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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애특강,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의 100분

[리뷰] 연애특강, 안팎으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의 100분
연극 2009 뉴 연애특강 리뷰

   
 
  왼쪽부터 한예나 김윤식 김은아 임재호 김다희 이상 연애특강 출연진  
 

지난주 서울 혜화동 인아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2009 연애특강. 극단 인아(대표 김선정)가 발굴한 신인 5인방으로 짜여지는 무대의 초반 반향이 괜찮다.(관련 인터뷰 http://kwon.newsboy.kr/1198) 대학로에서 에어 서플라이로 떠오른 연극의 2주차 무대를 직접 찾아가 확인해 봤다.

 

'연극 생초보'만 모았다... 모험의 댓가는?

극단 대표이자 극장주인 김선정 대표는 "모두 다 신인이거나 신인임에 다름없는 애들"이라고 밝혔다.

"재밌잖아요. 병아리 키우는 거."

마치 벤처 기업을 보는 것 같다. 맏형과 맏누이가 이제 한국나이 서른, 그나마도 만으로는 전부 20대 청년들이 아닌가. 스물둘의 막내 김다희 씨는 무대 경험은 고사하고 학교에서의 연기 수업조차 입학한 올해가 첫 학기다. 게다가 오디션 후 개막까지의 연습 기간은 한달 반 남짓.

리허설 때도 대사를 잊는 일이 벌어지니, 김 대표가 느끼는 재미는 서스펜스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너희가 실제 공연 중 대사를 잊어버리면 우린 관객들 모두에게 전액 환불해 줘야 한다"고 배수진을 쳤을 정도다. 그렇기에 지금 저들의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무대에 없는 세가지 - 중견 없음, 악역 없음, 조역 없음

이렇듯 무대엔 중견급 배우가 서질 않는다. 전체를 조율할 베테랑이 없다는 점에 생각이 닿으면 또 한번 이번 무대가 모험적인 것을 실감하게 된다.

두번째는 악역이 없다. 하나같이 관객들에 '잘 되었으면 좋겠다'란 마음을 들게 하는 선남선녀들. TV에서 단골 소재로 쓰이는 사랑 이야기지만 이를 이간질하고 뭔가 깨뜨리려는 소악당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질 않는다. '아내의 유혹'에서 넘쳐나는 악역에 질렸던 이라면 신선해 보일 법 하다.

 
 
  병아리들은 진화를 거듭하며 지금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선보인다. 모두가 선역이고 모두가 주역이다. 벌어지는 갈등은 선량한 이들의 심리게임에서 비롯되는 연극이다.   
 

세번째. 조역이 없다. 엑스트라도 없다. 출연하는 5인이 전부 주역이다. 2커플 4인체제에 전체 이야기를 이끄는 진행자 1인까지 해서 각자 분담할 비중이 거의 동등하게 주어졌다. 이색적인 부분이 관객에겐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효율적 세팅에 세심한 진행 배려, 소극장의 디테일한 매력 포인트를 살렸다 

배우 내면의 것에서 잠깐 눈을 돌려 무대 진행을 살펴보면 나름 세심한 배려가 시야에 들어온다. 소극장이다 보니 '시민회관' 내지 '전당' 타이틀을 내건 대형무대의 스펙터클함은 없다. 그러나 소극장은 소극장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는 법. 연애특강은 '관객과 소통한다'는, 현재로선 시사적으로도 화두에 오른 '소통'에 있어 매우 반길법한 시스템을 명확히 살린 연극이다.

작품엔 약간의 애드립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연애특강의 강사이자 유일한 솔로인 러브 코치 김은아는 줄곧 관객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신기가 있는지 연인들만 족집게처럼 잡아낸다. 15회의 연극 중 빗나간 것은 단 한번. 그리고 이들 답변에 따라 임기응변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이건 이거대로 재미있는 포인트. 소극장이다 보니 배우는 두 걸음만 앞으로 나와도 맨 앞 객석에 손이 닿는다. 권오성 연출가가 개막 전 나와 '공연 중 배우에게 말을 걸지 말아달라'고 주문할 정도다.

연극의 특성상 무대 전환마다 불이 꺼지고 배우들은 이동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재밌는 점이 보여진다. 바닥에 이동을 돕도록 장치된 야광 포인트를 건드리지 않고 배우들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등장한다. 이들이 이동하는 것을 전혀 의식치 못하도록 배려한 세심함은 불이 켜짐과 동시에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는 연극 특유의 재미를 그대로 살려낸다. 아담한 무대 공간에서 그들이 선사하는 요소 중 하나다.

 
 
  관객과 소통 창구를 여는 다리가 되어주는 연애강사 김은아.  
 
   

공감대 넓은 국내 창작극의 선전에 의의 

지난달 막이 올랐던 창작뮤지컬 '위대한 쇼'의 정성산 연출가는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무엇보다 '국내창작극'이란 값어치를 먼저 내세웠었다.(관련보도 참조)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 무대에서 강세를 보이는 지금 위축된 창작물의 현실을 의식한 이야기였다.

사실 창작극은 양날의 검과 같다. 장점부터 말하자면 국내 관객에 맞춘 정서. 국내정서에 맞게 이해를 돕도록 각색이 추가되어야 하는 해외작과 달리 국내작은 처음부터 한국인을 관객으로 짜여지다 보니 한국인 정서와 공감대에 맞는 작품을 꺼내기 용이하다. 그럼 단점은? 뜻밖에도 장점과 이유가 똑같다. 관객 정서나 원하는 바에 맞지 않을 공산 역시 크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하니, 자칫하면 편하고 친숙하게 받아들여야 할 소재나 볼거리가 도리어 '보기 민망할만치 촌스럽다' 내지 '식상하다'는 평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 (역으로 해외작의 이질적 분위기는 신선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한국영화가 '특선방화'란 타이틀로 TV에 오르던 시절, 상당수 시청자가 이를 외면하고 대신 '볼만한 컨텐츠'라 의식되던 '토요명화' 등 외화프로의 시청률을 높여주던 20여년전과 비슷한 상황이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다 해야하나. (표현이 너무 극단적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연애특강은 단점을 봉쇄하고 장점을 살려 무난한 합격점에 이른 작품이다. 먼저 소재 자체가 만국공통의 연애사업이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코믹터치 역시 작품을 무난하게 다듬는다. 한국의 실정을 잘 녹여놓은 점도 장점. 군대 입영을 앞둔 대학1년생 남자후배와 그에 동경받는 대학4년생 여자선배와의 러브스토리에서 대개의 경우는 사랑의 장애가 되는 군입대가 역으로 맺어짐의 열쇠가 되는 흐름이라던가, 소도구 '이슬처럼'의 등장은 한국인 관객을 위한 한국형 소재로 가산점 요인이다. 외국인이라면 공감하거나 웃지 못할,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즉각 반응하게 될 부분.

다만 모든 대중을 끌어안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령별 코어타겟이 너무 명확하다는 정도? 연애의 주요 연령대가 아무래도 20~30대의 젊은이들이다 보니 중년 이상의 계층에겐 어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권오성 연출가는 그간 들어온 관객의 80% 가량이 젊은 계층이었다며 네티즌 후기를 보면 40대 이상의 관객들은 '난해했다'는 소감을 올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어쩌겠는가, 연애는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시대적 흐름에 민감한 것을. 

관객에 따라선 연애전선에서 각 인물이 보여주는 심리변화와 밀고 당기기가 '나 군대 가요'란 말 한마디, 또 '좋아해'란 취중 토크 한번에 전환점으로, 또 종착지로 닿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연애 아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무경험자 입장에선 수긍할 수 밖에. 이성적 설명으론 파헤치기 힘든 영역, 그런게 사랑이니까.  

 
 
  카키색 바지에 군화, 얼핏보면 군대는 이 선배가 가야 할 듯 싶다. 사랑에 상처입을까 흔들리는 여자를 연기하는 한예나. 선머슴 모습이나 변신 후의 숙녀 모습이나 모두 멋지게 소화하는 매력적 배우다. 그녀의 변신은 작품 속 최대 터닝포인트.  

 

관객 각각의 처지에 따라 여운의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100분

객석은 역시나... 커플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한번은 김은아 씨가 연애 31일차, 32일차, 37일차를 연속으로 집어내 장중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이 날 공연도 5일째 만남에서 250일째 만남까지 숙성 단계가 각각인 이들이 모였다.

이들에겐 작품의 무대가 훌륭한 데이트코스로 작용할 수 있다.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연애 과목에 지대한 관심을 보내는 청춘학도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하다못해 재미있는 연극 한편의 본질적이고 기본적 재미라도 얻어갈 법 하다. 물론 표값에 상응하는 가치 여부를 평가하는건 저마다의 몫이다.

꼭 달콤한 맛만 여운으로 맛보는 것은 아니다. 배우 중 맏이들과 동갑내기인 기자로선 이 나이 될 때까지 단 한번도 발 딛지 못한 오묘한 세계를 보고 '난 왜 이렇게 사나'라며 씁쓰름한 맛을 음미해야 했다. 뭐...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 (먼 산)

다행히도 씁쓰름 쌉싸름한 맛까지 '이슬처럼' 한모금 넘기듯 즐길 줄 아는 나이라 이건 이거대로 약이 된다. 이 밖에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학로의 낭만을 즐기고자 하는 초입자나 소극장 작품에 애착을 지닌 매니아들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작품.

 
 
  종연 후 달라진 의상은 결말의 일부를 담고 있다. 해피엔딩이냐 여부는 작품의 재미를 위해 노코멘트.  

# 공연정보 - 혜화동 인아소극장, 4월 10일부터 7월 31일까지 매주 상연

                  평일 저녁 8시 1회상연, 월요일은 공연 없음 

                  토요일 및 공휴일 4시30분과 7시30분, 일요일 3시와 6시 2회 상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