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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마라, 사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리뷰] 연극 마라, 사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리뷰를 올리면서, 이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리뷰를 할 수도 있구나 싶다. 철자하게 자신이 무지함을 알면서, 그럼에도 무지한 이의 시각에서 바라본 감흥을 전달하려 하는 무모한 리뷰...
 

무지한 이가, 공허한 시간에, 혼란스런 마음으로 들어서서 본 연극

연극에 대한 감상을 펼치기 앞서 우선.
필자는 대체 무엇을 두고 무지하다고 인정하는 걸까. 연극에 대한 얕은 경험? 물론 그것도 있다. 연극 관람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기자의 그것이나 연극을 배운 이의 통찰력에 비할 바는 못된다.
하지만 그래도 초청받아 가면 잘도 끄적여 왔으니 이건 이정도로 패스.
간단히 말하자면, 작품이 어렵다. 그건 단순히, 작품 내의 시스템 적 문제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실존한 프랑스의 혁명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제는 본인이 너무나도 무지해 그 배경에 대해 백지상태라는 점이다. 공연 후, 이제서야 여기저기서 주워듣고 있는 형편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해서, 처음부터 사전지식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관객 입장에서의 공연 리뷰는 절대 불가.

또 하나, 이 날 작품을 마음 편히 관람하는데 장애요인이 있었으니, 그 하나가 바로 앞서 선행취재했던 현장의 여운이었다.
프리뷰 공연에 들어간 것은 5월 29일 오후 3시,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아항"하는 독자의 감탄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렇다, 이 날은 바로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있었던 날이다. 우연히도 이 인산인해의 역사적 물결이 경복궁에서, 또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에서 고동치는 것을 앞서 두 눈으로 수시간 확인한 뒤, 이 물결이 남대문 방향으로 흘러나갈 때 비로소 발길을 돌려 극장에 들어선 것이다. 참고로 초청장을 받은 것은 그가 서거하기 사흘 전. 여러가지 시간상도 그렇거니와(물론 서울역 광장에선 그 시각에도 추모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물결의 통로에 극장이 위치한 것까지 전부 기묘한 우연이었다. 나중에 말할 테지만, 작품 내에서도 현 시국과의 일치점이 있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우연의 연속이다. 여하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선이 격하게 박동치는 현장 속에서 걸어나왔던 터라 여러모로 작품에 몰입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또 하나 문제가 있었다. 당일날 나간 지난 기사를 참조하면 알 테지만, 하필이면 바로 앞에서 인도가 경찰에 통제되는 바람에 시간을 뜻하지 않게 잡아먹어 공연시간에 5분 지각, 결국 이래저래 앞의 10분을 날려먹었다. 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작품이다 보니 초반부를 놓친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여러모로 혼돈 속에서 바라본 연극이었다...



난감한 상황에서 고급 난이도의 이해력을 시험받다

십수년전, 명화극장에서 동유럽국가의 영화를 몇주간 특집 편성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중간부터 보니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
흑백의 고전을 비롯, 헐리웃 영화나 비교적 국내 정서와 잘 맞는 프랑스 등 서유럽 영화에 익숙했던 이라면 당혹스러울 법도 했다. 인물들의 대사나 표정연기에서 '아, 이 사람들 어떤 관계구나'하고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그들에 비해 동유럽의 영화는 스토리 이해에 상당한 난이도를 요했던 것. 
마라, 사드 역시 그렇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통해 전반적 흐름과 구도를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 초반부터 몰입해(가능하면 인물이나 시대적 배경을 사전에 깔면 한결 편할 듯)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잡아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작품이었다. 만일 당신이 "난 총칼 들고 싸우지 않으면 싫어. 왜냐고? 안 그럼 이해가 안 되니까"라는 말을 정직하게 꺼내는 사람이라면, 도중에 두손 들지도. 관람 내내 앞의 10분이 못내 아쉬웠다. 덕분에 나는 스토리를 따라잡느라 애먹었다. 어떤 의미에선 철저하게 실패한 관람기다.

분명 이 작품은 대사가 많다. 출연진은 40명에 달하고 '음악극'이란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노래 가사도 주요 흐름을 담당한다. 격정적으로 뭔가를 토하기도 하고, 삼키기도 한다. 관객에게 작품을 이해시킬 수 있도록 발현하는 것들은 역설적으로 '아주 많다'.
그러나 이것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관객을 이해시켜주진 않는다. 한 예로 작품 내내 인물들은 시종일관 첨예한 신경전을 펼쳐보인다. 혁명가 마라와 이를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사드 후작이 그렇고, 두 패로 나뉘어 대립하는 민중(혹은 환자)이 그렇다. 지금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이들의 전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잡아내야 저들의 감정표현이 왜 저렇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일관성있게 받아들일 수 있고 결국 작품 진행의 맥을 짚을 수 있다. 
작품이 액자식 연출을 행하고 있음도 두뇌 테스트를 한 수 돕는다. 중요한 시점마다 계속 등장, 연극의 맥을 그 때 그 때 끊어내는 검은 정장의 가이드가 인상이 깊었는데, 겉으론 친절하게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사람에 따라선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자칫하면 더욱 더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가 도중에 한 말 중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

"이 시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니까요. 불편하지 않게 봐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선 "우린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와 다른 평안한 시대를 살고 있잖아"라며 수긍할 수도 있지만, 또 사람에 따라선 이것이 역설법처럼 들리기도 한다. 친구나 연인이 함께 이 연극을 봤다면, 반드시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눠보라. 분명 상당수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꺼낼 테니.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마라와 대립하는 사드 후작의 기록을 통해 펼쳐지는 극 중 극이라는 점. 해서, 이것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대립 축의 하나인 사드의 시점에 그려진 형상으로서 반만 믿고 반은 버려야 하는지, 심지어는 뒤집어야 하는지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마치 현시대에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으로 나뉜 각 신문들의 경향을 살피며 독자들끼리 저마다의 영역에서 또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꿔말하면, 추리극이나 오밀조밀한 구성극에서 두뇌회전을 즐기는 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혁명적 사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충돌하는 난세의 이야기에 거부감이 없다면 말이다.

    


무대가 바뀌지 않는다, 수십명의 출연진이 딱히 입장, 퇴장하지 않는다... 파격적인 무대의 연속

스토리 라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극장 안의 파격적 시도에 대해 짚어보겠다. 적어도, 당신이 그간 전형적 연극무대에 식상해 있었던 매니아라면 이 연극은 에어 서플라이가 되어 줄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딱히 무대 세트가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 막판에 딱 한번 뭔가 달라지긴 하는데...글쎄. 자세히 말하면 재미가 없어질 듯해 말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 역시 무대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는 거.
암전은 몇번인가 되지만, 100여분간의 공연 중 그 횟수는 적은 편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출연자들의 입장과 퇴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하지만, 여기 출연진은 그 수가 족히 40여명. 가끔가다 "그 인물 지금 어디에 있지?"하고 찾게 되는걸 봐서 가끔가다(?) 나타났다 사라지다를 반복하긴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저 많은 출연진들 중 절대 다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었다.
시선이 한가운데에 열연 중인 주역배우 한 두사람에 꽂혀 있어도, 다른 수십명의 배우들이 뒤에 계속 남아 있다. 독백이나 두 사람만의 무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라가 홀로 자신의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드는 저 뒤 한 구석의 책상에서 줄곧 묘한 미소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많은 이들이 단순한 배경 마냥 대기하고만 있진 않는다. 잘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작은 몸짓 하나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디테일한 연극이다. 그리고 덕분에 무대는 꽉 찬 느낌을 시종일관 전달하고 있다. 


마치며 - 남은 이야기 

리뷰에 앞서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긁어모아봤다. 마침, 이글루스 블로거 Jerohm 님이 같은 날의 공연을 관람 후 감상을 올렸다.(http://bocnal.egloos.com/4977782) 읽어보니, 내가 놓친 10분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관련한 극단 측의 멘트가 있었던 모앙이다. 앞서 나간 언론기사 중엔 한국일보의 것을 소개한다.(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90527030608885&p=hankooki)
작품의 전반적인 백그라운드나 보다 자세한 극 내외의 이야기는 이들에서 살펴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말한 김에, Jerohm 님 역시 이번 공연을 언급하며 노 전대통령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일보 기사 역시 "한국사회를 보는 듯 하다"고 이 국내 초연 극을 촌평한다.
 
본인 역시 앞서 살짝 밝혔듯, 여러모로 오늘날의 우리와 일치점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이라 느꼈다. Jerohm 님은 이를 마라의 죽음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에서 찾았고, 한국일보 기사는 사드와 마라의 팽팽한 대립이 한국의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며 박근형 연출가의 멘트를 빌려왔다.

나는 작품이 풍기는 냄새에서 현재의 그것을 맡았다. 무엇보다도 저 해설자가 줄곧 '우리들이 사는 시대'와 저 시대를 함께 논하는 것에 시선이 갔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며 계속해 무언가를 환기시킨다. 저들의 세상에 비하면 우린 풍요롭고, 평화로운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다는 언질을 계속 던진다. 그가 원하던 것이 그 말 그대로의 납득일까, 아니면 역설적 사고의 유도일까.
우린 정말, 프랑스의 저 혼란기와는 관계없는 평화롭고도 이상적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실제로도 숱한 혼란과 큰 사건들이 거듭 일어나고 있는 2009년의 한국사회가 마라와 사드가 실존했던 프랑스와 오버랩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적어도 작품 마라, 사드의 저 쪽 세상은 암울한 엔딩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연정보
5월 29일 ~ 6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시극단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