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진입로를 경계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경찰이 원천봉쇄, 시민들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
기자로선 완벽한 판단 미스. 촛불 1주년 행사가 오후 2시부터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부러 시간을 늦춰 도착했다. 필시 어둑해지면 촛불 행렬이 재연될 것이란 생각에 시간적 포커스를 맞췄던 것. 그러나, 원천봉쇄로 무마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끝나버린 것인지.
내부엔 뭔가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도 보였다. 하지만 촛불 집회와는 무관한 분위기. 교각에서 시민들도 이를 두고서 문답한다.
"안에서 뭐 해요?"
"하이서울페스티벌 하잖요. 시청에서 여는 거."
"아아."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사이에선 불만 섞인 실소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역시나, 촛불집회를 막기 위한 상황전개라는 지적이었다.
한 사람은 "사람보다 경찰이 더 많다"며 실소했다. 곧바로 "밤늦게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고 이야기가 점차 확대되더니 촛불 이야기와 장자연 리스트 등 현재의 이슈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쫙 둘러쌓았어 아주."
"대통령 그 양반 눈을 봐. 아, 관상을 봐요. 어디 누구 말을 들을 사람이야?"
"허허, 참."
한편에선 통행이 금지된 상황에 대한 불편함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도 터진다.
"아니 서울 시에서 하는 행사인데 시민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어쩌란 거여?"
혹 다른 곳으로 들어가 행사장을 둘러볼 수 있을까 주변을 맴돌았다. 지나쳐가는 한 젊은이는 "아, 나 저기 햄버거 먹고 싶은데..."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우체국과 공안과 사이 길에 닿았지만 여기도 마찬가지. 경찰이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한다. 이에 기자가 물었다.
"행사장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저 쪽에... 버스를 타고 우회하셔서 들어가실 수 있을 거예요."
"...????"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축제행사. 이렇듯 입장이 불편한 경우도 드물다. 사람보다 경찰이 많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아일보사와 미술관 앞을 통하는 길에선 보행자 통행이 많다보니 마찰이 잦았다. 막아선 경찰에 '좀 들여보내달라', '좀 지나가자'는 사람들과 '지하철(통로)을 통해 이동해야 한다'는 경찰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이 나온다. 오후 6시가 되면서 사람들 수는 더 많아졌고 잡음은 계속됐다.
그 때, 촛불 스티커와 마스코트 등을 옷에 붙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한 눈에 촛불 집회에 참가하고자 왔음을 알 수 있다. 거리공연을 위해 찾아왔는지 다양한 세션으로 구성된 악단이었다.
이들 역시 출입 통제 상황을 살피고선 미술관 측면과 동아일보 사보게시판 앞으로 이동, 걸음을 멈춘다.
"여기서 하지."
자리잡은 사람들은 뭔가를 꺼내어 가두판매대를 만들고, 저마다 악기를 꺼내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에겐 이날 이 장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촛불 1주년 기념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트럼펫, 통기타, 플룻, 하모니카... 그리고 드럼이나 베이스를 대신해 물통이 박자를 담당한다. 이들은 아침이슬 등 여러 노래를 연주하고, 또 함께 노래불렀다. 옆에선 촛불1주년 기념 티셔츠 판매가 진행된다. 장당 1만원, 그들 말에 의하면 "다른데선 절대 같은 디자인이 없어 못 파는 유일무이한 200장 한정 기념 티셔츠"라고. "제가 무서운가요?"라며 촛불이 '배시시' 웃는 프린트 셔츠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늘 집회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는 거기에 참여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라 전했다.
"2시요? 집회는 예정대로 했어요. 연설문 읽고... 그런데 그때도 경찰이 빙 둘러싸서요. 결국 많이 모이진 못했죠."
"하긴 했군요. 얼마나?"
"글쎄요. 한시간 정도? 지금은 서울역이나..."
"아니면 혜화동으로."
"그렇죠."
한 관계자는 자신들을 '시민악대'라 소개했다. 여기저기서 따로따로 모인 시민 합주단이다. "수익금은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에 쓰인다"며 판매와 함께 이어지는 노천 공연. 여의치는 않았다. 걸음을 멈추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해 다음 곡을, 판매를 진행하는 사람들.
촛불 1주년을 맞은 이 날, 1년 전 촛불정국의 심장이었던 광화문은 그렇게 당시의 재연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이젠 쇠고기 파문에 이어 용산 참사 등 그 때는 없던 도화선까지 한데 모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촛불이 타오를지 모른다. 광장을 막고 인터넷을 막고 언론을 막는다는 불만까지 한데 섞여 흐르는 지금, 그저 막아서는 것만으로 능사가 될 수는 없음을 사람들은 토로하고 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