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이순신 고택 경매' 가장 먼저 반성할 건 바로 우리다

'이순신 고택 경매' 가장 먼저 반성할 건 바로 우리다
팁 - 현충사 가는 길 어드바이스

미리 말하두건대 -

툭 까놓고 말하건대, 그냥 나 하나만 반성하고 끝나면 좋겠다. 제목의 '우리'는 그저 지탄받을 '끌어들이기' 목적이었던 것으로...

 

   
 
   
 

이웃한 꽃들은 내게 집을 그냥 보여주기 싫었나보다. 우아한 벽을 쌓고서 한 겹 숨겨두고 있었다. 처음 찾은 이에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택은 함부로 내어줄수 없어!'하고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이순신 고택 경매' 가장 먼저 반성할 건 바로 우리다

1. '어떻게 가지?'그러다 제 풀에 쥐구멍을 찾고...

   
 
  현충사에서 고택 가는 길에 한 장. 암만 생각해봐도 멋진 말이 아닌가.   
 

"서울에서 지하철로 갈 수 있다?!"

깜짝 놀랐다. 나만 몰랐나. 그럼 제목을 바꿔 달아야 한다. 헌데 그게 아니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고택이 경매에 부쳐진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진동시켰다.(다녀오니 유찰됐다는 뉴스가 떳다) 지난주 발의된 고택 지키기 아고라 서명은 1500여명의 목표를 일찌감치 달성했고, 각지에선 '어떻게 다른데도 아니고 이순신 장군의 고택 하나를 나라가 책임지지 못하느냐'는 원성이 일었다. 계룡건설이 대가없는 기부채납으로 도울 뜻을 밝히고 당국에서 '어떻게든 지키겠다'고 나서며 안정정국을 기대하고는 있는데, 경매 중인 아직은 모르는 일 아닌가. 

그제서야 알았다. 현충사와 고택이 충남 아산에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서울에서 찾아갈 경우 어떤 경로를 타야 용이한지 잠시 인터넷서핑으로 자료를 모아봤다.

모을것도 없었다. 시외버스 운행노선은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검색창에 걸어봤던 '지하철' 키워드가 곧장 답을 내놨다. "네 놈이 집 앞 지하철역으로만 기어들어가면 딱 한번 갈아타고서 곧장 인근까지 닿는다"라고. '지방이라 번거로워서...'란 변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생각하면 할 수록 얼굴이 벌개질 일이다.

이렇게 된 바, 한번 다녀오자 하고 내친김에 결정.

   
 
  기자는 온양온천역을 목적지로 정했다. 돌아올 땐 아산역에서 버스환승하는 방법을 썼는데 헤매는 바람에 어느 편이 더 용이한지는 권하기 어려워졌다.   
 
 

2. 서울에서 지하철로 찾아가는 법 - "시간 많으면 난이도는 별 한개도 안 돼"

주먹밥 두개를 도시락 삼아 월요일 오전 길을 나섰다.

신도림에서 천안행 급행열차로 갈아탄게 오전 11시 48분. 이 노선만 그대로 따라가면 그대로 오케이였다. 종착역(신창역) 바로 앞의 역(온양온천역)에서 내리면 그걸로 끝. 이건 가이드도 뭐도 필요없을 정도 아닌가.

다만 신경쓰이는게 있다면 확실히 시간만큼은 많이 잡아먹는다는 점. 출발전 확인해보니 집 앞 역에서(강서구 지역) 목적지까지의 예상소요시간은 137분이었다. '일일출장'으로 나선 취재길. 

급행열차는 천안을 종착역으로 삼는다. 목적지인 온양온천까진 일반열차로 다시 다섯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을 옮길 것 없이 그자리에서 열차를 기다리면 되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다면 마침 들어서는 급행열차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다만 신도림에선 플랫폼이 다르므로 안내방송 나오면 뛰어다녀야 한다)

천안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8분. 잠시 기다려 최종열차를 타고, 온양온천역에 도착한 시각은 1시 38분. 신도림행 첫 열차로 테이프를 끊은게 11시 22분이었으니 소요시각은 136분. 예상시간에 1분 빠지며 딱 들어맞았다.

장거리 전철여행이지만 생각만큼 지루하진 않다. 지하철은 서울을 넘어가면서 지상철로 변환되고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객차의 덜컹댐을 느긋히 즐기는 게 은근히 여행다운 맛이 있는 것. 지하철보다 지상철을 좋아하는 취향이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좀 더 2시간 이상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한다면 책을 가져가거나, MP3의 배터리를 확인하길 권한다. PMP유저라면 새삼 그 실효성을 느낄법 하다.(불법다운을 권장하는 발언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평일 정오타임대에도 불구, 승객의 이동량이 상당해 좌석은 남지 않았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조금 주의해야 할지도. 

온양온천역을 나오면 사거리서 현충사 이정표가 가리키는 직진방향으로, 이후 시내버스 정류소를 찾아 현충사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910번, 920번, 930번 등 900번대 버스가 이를 종점으로 삼고 있다. 20여분이면 현충사 도착이다.

   
 
  난중일기의 그 유명한 '큰 칼 옆에 차고...' 싯구가 멋드러지게 사용됐다  
 

3. 일거양득, 봄꽃 나들이까지 선사해 준 꽃대궐

현충사에 도착한 것이 오후 2시 10분. 서울 집을 나선지 3시간만에 도착했다. 정문에 '화요일 정기휴관'을 보고 순간 멈칫. 다행히 오늘은 월요일이다. 오는 분들은 주의하도록.

이 곳은 일단 무료개방이 아닌 유료입장이다. 그러나 부담은 없다. 일반인이 500원. 어린이나 기타 할인혜택을 받는 이들은 각기 300, 400원으로 입장 가능하다. 자판기 캔콜라 하나가 700원인 세상 아닌가.

지나치던 옆에선 노인 몇 분 앞에서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명으로 관람을 돕는다. "17만평의 대부지라 편한 코스로 편의를 돕는다"는 그녀. 듣고 있자니 살짝 작금의 경매 문제도 언급하는 듯. 기자는 곧장 고택을 목적지로 삼고 큰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급해질 법한 마음은 묘한 들뜸으로 변한다. 잠깐동안 '봄은 봄이로다'란 사색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저기서 노랗게, 또 분홍빛으로 물든 꽃잎들이 꽃나들이하러 온 것만 같은 착각에 들게 한 것. 새 지저귐이 고요함을 순간순간 건드린다. 이만하면 경건한 현장답사 뿐 아니라 가족간의 추억만들기 코스도 동시에 충족시킬 법하다.

잠시 후, 드디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무과급제 전부터 지냈던 고택이 눈에 들어왔다.

   
 
   
 

'꽃대궐'이었다. '옛집'으로 이름붙여진 이 곳은 초입에 꽃의 장막으로 살짝 가려져 있다. 이를 넘어오면 아담한 꽃나무가 대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뒷배경 또한 봄꽃으로 장관이었다.

   
 
   
 

개방된 문으로 스며들듯 들어섰다.

 

4. 한옥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독일에서 온 스물여덟살의 청년목수가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장기간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어느 일간지 기사를 작년에 본 적이 있다. 못질이 되지 않은 나무이음새와 기왓장이 매력적이라고 했던가.

한국인인 나는 왜 좀 더 일찍 알지 못하고 이제서야 "정말이다"하고 납득한걸까. 그와 마찬가지로 만 스물여덟이 돼서야 충무공의 옛집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아주 소박하지도 않은 집. 들어온 어느 노파가 개방된 문 안을 살피다 "나도 방 한칸 주슈" 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검소한 듯 기품있고 금욕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매력적인 자태가 펼쳐진다.

   
 
   
 

햇살이 들 때면 이를 분산시켜 퍼뜨릴 목재건축의 연출, 기와지붕의 정렬된 가지런함, 담장 너머엔 꽃들이 사방에 흐드러져 있고 뒷 언덕에선 새 소리가 정겹다. 외부에선 화사하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소곳하다.

   
 
   
 

   
 
   
 

이쯤하니 '위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이가 예쁘면 함부로 밖에 두지 못하고 누군가 군중 속에서 너무 매력을 발산하면 여러모로 불안한 법이다. 정말로 누군가의 사유화가 가능한 경매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자신만의 컬렉션'을 수집하는 어느 갑부가 이 곳을 둘러봤다면 역사적 가치나 국가적 의미는 미뤄두고 눈에 보이는 그것만으로도 탐낼 법한 곳이 아닌가.

   
 
  옛 집 앞 우물 '충무정'에서 물 한모금을 마셨네. 꽃향기 머금은 우물에 순간 취기가 감도니 잠시 내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었네.  
 

5. 이순신 장군 모를 국민 없는 나라, 그런데 그 옛집조차 위태위태한 나라   

여섯살 때, 명절을 보내고 부산으로 귀가하는 서울고속터미널에서의 기억. 터미널서점에서 부모님은 내 손에 이순신장군의 위인전 하나를 들려주셨다. (세종대왕 위인전도 함께) 난 차례도 생각 않고 여기저기 펼치는 대로 읽었다. '엄마 백의종군이 뭐야?'라 두어번을 물었고 '그럼 이순신장군이 말에 떨어져 시험에 떨어진거야?'하며 주인공이 낙제도 할 수 있는 현실에(어릴 적에 주인공은 언제나 성공하는줄만 알았다) 순간 충격 받기도 했다. "내 상처를 방패로 가려라" 부분은 새드엔딩에 낯선 어린이를 힘들게 했다. 이만하면 꽤나 빨리 이순신 장군의 여러 이야기를 접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옛집이 아산에서 만인에 공개돼 있고, 이 곳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지는 이날까지도 무지한 채로 살아왔다.   

   
 
   
 

충무공의 옛 집이 빚으로 경매에 붙여졌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육두문자를 쏘아댔다. "어떻게 된 나라냐", "어떻게 된 정권이냐"는 성토는 정부당국을 향해 메아리쳤고 한 언론보도에서 문화재청이 "예산 없음"이라 밝힌 것은 화를 더욱 부추겼다.

누군가는 "그가 없었다면 이 나라는 존재할 수 없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탄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견해를 같이 할 작금의 슬픔이다.

그러나 기자는 정부나 문화재청에 앞서,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게 됐다. 그간 얼마나 무신경하게 살아왔는지, 마음만 먹으면 지하철로 다녀갈 수 있는 곳을 얼마나 멀리두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이 글은 읽는 당신이 '그래 너 하나만 무식했던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도 나눠가져야 한다.

서울,수도권 주민들을 대상으로 봤을 때, 이 곳 현충사와 옛집은 지하철로 닿는 곳이다. 물론 편도 2~3시간, 왕복 5~6시간의 여정은 어느 정도의 부담이 따른다. 그래도, 마음 먹으면 지하철로 갈 수 있다.

500원이면 입장권을 살 수 있다. 물론 지하철 편도비용이 3000원대에 육박하고(종점에 가까워오니 역당 200원씩 할증되는데 내심 놀라긴 했다) 환승이 안되면 시내버스 비용도 1050원 추가, 이래저래 드는 8000원 가량의 교통비가 아무 감흥 없이 다녀오기엔 조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마음 먹으면 휴일날 당일치기 코스 삼아 곧장 지하철로 내려가 답사할 수 있다.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들이 그간 좀 더 많이 이 곳을 찾고 또 이 곳의 존재를 더 많이 느껴왔다면, 또 알려왔다면 현재와 같은 파문은 처음부터 없었을 터, "당국은 어떻게 경매 처리가 되도록 방치했느냐"란 성토에 앞서 "우리들은 어떻게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는가, 우린 얼마나 이의 가치를 자각하고 살아왔는가"란 자성부터 꺼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문제가 선조들에 먼저 송구해야할 일인지 후손들에 먼저 사과해야 할 일인지 그도 아니면 지금의 우리들이 서로에게 '미안합니다'를 건넬 일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추가 -

이제사 '아아, 현충사!'하며 과거에 배웠던 것을 기억해 내는 이 못난 후손을 용서하소서, 장군님.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