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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젊은 바텐더와 노 전 대통령 이야기 나눠봤더니...

[오아시스] 젊은 바텐더와 노 전 대통령 이야기 나눠봤더니...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상대하는 고객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 직업이 둘 있다. 하나는 의사, 나머지 하나가 바텐더."

만화 바텐더에 나오는 말 중 하나다. 물론 과장된 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만큼 바텐더와는 진솔한 대화를 부담없이 나눌 수 있겠구나 하고 혹한 것이 사실이다.

이 말고도 병원 의사를 언급하며 바텐더의 존재를 어필하는 장면이 있다.

"여긴 야전병원이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찾아온 사람에게 모르핀을 놔 준다고."

그리고 이런 말도 나왔었다.

"바텐더는 그 누구에게도 손님의 이야기를 누설하지 않는다."

아직 낯설어야 할 바텐더에게 신세 이야기를 꺼내 보인건 그 말들을 너무 과신해서였을지도.

     

      
 

59. 젊은 바텐더와 노 전 대통령 이야기 나눠봤더니...


아, '바텐더'에선 이런 설명도 붙인다. 손님은 딱 한번 찾아왔었다 해도 다음번에 찾아오면 자신을 단골로 여겨주길 바란다고. 그래서인지 주인공 사사쿠라 류는 딱 한번 본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고선 따스하게 불러준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요새 연재물을 꺼내보이며 처음 사귄 바텐더도 일주일 뒤 두번째로 찾아갔을때 곧바로 나를 기억해 주었다. 이름은 밝힌 적 없지만, 첫날 잔이 없어 주문을 못했던 메뉴를 떠올리며 "오늘은 잔 있어요"라고 웃어보였던 것.

이틀전 세번째로 그 바를 찾았다. 이 쯤하면 그럭저럭 단골이 됐으려나. 언제나 딱 한잔만 마시고선 휭 나가는 실속없는 손님이긴 하지만.

마음 갑갑한 일이 있어 그에게 털어놨다. 홀로 서울에 놓인 외톨이에게 누군가 신세한탄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술을 잘 하면 알콜에 의지라도 할 텐데 한 잔만 마시면 그걸로 부담이니 원."

"저같은 경우도 술을 거의 입에 못 대요."

"바텐더가 술을? 칵테일도?"

"칵테일은 마시죠. 술이 들어갔는지 어쩐지 거의 모를 법한 것들로 한잔씩."

이야길 들어보니 그는 인터넷 세상에 대해선 그리 밝지 않은 듯 했다. 잠깐 경제 뉴스를 검색하는 정도? 다만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시사를 바라보는데는 관심이 많다고. 평소 마주하는 것보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 네티즌으로서의 교감이 잦았던 나로선 간만에, 오프라인의 시티즌으로서 대화상대를 만난 셈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으로 흘러갔다. 내가 아닌, 그가 먼저 꺼낸 이야기다. 미리 밝히건대 그에 대한 나의 사견이나 생각 같은 것은 전혀 꺼내보이지 않았다.

"나한텐 여러모로 가장 특별했던 대통령이라서요..."

그는 자신이 스물여덟살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대선이 그의 첫 투표권 행사였다고. 때문에 그는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래도 우리 젊은 사람들한텐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분 아니냐"고 평했다.

나와 비슷하다. 얼마전 57번째 이야기(http://kwon.newsboy.kr/1252)에서 꺼냈듯 내게도 당시 대선은 첫 투표권 행사였고, 군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상당히 인간적 이미지가 강한 대통령 후보로 마주했었다.

"정말 얼마전 그 일이 있었을 때는, 비록 정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서도 한순간 '와'하고 머리로 기운이 확 뻗쳤어요. 너무나도 큰 일이었기에."

바텐더는 개인적으로도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현 세상을 살아가는 두 젊은이 사이에 놓인 바는 공감대의 탁자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되느냐고. 그는 "솔직히 열린우리당 시절이나 지금의 민주당이나 마음에 들진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당에서도 맘에 드는 당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한나라당은 더욱 맘에 안 들어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의 문제를 떠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큰 울림이 있는 사건이었잖아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마티니 한 잔을 비워갔다. 뜨거운 커피 마실때 쓰는 빨대로 독한 술을 조금씩 넘기다 화제를 돌렸다.

     

      


"마티니가 칵테일 중 제일 유명하다고 하던데. 또 가장 오래됐고."

"그렇죠. 마티니를 맛있게 만드는 바텐더가 진짜 실력있는 바텐더예요."

"본인은? 자신해요?"

그는 웃더니 "플레어바에서 화려한 볼거리에 집중해 배웠다보니 제 맛을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아직 좀 그렇다"고 고백했다. 아직 술맛을 모르는 손님, 아직 칵테일의 제 맛을 내는데는 자신의 실력을 자부하지 못하는 바텐더. 이렇듯 우린 아직 여러모로 서툰 젊은이들이다. 그러면서 6천원짜리 마티니 한잔을 통해 서로의 서투른 그것을 감안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사사쿠라 류는 아니다. '신의 글라스'이자 손님의 수년묵은 얼룩을 단번에 닦아내는 카운셀러를 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당연히 구구절절 확신을 준다던지, 최고의 칵테일로 만족감을 주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나도 그가 만난 이들처럼 그럴듯해 뵈는 손님은 역시 아니다. 아직까진 내 짐짝 하나를 내려놓고 잠시 쉬다 바텐더에게 마음의 구원을 바랄만큼 급박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똑같이 아직은 서툴고, 그리고 꽤 많이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뭔가 (설령 사무적일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젊은 바텐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기 이야기도 꺼내 보이고... 이만하면 '바에서의 신뢰'를 쌓는데는 무난하다. 그리고 우연찮게 노 전 대통령은 그걸 확인하는 대상이 됐다.

결과적으로 그는 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노 전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다를 건 없는 평상의 이야기. 그러나 인터넷에서 걸어나와 바 위에 팔을 걸쳐 놓고 다른 것도 아닌 한 전직 대통령을 화제로 삼아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그 나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육신의 성장은 멈췄을지언정 영혼의 성장은 여전히 왕성해야 할 우리에게 있어 그의 죽음은 있을 수 없는 충격이었고, 패닉상태에 들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충격을 흡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걸 확인하며 잠깐 알콜음료로 해갈해가는 것이 정확히 무엇의 갈증이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술로 모든 열병과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겠지. 다만 이런 술자리라면 해답은 찾을 수 없어도 가끔씩 쉼터로 삼기에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