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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신사임당보다 47년 앞선 최초 여성화폐모델, 내 고모님입니다

[오아시스]신사임당보다 47년 앞선 최초 여성화폐모델, 내 고모님입니다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드디어, 오늘 5만원권이 발행됐다. 아침에 은행문이 열리는대로 찾아가 딱 1장 교환했다. '두번째' 여성화폐모델 신사임당의 초상이 그려진 이 지폐를 들고 '첫번째' 여성화폐모델을 찾아 갔다.

47년전, 비록 한달 남짓한 짧은 시한이었지만 여성으로선 최초로 화폐에 얼굴을 비쳤던 내 고모님 말이다.

  

   
  
  출처 다음 블로거 도원 님 (http://blog.daum.net/tmvpdltm/5277290?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tmvpdltm%2F5277290)   



60. 신사임당보다 47년 앞선 최초 여성화폐모델, 내 고모님입니다

 

검색해보면 이번 5만원권을 두고 '국내최초로 지폐에 여성이 등장한 사례'라 소개하는 기사들이 주루룩 나오는데... 정확히 말해 '오보'입니다. 냐하하.

1962년,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한국엔 이미 여성이자, 어머니인 화폐의 주인공이 있었다. 위 사진이 그것으로 여기의 모자상은 고모님, 그리고 나와 나이차가 꽤 나는 사촌형이다. 이젠 뭐... 저 색동옷 동자도 50줄. 고모는 어느덧 칠순을 내다보지만 꼿꼿하게 편 허리와 단정하게 틀어올린 백발이 인상적인 노부인이다. 화폐를 자세히 살펴보니, 저 인상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화폐는 국내 최초로 여성모델이 등장한 지폐라는 타이틀 말고도 '국내 최단명 기록'이란 비운의 타이틀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화폐개혁으로 발행 후 1달을 채우지 못하고 유통이 중지된 것. 조폐공사에 근무했던 연으로 '역사적인 모델'이 되셨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제 저 백환짜리는 수집인들 사이에서도 레어한 아이템으로 꼽히게 됐다고.

강산이 다섯번쯤 변하는 시점에 등장한 오늘의 5만원권. 이렇다보니 화폐모델로선 울 고모님이 신사임당보다도 선배인 셈이다. 어차피 며칠이 지나면 별 의미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를 확인하는 개인적 감회가 남다르실 터, 봉투에 이 한장을 담아다 드리기로 했다. 조카가 드리는 별 거 아닌 성의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음을 곧장 깨달았다. 현재 고모님은 전국을 통틀어 손꼽히는 냉면전문점을 운영 중인데, 매일마다 카운터에서 은행원 못지 않게 돈의 흐름을 접하시다 보니... 나보다 더 빨리 이를 접하실 것이 자명하건만 우매하게도 왜 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오후에 가게를 찾았더니 마침 출타 중이시다. 대신 자리를 지킨 것이 바로 저 모자상의 어린 색동옷 동자님. 이같은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니나다를까, 웃으며 5만원권을 여러장 꺼내보였다.

"이미 어머니께도 몇 장 드렸다."

아무 의미가 없게 됐지만서도, 이 마음만큼은 전해주시겠단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묻고 싶을 것이다. 화폐모델에 올랐던 당신의 고모님은 과연 어떤 인물이냐고. 내가 접한 바, 자신있게 단언한다. '돈을 다룰 줄 아는 분. 해서, 화폐모델이 될 자격이 있는 분'이라고.

4년 전, 대학 졸업 직후 꿈 하나를 품고 서울에 입성했던 나는 잠시 고모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밥벌이를 했었다. 사회초년생의 스타트를 '서비스업의 꽃'(?)인 서빙으로 끊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싯적엔 명절 때나 가끔 얼굴 뵙던 그 분을 몇개월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업장에서 고용주로 모셨다보니 그 주된 관찰의 대상은 돈을 대하는 모습과 씀씀이였다.

소문난 음식점의 사장님이니 중산층 이상은 되는 셈인데, 여유있게 돈을 운용하는 분은 아니었다. 한번은 서랍장 속에서 오래묵은 카세트 녹음기를 보여주시는데 30년이 넘었다나. 비슷한 연배의 라디오 역시 배터리 뚜껑은 간데 없고 고무줄로 칭칭 묶어놨다. 좋고 값싼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괜히 살 필요 뭐 있느냐며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 많은 골동품들을 보고 있자니 이젠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혼백이라도 담겨져 있지 않을까 싶어 경외로웠다. 조금만 깨어져도 새것 장만을 생각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언의 가르침. 망가지면 고쳐쓰고, 먼지가 끼면 닦아내면서 수명이 다 할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성격의 증표다.

식성은 소박해 장아찌나 연근이 이른 저녁 반찬의 주를 이루고 죽도 자주 드신다. 손님들이 북적대던 점심시간을 넘겨 한가한 오후가 되면 아이스크림 군것질을 즐기시는데 가장 좋아하시는게 당시 개당 500원 하던 '호X마루'였다.(지금은 700원) 천원권 두어장을 받아들고 심부름을 가면 이걸로 서너개 사다 주위 사람들과 나눠드시는게 하루의 즐거움. 어머니가 그러하면 자식도 닮는 법. 사장님 칭호를 물려받은 저 모자상의 아들 역시도 식당 내 선풍기가 망가지면 손수 고쳐쓸 만치 검소한 습성이 배어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근검절약을 돈을 다루는데 있어 으뜸으로 친다 하면, 이만한 모델이 또 있겠는가. 신사임당이 자식에게 충과 효의 예를 몸에 배게 한 스승과도 같은 어머니였다면, 내 고모님은 돈 다루는 예를 몸에 배도록 솔선수범해 보인, 화폐모델로서 더할나위없이 적격인 어머니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