바에서 남자들이 위스키잔을 앞에 두고 꺼내는 공유의 한숨은 그런대로 매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잔 더'를 결정한(소심한 결정이지만) 것엔 이것도 한 몫했나 보다. 그리고, 이것이 바텐더에게도 약간의 관대함으로 작용한 것일까.
스크류 드라이버도 다 마셔버렸을 때, 그는 "잠깐만요. 이건 제 선물입니다."라며 새로운 잔을 꺼냈다. 바텐더가 하루 늦은 생일을 축하하며 내게 건넨 선물, 그것이 바로 'E.T' 한잔이었다.
     
  

    

스트레이트 잔에 삼중으로 펼쳐진 화려한 색채. 미도리, 베일리스, 보드카의 섞이지 않은 조합이 만들어낸 미니 칵테일이다.
"이건 원 샷입니다."
그가 마시는 법을 코치한다. 색다른 재미다. 나는 고맙게 받으며 단숨에 들이켰다. 초콜릿 향이 은은한 달콤한 술이었다.
"맛있네요."
정말이다. 고독을 안주로 씹던 내게 있어 이는 단순히 3000원짜리 칵테일을 떠나 타인에게 받아드는 뜻밖의 선물이었고, 진심이 담긴 '장인'의 선물이기에 감동은 더했다.
"생일, 정말 축하드려요."
그 말과 곁들여진 서비스 한잔의 가치는 컸다. 선뜻 술값을 지불할 때, 기분좋게 그것을 행할 수 있음은 손님에게 또다른 행복이다. 술, 그 자체를 넘어 다른 무엇을 위해 바를 찾을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몸소 배운 경험이었다.
어디, 서비스를 받게 된 경유를 정리해 보자. 먼저, 나는 축하받을 어떠한 동기를 갖고 있었고, 불과 다섯번째 찾아온 손님이었지만 그럭저럭 바텐더와 마음을 터 놓은 상황이었다. 그의 일에도 축하를 해 주었고, 둘의 대화는 공통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가장 큰 것은, 여느때보다 두 배로 늘어난 매상이겠지만.
당신도 칵테일 바에서 서비스 한 잔을 받아보고 싶다면 참조할 법 하지 않겠는가 해서 귀띰하는 셈이다. 술은 목으로 넘기지만 손님과 바텐더의 '인정'은 가슴 깊숙히 넘기는 법. 삭막하던 일상에 잠깐의 오아시스가 되어 줄 공짜 한 잔이 아닌가. 바를 찾아 즐겁게 한 잔을 추구하는 당신에게 뜻하지 않은 보너스가 날아들지 모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