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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언노운 우먼, 'W'로 보는 잔혹한 동화의 일급 미학

[리뷰] '언노운 우먼', 'W'로 보는 잔혹한 동화의 일급 미학



1. W... Wonderful... 한없이 별 다섯개에 가까운 네개반

영화 '언노운 우먼'의 개봉일은 7월 2일. 그러니까 15일 열린 배급&언론시사회는 상당한 시간여유를 두고 열린 셈이다. 뜻하지 않게 수작 하나를 건져 이렇듯 소개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도 기쁘다.

요즘은 사양길에 접어든 비디오렌탈샵. 그러나 90년대만 해도 각 동네마다 열려있던 각 가게는 절대 불멸할 것만 같이 활황이었다. 요즘같은 인터넷 평단이 없던 그 시절, 각 가게마다 월간으로 비치되던 신작 정보지는 매우 유용했는데 당시 이 정보지에서 가장 눈길을 끌던 것이 기대 신작의 평점란이었다. 기억하건대 별다섯개 만점을 기준으로 해리슨포드의 도망자가 별 세개반이었고, 쥬라기공원이 네개였다. 극장가에서 흥행성적과 작품성을 앞서 검증받은 대작들은 대개 세개반에서 네개반 사이에 놓였다.

그렇다고 후한 점수가 남발됐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전설의 별 다섯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것. 딱 한번 봤던 기억인데 바로 '베를린 천사의 시'였다. 누가 매긴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점을 몇년에 한번 꺼낼 만치 아껴둔 것은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안그럼 다음달 호를 기다리는 재미가 반감됐을 테니.

마찬가지로, 영화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원더풀'을 쏟아내거나 '만점짜리'를 함부로 부르는 것은 자중한다는 게 내 나름의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극찬을 쏟고 싶어졌다. '한없이 별 다섯개에 가까운 네개 반'이라고 말이다. 완벽한 별 다섯은 아니지만.

평소때도 작품을 박대하지는 않지만 이쯤하면 나름 파격. 왜 이처럼 후한 점수를 매겼는지 하나하나 설명 들어간다.

     

2. W...Woman... 여자... 잔혹동화 속 비련의 히로인

제목에서도 언급되는 '우먼'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작품 속에서 여성은 잔혹한 동화의 운명에 끌려가고 또 주도하는 주연이자, '실은 세상 자체가 잔혹한 동화의 네버엔딩스토리다'를 줄곧 언급하는 전달자, 약탈 당하는 약자이자 피해자면서 또 누군가의 가해자가 되어 살아가는 비련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결국엔 또다른 '나약한 여자'에게 자신의 유린당한 운명과 그간 행한 과오를 속죄하듯 은혜를 베푼다. 어찌 보면 여성영화 같기도 한 서스펜스. 하지만 남성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니...

 

3. W...World... 잔혹한 세상... 약자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그려내는 소우주

앞서 밝혔듯 작품은 누군가에게 피해자로, 또 가해자로 살아가는 비운의 여인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언노운 우먼' 일레나는 지난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 그리고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치는 운명의 피해자. 그런데 그 몸부림은 다른 이를 해치는 가해의 제스처가 된다. 정작 자신을 상처입힌 자에겐 끝없이 피해를 당하면서 호의를 베푼 이에겐 가해를 입히고야 마는 서글픈 존재. 자의로, 또는 타의로... 살아남기 위해 이같은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하는 모습은 우리들이 씁쓸한 마음으로 결국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그러진 현실의 축소판이다. 이것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비록 작품 속에선 나쁜 남자로 인한 여성의 고난으로 그려지지만) 모두가 고민하고 공감해야 할 인류의 과업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떼아와 그 동무들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세계도 소외받은 자에겐 한없이 가혹할 수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일어서 저항했을 때, 그제서야 떼아는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받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방면에서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것은 작품의 덤인가, 아니면...

     
  
4. W...Why... 모성으로 터치한 동서고금 초월의 공감대, 플러스 탄탄한 스토리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하지만 감상한 결과 그 못지않게 휴머니즘의 감동 또한 비중을 두고 있다.

이 두가지는 모두 공통된 조건을 내재한다. '왜'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 작품내내 끊임없이 관객을 납득시켜야 할 의무다. 그 어려운 두마리 토끼 잡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니 짜임새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먼저, 미스테리 스릴러를 구성하는 탄탄한 스토리 완성도. '왜 저렇게 됐지', 내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라는 자문이 관객에게서 나올 때, 위화감이나 엉성함 없이 촘촘한 인과관계나 설득력으로 그것을 충족시켜 준다면 그 작품은 뛰어난 심리극이 된다. 내 보기에 언노운 우먼은 딱히 이 점에서 흠을 찾기 어렵다.

두번째. 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합작품은 우리 정서의 유전자와도 매우 일치하는 매력을 가졌다. 물론 문화적 갭은 존재한다. 베이비시터나 식모라는 직종이 존재는 물론 개념까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우리나라 사람에 있어 넓은 집 안에 방 하나를 내 주고 함께 살아가는 이 같은 직종이 저렇게 활성화 되어 있는 저 나라의 모습은 이질적일 수 밖에.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나면 작품의 축인 일레아와 소녀 떼아의 인간적 관계 진행은 매우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모성'이라고 하는 동서고금의 공감대가 한국인의 정서에 있어서도 별 무리없이 펼쳐지는 것. 그리고...

 

5. W...Whisper... 엄마의 속삭임은 세상을 살기 위한 현실적 홀로서기 교육으로

떼아가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하면, 일레나는 부드러운 숨결의 노래로 이에 응한다. 엄마의 딸에 대한 애정의 속삭임이다. 

하지만 일레나는 떼아를 그저 보호하지만은 않는다. 아이가 혼자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강경한 훈련을 시킨다. 부모가 이를 봤다면 기겁하고 내쫓아 버렸을 잔혹한 아이교육법이다. 그러나 내겐 이 훈련이 더할나위없는 애정의 증표로 보여졌다. 냉정한 현실에 곧바로 서서 저항하도록 시킬동안 아이의 불치병도 어느덧 해소됐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작품을 단순히 공포어린 심리극에 그치지 않고 휴먼 드라마의 색까지 입혔다.

     
  
6. W...Wind. 일레나와 떼아... 때론 산들바람처럼,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는 명연기의 향연  

작품의 플러스 포인트는 또 한가지 있다. 바로 작품의 기본적 미덕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배우들의 연기.

일레나 역을 맡은 배우 크세니야 라포포트. 그녀 이름은 처음 들었지만 이번 첫인상은 더할나위 없이 강인하게 남았다. 시종일관 작품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 존재감과 능력은 찬사하기 부족함이 없다. 과장 없이 절제된 표정연기로 때론 하얗게 질려버린 공포감을, 때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언노운'의 영역을 펼쳐보인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74년생. 저 나이에 저 정도의 연기력이라니, 한순간 동년배의 국내 배우 중 저만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누가 있을지 머릿속 데이터를 찾아보고 있었다.

다른 한 축은 놀랍게도 아역배우가 떠받치고 있다. 떼아 아다처의 클라라 도세나는 보기 드문 아역연기로 시선을 붙든다. 때론 섬찟하게 때론 아이답게 변화무쌍한 가면을 바꿔쓰는데 그 유니크함을 어디서 따로 찾아 비교해 볼 수 있을까.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도 흠 잡을 때 없다. 사악한 몰드의 미첼 프라치도, 이 잔혹동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여인 발레리아 아다처의 클로디아 게리니, 남겨진 또 하나의 피해자 도나토 아다처의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 그리고 돌아온 의식 하나로 보는 이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피에라 데글리 에스포스터까지.

 

7. W...Wing. 작품의 양 날개, 장중한 음악과 잔혹감 배제한 극대의 공포감 

언노운 우먼은 시네마천국의 두 거장,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하모니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멋진 영화음악은 이 작품에서도 훌륭한 백그라운드로 작용한다. 때론 소름끼치도록 공포스런 음악이, 반면 일레나와 떼아의 교감이 이어질 때는 아름답고 따스한 선율이 울려퍼진다. 매력적인 작품의 메이크업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다운 공포감도 잘 살아 있다. 흥미로운것은 잔혹한 장면을 철저히 배제한 순간에서도 배우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명암, 음악만으로 극대화된 공포감을 선사한다는 것. 만일 당신이 정육점을 연상케 하는 슬래쉬 무비에서 정작 공포감은 얻지 못하고 '징그럽다'는 불쾌함만 얻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점수는 곧장 배가될 것이다. 양날개의 포진.

이 작품은 여러모로 자극적인 장면이 많다. 전라노출에 음모노출도 틈틈이 나오는데다 피가 흥건한 장면도 여럿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일뿐, 결국 극전개에선 배우의 연기에서도 그러하듯 작품 역시 적절한 배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8. W... When... 언젠가 행복해질 때

작품의 대미는 '완벽하지 않은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나.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거 같으니 이정도 선에서만 리뷰를 마무리한다. 지난 날, 그러니까 일레나가 항시 '끝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던 과거의 보상은 곧장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과거의 흔적이 더욱 희미해졌을때 비로소 일레나는, 그리고 아울러 떼아는 여운 깊은 대미를 함께 장식한다. 무모하리만치 처절했던 한 인간의 투쟁은 비록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크래치를 남겼지만 결국 뭔가 스스로 달리 바꿔놓은 미래를 맞이함으로서 보상을 받았다.

자. 우린 어디서 곱씹어야 하는가. 아니. 보다 광범위한 질문의 영역을 열어놓는 편이 좋겠다. 당신은 감상 종료 후 이 작품에서 무엇을 생각할 거리로 뽑을 것인가. 당신이 작품에 투영한 자기자신의 스크래치와 지난날의 시간은 결국 어떤 해답으로 돌아왔는가. 당신의 삶과 그를 둘러싼 세계는 과연 잔혹한가 따스한가. 추한가, 아름다운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답의 끝은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동화 속에서, 언젠가 행복해질 그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