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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폭풍같은 5.1 집회행진 속, 파워블로거들도 집결

여의도서 종로로... 폭풍 같았던 대규모 집회행진
경찰과 충돌 빚으며 대혼란 속 파워블로거 총집합


1일 오후 5시 - 예기치 못한 폭풍전야, 슈퍼블로거들 속속 집결

여의도광장 앞 대로 앞.

무슨 일인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대규모 노동절 집회가 있었던 여의도 광장. 자리에서 일어선 이들이 대로를 가득 채우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한글로 님 예언이 그대로 맞는데요?"

"그냥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던 시사 파워블로거 한글로 님의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 하지만 어쩌면, 모처럼 그와 딱 마주친 그 순간부터 심상찮은 기운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통찰력에 있어 어떤 프로 정치기자들도 세 걸음은 물러선다는 그다. 정작 그는 미묘한 미소만 흘렸다.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을 필두로 이들은 여의도 동서로 사거리를 가로질러 영등포 방면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파는 점차 불어났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국인 기자들도 분주히 상황을 담느라 바빴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기자가 물음을 건넨 이는 '블로거계의 조선일보'(고재열 독설닷컴 기자가 업계 1위라며 붙여준 짖궂은 찬사다) 미디어몽구 님. 기자가 이날 최초로 조우한 면식 블로거기도 하다. 암만 생각해도 이 쪽 방향에 도보로 이만한 인파가 집결할 곳은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영등포? 신도림? 그도 아니면... 설마? 

그런데 설마하던 뜻밖의 장소가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는 사람들을 인도하던 어느 관계자에게 묻더니 "신길을 향한다"고 정보를 줬다. 

"신길?"

"1호 편집장님에 2호 편집장님... 죄다 어째 여기서 뵙습니까?"

웃음 속에서 뜻밖의 만남은 계속됐다. 옛부터 서울이 한글로라면 부산은 커서. 영남지역의 대표적 시사블로거기자인 커서 님도 이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예상치 못한 풍랑을 예감한 듯 본지의 역대 편집장이 전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다 미디어몽구까지 더해지면서 골든트라이앵글 편대가 완성됐다.

 

5시 30분 - 반정부 종합선물세트,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다

"오늘 가두행진의 성격은 뭐라 해야 하나요?"

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쇠고기도, 용산참사도, 노동자들의 불만도... 딱히 하나만 집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 이에 한글로 님은 "종합이지"라 한마디로 요약했다. 커서 님의 답변이 걸작이다.

"종합선물세트."

등록금 문제를 성토하려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노동절을 맞아 존재감을 피력하려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용산참사는 현안의 최우선에 있었다. 쇠고기 파문은 1주년 집회를 딱 하루 앞둔 상황이다.

피켓과 구호는 현정권의 퇴진에 포커스를 한데 맞췄다. '3OUT 2MB'란 신조어까지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따로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새, 신길역 도착.

   
 
   
 

"절반은 버스로, 절반은 지하철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딘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 군중의 규모가 너무 커 한번에 움직이기 힘들었던 것일까. 이들은 버스와 지하철로 나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이 선택한 것은 지하철. 역내엔 수많은 이들이 들어차 웅성임이 귓전을 진동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최종 목적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다.

 

6시 - 분산의 노하우

지하철은 시청을 향한다. 우리가 예감한 목적지다. "혹 경복궁을 통해 청와대로?"란 시나리오도 떠올려 봤다. 촛불정국이 극에 달했던 시기, 수많은 부상자를 만들었던 물대포와 압박진압의 악몽이 한순간 스쳐간다. 그러나 역시, 이 상황에서 현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광화문 내지 시청 앞.   

시청 역에서 사람들과 함께 열차를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도 사람들은 출구를 향하지 않는다. 다시 플랫폼으로. 이 때부터는 우리 모두가 머리 위에다 커다란 의문부호를 달고 다녔다. 어디선가 헤어진 몽구 님은 휴대전화로 "여기 광화문인데요... 여긴 막혔어, 아닌가 봐"라며 해답을 요구해오지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오리무중인건 여기도 매한가지. 광화문도 아니고, 시청도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게다가 여기서도 또 인파가 갈린다.

알고 보니, 행선지는 종로5가. 나머지는 또 다른 인근 역으로 향한다. 여러 갈래로 나뉜 뒤 다시 모이는 모양새였다. 한 곳에 집약될 시엔 경찰 봉쇄에 쉽게 걸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분산이 거듭됐던 것. 지난해 집회에서 쌓인 노하우였다.

   
 
   
 

종로 5가, 드디어 지상으로. 그러나 여기도 최종목적지는 아니다. 인파는 행진하며 명동과 시청 방향으로 향한다. 한글로 님은 혜화동까지 예상지점을 확대했다. 그러나 광화문이 막힌 상황서 이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역시나, 시청이다. 사람들은 종로 5가에서 종로 4가까지 계속해 걸었다.

 

6시 30분 - 종로 4가에서 경찰과 첫 충돌  

종로 4가에서 행진이 멈췄다. 앞에 경찰이 막고 서 있다. 그리고, 조금씩 물러서는 사람들. 경찰은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리고... 

갑자기 달려나오는 경찰들. 우리가 확인한 최초의 충돌이었다. 비명이 울리고, 고함소리가 분위기를 찢었다. 맨 끝에 있던 일부 시민이 경찰에 붙들렸고 이를 제지하고자 시민들이 다시 에워싸면 또 경찰이 에워싸며 이들을 뜯어낸다.

   
 
   
 
한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저항하던 이가 바닥에 쓰러지면 경찰도, 시민도 함께 엉켜 몸싸움을 강하게 벌인다. 어느샌가 시민들에게선 증오섞인 욕설이 터지고 경찰 간부는 부하들에 "폭력 쓰면 전부 붙잡아"라며 계속해 지시했다. 상황은 좀체 풀릴 기색이 보이지 않고 한데 뒤엉키는 사람 수는 점차 불어났다. 

도로에서, 또 인도에서 시민들은 '정부의 개'라며 경찰에 욕설을 퍼부었다. 전쟁과도 같았다. "사람을 놔 주라"는 시민과 채증하겠다는 경찰 사이에서 진통은 점점 커졌다. 전동휠체어에 탄 친노 여성(어제 대검찰청 노무현 전대통령 소환장에서도 봤다)이 경찰들에 둘러싸이자 시민들은 더욱 흥분했다. 여경들이 별 신체접촉 없이 둘러쌌지만 예외 없이 이들에게도 욕설이 터져 나왔다. 결국 잠시 후에 이 여성은 포위진에서 풀려났다.

도로 안에서만이 아니다. 인도에선 일부 시민이 도로외곽의 일부 경찰을 붙들었다. 옆의 경찰들은 동료를 빼내려 한데 뒤엉켰고 격한 싸움이 터졌다. 도로 안에선 시민들끼리, 여기선 경찰들끼리 동료를 사수하려고 전쟁을 벌인다.

시간이 흐르며 도로엔 다시 차량소통이 이뤄졌고 경찰들은 도로외곽에서 시민들을 인도로 모두 올려보낸채 대치했다. 소강상태. 그러나 이걸로 상황이 멎은 것은 아니었다.

 

7시 30분 - 종로3가, 연행자 놓고 실랑이

갑자기 경찰버스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상황은 이렇다. 경찰이 충돌했었던 사람 한 명을 붙잡아 버스에 태우려 하자 이를 제지하려 시민들이 나선 것. 경찰은 '채증했다'고 했고 시민들은 납득하지 않았다. "가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자 "왜 데려가서 듣느냐"며 계속 항의했다. 이내 몸싸움이 벌어졌고 상황은 악화됐다. 수분간 이어지는 대치 상황에서 연행자는 결국 버스에 태워졌고 문은 닫혔다.

사람들은 허탈한 듯 자리를 떳다. 뒷자리에 남은 것은 "나쁜 새끼들"이란 욕설 뿐이었다.

 

7시 40분~ - 종로에서 을지로, 충무로로 밀고 당기기   

광화문에서 내려온 몽구 님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이번엔 '창천항로'로 알려진 월간 말의 박형준 기자도 함께 하고 있었다. 저긴 저기대로 아수라장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종로에 있던 집회참가자들과 경찰편대가 을지로 방향에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어둑해진 7시 40분, 경찰은 다시 밀어내기를 시작했다. 굉음이 울리며 싸움이 다시 터졌다. 도로는 난장판으로 변한다.

이번에도 후미에 있던 집회자 중 일부가 경찰에 붙들렸다.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도로에 감돈다. 야간이 되면서 한층 속도를 끌어올려 진압에 나서는 경찰. 이 와중에 기자는 블로거단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때부턴 휴대전화도 배터리방전으로 침묵. 끝을 알 수 없는 행진과 충돌의 연속이다.

   
 
   
 

순식간에 군중들은 을지로 3가 앞을 넘어 충무로까지 밀려났다. 8시를 전후해 대학생 등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충무로역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 마포방면 거리로 흘렀다. 그리고 여기서부턴 인도를 통해 이동함에 따라 이렇다할 무리가 지어지지 않았고 이에 더는 압박이 필요치 않다 느꼈는지 경찰은 상당 거리와 시간을 두고서야 뒤늦게 올라왔다.

기자가 확인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3시간 이상 확인한 그들의 행진은 지난해 촛불정국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규모.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집회자들을 등지고, 또 경찰들을 등지고 걸어오면서 한글로 님... 아니 몽구 님이었나? 여튼 누군가의 말이 귓전에서 부유했다.

"오늘은 오픈게임이야. 내일이 본게임이지."

촛불 1주년을 맞아 벌어질 내일의 집회. 오늘에서 이어지며 '시즌 2'를 예고하는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들을 기다리는 것일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