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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직장인들의 학예회' 봄날연극축제 현장을 가다

'어른들의 학예회' 직장인들의 연극판 봄날연극축제  

  
"공연이 잠시 지연되고 있는데요... 여기 손님 한 분의 여자친구가 아직 안 들어오셔서... 네! 지금 들어옵니다!"

"우와아!"

객석에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관객이 동반한 '여친'이 안 들어와 공연 일정을 늦춰주는 무대나 이에 열렬한 박수와 시선으로 환영하는 객석이나 범상하지는 않다. 이런 공연이 또 있을까. 봄날연극축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장외 볼거리다.

    


  
  공연이 끝난 후의 극장 안은 기성 공연장에선 볼 수 없던 기묘한 여운을 오래도록 뿜어낸다. 관객이나 스탭이나 배우나 모두가 한데 모여 축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어른들의 학예회' 직장인들의 연극판 봄날연극축제


홍대 앞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재미

홍대에 오면 볼 거리가 많아 좋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인디밴드의 특설공연, '올해는 꼭!' 하며 열정을 담는 연기인들의 수업장, 캔버스를 펼쳐보이는 미술학도와 통기타를 메고 다니는 음악학도들이 교차 활보하는 모습, 수제 공예품을 한보따리 열어젖히는 상인들. 서울에서 이와 같은 종합 예술의 거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요소를 추가하게 됐다. 또하나의 언더그라운드 무대, 직장인들이 만들어가는 봄날연극축제 말이다.

      


     
17일 홍대 앞 창무포스트극장. 일요일 저녁 공연을 앞두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다. 홍대의 젊은이들이라 하기엔 다소 무겁고, 그렇다고 '중년'의 이름을 붙이기엔 여전히 에너지가 충만한 나이대다. '한창 일할 때'의 무리다.

단체관람이라도 온 것인지 서로가 두터운 면식을 자랑한다. "너도 왔니", "왔구나"하는 웃음소리가 여느 때의 극장 앞 매표소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입장권을 받는 입구의 스탭들도 마찬가지. 들어오는 사람 하나하나마다 인사를 주고받을 사람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내일이면 다시 생업현장에서 마주할 직장동료, 혹은 그들을 통해 건너건너 모셔온 소중한 손님들이니까.

 

소극장의 정취, 그리운 향수로

눈대중으로 100여명 남짓 수용할 만한 지하극장 안. 대형무대와는 전혀다른 정취를 풍긴다. 객석마저도 무대의 일부로 사용될 법한 응집된 구조, 그리고 디테일하다고는 볼 수 없는 무대 세트들.

    


  
  여느 소극장처럼 소박하다.    
 
화려하게 쏘아내려지는 조명이라던가 '저거 어디서 협찬받았지'라 궁금해할 법한 소도구, 대도구는 없다. 어떤 의미에선 대형 무대보다도 연기자 하나하나의 기량이 충실히 반영되는 장소다. 하지만 이를 섣불리 기대할 수도 없다. 이 날 공연의 주인공들은 객석에 앉은 이들과 매한가지로 평소엔 범상한 사회인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어쩜 "그 친구 참 열심히 하던데 실수는 안 할까 몰라"라는 걱정까지 수반한 관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실이 사회에 나선 이후로는 좀체 찾아볼 수 없었던 십수년전의 그리운 기운을 가져오고 있었다.

 

어른들의 학예회

막이 오르기 전, 극장 안에서도 친밀한 교류는 여전하다. 관객들도 저마다 '어서오세요'라 인사를 주고 받는데다 동반한 사람을 소개하기 바쁘다. 뒤에 서 있던 스탭들도 한결같이 '오셨네요'를 연발한다. 무대 앞 진행요원들 역시 낯익은 얼굴임은 매한가지.

약간은 엉성해보이는 소품들, 서로 면식있는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 공연에 앞서 진행자가 나와 인사를 주고 받을때는 이미 관객들도 '우린 준비됐다'란 무언의 사인을 내보이고 있다.

어디에서 그리운 냄새가 풍겨나오는가 했더니.

한순간 학창시절의 학예회 무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뭔가 기대이상의 무엇을 바라고 착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열심히 준비해 주었던 우리 동료들을 축하하고자 찾아온 관객들. 그리고 저마다 어떤 수가지 만가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지, 가까운 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직장인 극단의 사람들. 아마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연기자로서의 못다한 꿈을 이루고자 살고 있을 터. 

학부모의 자리가 직장 동료의 자리로, 학업과 병행하던 이들의 무대가 생업과 병행하는 이들의 무대로 바뀌었을 뿐, 연기의 꿈을 간직한 그들과 이를 격려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무대임은 변함이 없다. 이젠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세컨드 학예회장 말이다.

    


  
  대사를 못 외워 무대에 못 올랐다는 극단멤버는 공연 중반 독특한 임무로 무대에 참여했다.   
 


막이 오르자 배우는 물론 관객들도 함께 흐름을 타고 있었다. 이는 '연기자와 객석이 하나가 된다'라는 모든 연극의 기본 플롯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배우가 나올 때 '누가 나왔네'라며 속삭이기도 하고, 일정한 선을 침범치 않는 내에선 극적인 순간마다 담소도 자유롭게 나눴다. 다른 공연장에선 용인되기 어려운 특혜다. 이를 기록하는 기자에겐 작품 안에만 몰입해야 하는 과거 리뷰기사와 다르게 대내외적으로 흘러나오는 이 모든 것들이 흥미로웠다.

 

허술했던 부분이 인간 냄새가 나 더 좋은 무대

이날 공연은 제9회 봄날연극축제 중 극단 일상탈출이 꾸민 '친구들'이었다. 이달 2일부터 내달 7일까지 계속되는 축제의 8개 참가극단 중 세번째 주자의 마지막 공연이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날 작품에 대한 리뷰는 제한다. '직장인의 이중생활'이란 이름으로 열리는 그 독특함에 한번쯤 찾아갈 법한 전반적인 축제 소개 기사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지인을 통해 습득하게 된 티켓. 통합티켓가는 일반 공연보다 저렴한 만원이다. 그러나 지인을 통해 초대권으로 습득했다면 다시 5천원으로 반액할인. 그나마도 자리를 빛내주고자 찾아와주는 순수 손님에겐 선택사항이다.   
 

다만 그래도 한마디 덧붙인다면, 제값을 다 주고서야 입장가능한 기성 연극무대와 비교하며 퀼리티 면에서 추천여부를 묻는다면 입장이 조금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날 공연을 관람하고서 '전문 연극단에 준하는 수준급 짜임새와 연기력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면 아마 이 기사는 작성하기가 상당히 수월했을 터. 그러나 완벽에 가까운 감동을 기대하게 되는 기성 공연과는 아무래도 여건이 다름을 배려해주는 편이 접하는데 한결 수월하다.

분명 연극 애호가들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아쉬운 점은 남는다. 배우들의 '말'을 다루는 응집력이나 테크닉, 장중을 휘어잡는 지배력에선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감안하게 된다. 가끔은 배우가 반응하는 순간에 시간차가 생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대가 전환되는 암전 상황마다 "한참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구나" 하도록 발소리나 소품 이동 소리가 들리는 것은 여러모로 인상에 강하게 와 닿는다.(?) 지난달 리뷰했던 2009연애특강에서 호평한 세심한 진행과는 좋은 대조가 됐다.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묘미다. 완벽함이 아니라 열성을 엿보게 되는 '학예회'의 묘미. 조금이나마 그것을 묻어보고자 BGM이 깔리고 불이 꺼졌는데 무대바닥에 붙여진 야광표지가 분주하게 가려졌다 드러났다 한다던지, 소품에 붙여진 야광표식이 공중에 붕 떠 사라져갈 때 '저 소품 꽤나 무거울 텐데'라 생각케 만든다던지 , 바쁘게 자기 자리로 위치하느라 미처 지우지 못한 발소리가 쿵쿵 울릴 때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서 좋다. "다들 열심히 하네"라고 기분좋게 눈감아 줄 수 있다면 한층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겠다. 당신이 바라는 감동이 예술적 완성도의 가치가 아닌, 초대한 관객에 대한 최대의 노력과 정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면 말이다.

 

마라톤과 같았던 공연은 축제 답게 마무리된다

공연은 마라톤과도 같았다. 고가의 티켓을 구입해 프로의 공연을 관람할 때 우리는 대개 100미터 단거리 결승의 감흥을 기대한다. 저마다 과거에 보았던 어떤 공연의 감흥을 경쟁자로 데려온 뒤 서로 비교하며 누가 더 괜찮은가 평가하는 것이 꼭 찰나의 순간 영욕이 결정되는 그것만 같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은 마라톤의 운치를 갖고 있다. 관객은 숨가쁘게 '빨리, 더 빨리 내게 감동을 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완주 자체가 의미를 가지기에 응원하는 이들은 어느새 관찰자를 넘어 뛰는 사람 본인이 된다. 결승선에 들어올 때 '해냈구나'라고 건네는 축하인사가 '이겼구나'가 아닌, '수고했어'와 일치하는 것이 꼭 마라톤과 같은 공연이다.

    


  
  종연 직후, 객석의 관객들은 무대로 내려와 배우를 끌어안고 기념촬영을 한다. 본 공연보다 이 순간의 감흥이 더 긴 여운을 남겼다.    
 

공연이 막을 내리자 재미있는 상황이 또한번 연출된다. 배우를 보고자 분장실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 객석도 공연이 끝났다고 해서 바쁘게 자리를 뜨진 않는다. 극장 자체가 격려와 축하인사를 나누는 장소가 된다. 실은 이것이 공연의 진짜 라스트 스테이지다.

당신의 직장동료가 무대에 선다면 보다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학예회에 게스트로 찾아간 나로서도 공연은 남다른 무언가로 다가와 감흥을 전해주었다. 그리운 청춘의 봄날,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학예회 연극공연의 정취를 이리저리 치이며 세월에 흠집난 오늘날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면 슬그머니 권해 본다. 

 

#제 9회 봄날연극축제

5월 2일 ~ 6월 7일

창무포스트극장, 부천그루터기소극장, 한성대가변무대 소극장,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 등

문의 봄날연극축제추진위 019-9449-9112, 전국직장인연극단체협의회 cafe.daum.net/jik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