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시위진압 취재 중 만난 울 고모님 "안된다, 가지 마!"

[에필로그] 아수라장서 만난 고모님 "다친다 가지 마!"

# 이 글은 2일 광화문 취재(http://kwon.newsboy.kr/1215)에서 못다한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도로 마주편에서 난리가 벌어졌다. 경찰들이 달려가고 저기선 함성소리가 터져나온다. 카메라를 붙들고 귀가 뒤로 젖혀질 만큼 냅다 뛰었다. 몹쓸 직업병이다.
한참 뛰어가다 낯익은 얼굴이 지나쳐간다 했다. 어라? 
"고모님!"
"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어디가?"
"취재요."
달려가려다 뒤에서 붙들렸다.
"야! 가지마! 안된다!"
"에? 내가 하는 일이 이건데 붙들면 어떡해요?"
이건 또 뭔 꽁트라니.
 
[에필로그] 아수라장서 만난 고모님 "다친다 가지마!"

광화문 현장을 둘러보고, 기자는 보신각 쪽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오늘 취재는 이걸로 마무리...' 이러는 도중에, 갑자기 반대편 골목에서 무슨 일인가 터졌다. 오후 6시 30분 경이다.
경찰들이 우루루 도로를 횡단해 뛰어간다. 저기선 '와아아'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온다.
"하여간 못해먹겠네."
기자 역시 멈칫하다 돌아서서 달려갔다. 집회 현장만 나왔다 하면 영화를 찍는다. 지난번 용산참사 추모당시 한강로2가에서도 버버리코트 차림으로 질주하다 그대로 서울역까지 닿았던(거짓말 약간 보탰다) 나다. 그때 뜻하지 않게 다이어트 효과를 봤었지 아마. 
그 때였다. 막 달리다 보니 반대편에서 허겁지겁 달리는 시민들이 보인다. 영문도 모른채 아수라장서 대피하는 사람들이었다. 헌데 거기에 내 고모님이 있더라.
"고모님!"
돌아보더니 '어머나'하는 양반, 맞다. 이미 환갑이 훌쩍 지난 내 고모님이다.
"네가 여기 왠 일이냐?"
"내 밥줄이 이거잖아요."
인사하고 달리다 헛바퀴를 도는 내 발을 봤다. 뒷덜미를 붙들린 것. 
"야, 가지 마!"
"에에?"
"안돼! 위험해!"
갑자기 눈 앞에 수년전 강성범, 김준호 개콘 콤비가 떠오른다. '환장하겄네 아이구야'가 딱 내 심정.
어이쿠, 뭔 저 연세에 이렇게도 아귀힘이 좋으시다냐. 난 뒤돌아서 설득(?)했다.
"아 이게 내 밥줄인데..."
"안 돼! 이리 와!"
"아니 무슨 조카 밥줄 끊어놓을 일 있어요?"
"글쎄 못 가."
"글쎄 가야된다니까요."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입장이 무지 곤란해졌다. 아마도 경찰이 이걸 봤다면 무슨 수배자로 오인하고도 남겠다 싶은게 이래저래 맘만 바빠진다. 
때아닌 낭패다. 취재제한하는 경찰도 아니고 내 고모와 간다 못간다 '몸싸움'을 할 줄이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겨우 풀려나 다시 뛰었다. 급한 고모님, 뒤에서 나 말고 사촌형의 이름을 불러댄다. 역시나 자식농사가 대를 이어 충실한 가문이다보니 헷갈릴 만도 하다.
"아이구야, XX야!"
"누가 XX이예요?!"
"아 그랬나."
취재터로 마구 달렸다. 그러나...
"놓쳤네."
그 새 상황 종료. 혹 지난 기사보고 어째 마무리가 약하다 생각한 이라면 제대로 짚으신겁니다.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이야. 참 세상엔 별일도 많고 변수도 많다.
이틀 뒤. '상황수습' 겸 고모님 가게를 찾아갔다.
"나 멀쩡히 살아있어요"를 인삿말 대신 건네며 얼굴을 비추자 "어 그래 살아있네"라 하신다. 
혹시나 하고 물었다.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니셨지요?"
"아니, 위의 언니(할아버지 할머님이 자식농사를 워낙 풍작으로 하셔서 고모님이 꽤 많다)한테만 말했어."
"...그럼 상황 종료네."
"그렇지 뭐. 다 퍼졌겠네."
이미 늦었다. 살다가 배운건데, 소문이란것이 절대로 팩트에 의거해서만 나가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저 현장으로 뛰어가더라'로 전달되어야 할 내 이야기는 아주 위태위태한 무용담으로 번져버렸겠지.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멀쩡한거 보여드리려고 들렀어요."
"그래."
"결국 붙들려서 아무것도 취재 못했잖아요."
"그러냐?"
"조카 밥줄 끊어놓으려 하면 어떡해요?"
"넌 그럼 맨날 그렇게 그런데만 골라서 뛰어다니냐?"  
고모는 "얻어맞기라도 하면 어쩌느냐"고 물었다. 하긴, 기자증도 프레스완장에 헬멧도 없이 촛불현장 맨 앞에서 때마다 무사귀환하는거 보면 내가 생각해도 용하긴 해. (아니다, 한번 물대포맞고 나뒹굴었었구나.)
가족애라는것이, 그런거 아닌가 싶다. 어떤 성향이라던가, 신념이라던가, '맞다 쟤는 하는 일이 저거지?'란 이해상황을 떠나 위험하면 못가게 말리고부터 보는 거. 이젠 세뱃돈에 손 벌릴 어린애가 아님에도 이 조카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양 위태로워 보이는 모양이다.
마침 옆에 함께 있었던 고모님네 지인이 곁에 있다 "달려가는 폼이 멋있더라"고 내게 인사치레를 한다. 그러자 고모님은 "멋있긴 개뿔, 그러다 얻어터지면 뭔 소용이야"라 손사래를 친다.
실은 나도 그래요. 다음번엔 좀 더 조용하고 안전해보이는 거리에서 보다 행복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무언가를 취재하다가 우연히 만나고 싶으니. 그 땐 뛰지 말고 여유롭게 걸으며 이야기해보자고요.
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이 나라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평화롭고 조용하고, 또 행복한 정국을 맞아야 겠지요. 지금으로선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때를 기약하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