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인터뷰] '흑신' 박성우 "내 종착역은 한국이다" (상)

[인터뷰]"일본은 잠깐 스쳐가는 플랫폼, 종착역은 한국이다"(상) 
한미일 3개국 동시 방영 화제작 '흑신'의 원작자 박성우 화백 

 # 귀중한 휴일 중 상당시간을 할애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인터뷰] "일본은 잠깐 스쳐가는 플랫폼, 종착역은 한국이다"(상)
- 한미일 3개국 동시 방영 화제작 '흑신'의 원작자 박성우 화백

 

14일 일산 화실에서 만난 박성우 화백. 전날 끝낸 마감의 흔적이 사무실에도, 얼굴에서도 남아 있었다. 빨리 끝내야 겠다 생각했음에도 쌓인 이야기가 많았기에 인터뷰가 두시간을 넘겼다. 국내최초의 한국인 원작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최초의 한,미,일 3개국 동시방영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흑신'의 원작자, 박성우 화백과의 이야기를 풀어 낸다.

 

    
  
  박성우. 1993년 8용신전설로 데뷔. 대표작은 8용신전설, 나우, 제로, 천량열전, 흑신 등. 김수용, 이명진 등과 함께 90년대 한국만화의 최대 수확이다.   
 


'더 애니메이션 흑신' 발진 후 더 바빠졌다

"요새 더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본래 마감(원작 만화)은 그대로인데,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더 바빠요."

"따로 부가적인 행사 스케줄이라도?"

"아뇨. 만화가는 연예인은 아니니까요. 허나 일본에선 애니메이션 방영 시즌이 곧 원작의 홍보타임이라서요. 여러모로 숨가쁩니다."

'흑신'은 박성우 화백과 임달영 작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판타지액션 만화. 2004년부터 일본 스퀘어에닉스의 '영간간' 창간호로 연재 개시, 일본 시장을 겨냥한 진출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인기리에 연재되던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지로 불리는 제작사 선라이즈를 통해 애니메이션화가 전격개시됐고 2009년 새해벽두부터 한국의 애니박스(1월 9일), 일본의 TV아사히(1월 8일), 미국 이매진아시아TV(1월 10일) 이상 3개국 채널에서 동시간대 방영이 시작되면서 화제에 올랐다. 한미일 동시 방영 애니메이션은 세계최초, 한국 만화가의 출판물(잡지연재는 일본 영간간, 한국 대원씨아이 영챔프에서 진행중이며 단행본은 현재 10권발매를 앞두고 있다)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영상화되는 사례는 국내최초다.

흑신은 대중작과 매니악작의 중앙을 가르는 작품

"저는 이번 애니메이션 방영으로 국내서도 큰 화제가 될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단 잠잠해요."

박 화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예요. 일본에서도 그런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사실 흑신은 일반 대중작과 매니악한 작품의 양극화 추세에 있어 중간 작품이거든요."

그는 "원피스와 같은 초인기작품, 혹은 '오타쿠'로 불리는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작품 중 어느 계열에 속하거나 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흑신을 자평했다. 아울러 국내에 소개된 화제작은 대개가 이 쪽 아니면 저 쪽이라고.

"하지만 일본작품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니까요, 크게 알려지진 않았어도 생각보다 좋은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좋은 작품이라하면 '양질'의?"

"그렇죠. 여기 책상에 쌓여있는 '피아노의 숲'도 그렇고, 국내선 생소한 '호이포이 캡슐'도 그렇고요. 다소 위험한 소재긴 한데 '세인트오니짱' 등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어도 실정과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 전날 각 게시판을 통해 네티즌 팬들의 질문사항을 물었다. 이 중 하나. 

- "주요 작품들이 판타지나 무협장르인데 끝나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생각이 있으신지..."

루리웹 유저 아이엠유얼파더 님

 

박 화백은 "작가가 하고 싶어도 실정과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데뷔작인 8용신전설(그를 스타덤에 올린 데뷔작으로 만화팬들에 그의 이름은 곧장 각인됐다) 당시에도 '판타지는 안된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당시는 폭력물, 학원물이 대세라서요. 그리고 '천량열전'(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미형 캐릭터가 돋보이는 무협물) 때는 또 무협물 시대가 지났다고 반대가 있었죠. 그런데 다행히 반응은 다 좋았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흑신이 끝나면 스포츠, 학원 연애물 등을 생각 중"이라며 "다만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건 아님을 알아주시면 감사하다"고 밝혔다.

반면 '나우'의 경우엔 본인이 끝내고 싶어도 담당자가 더 해달라고 졸랐다고.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작가는 이미 내놓을 스토리가 다 끝났으니 신선도가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 끝내고 싶어하죠. 헌데 출판사 쪽은 인기가 좋으니 더 연장해주길 바라는거예요. 작가는 '최적의 신선도'에서 끝내고 싶어하고 저 쪽은 '작품이 쇠해 더 안먹힐 때까지 계속 하자'고 생각이 다른거죠. 물론 영업하는 쪽 입장은 당연히 팔리는 걸 더 붙들고 싶어하는거니까,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작가는 '최고 신선도의 과일'만 팔고 싶은게 사실입니다."

"작가의 선택, 자유창작의 폭이 좁은 것 같아요."

"아아, 하지만 거기에 대해 불만은 없어요. 철없을 적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저도 분명 독자들이 팔아줘야 연명할 수 있는 만화가기도 하고, 현실여건을 무작정 뒷전으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까요. 다만 작가가 원하는대로 아이템을 꺼낼 수가 없다는 건 사실이죠."

 

    
  
  ▲ 연재 초기 나왔던 흑신 쿠로와 스모모모모모모(시노부 오타카 작) 스모모의 이미지자료. 현재 두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한국에선 케이블채널 애니박스에서 둘 다 방영작에 올랐다.   
 


요새 근황... 저 한국에 있다니깐요.

- "직접 만나시는건가요? 우리나라에 계실려나..." 슈퍼로봇대전 지휘통제실 '???' 님

- "일본에서 연재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슈퍼로봇대전 지휘통제실 '알터' 님

 

"수년전 뉴타입 인터뷰에서 뵙곤 못 뵌 것 같아요."

"아마... 그럴 겁니다."(웃음)

"현재 근황을 궁금해 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인터넷을 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검색해 보는데요... 박성우가 일본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 실은 1년에 3박4일 정도로 한번쯤 일본에 다녀오는게 전부입니다. 원고같은 경우도 요샌 그냥 인터넷을 다 보내요. 최근들어 작년엔 4월, 올해엔 2월에 갔다온게 전부고요."

그는 "일본에 더 자주 다닐 여력조차 없다"고.

"사실 그림작가의 여유는 거의 없어요. 마감과 마감 사이 며칠이 휴식의 전부일 뿐인데요."

내가 매국노?

"인터넷에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박성우는 매국노라고. 한국을 등지고 일본서 활동하는 매국노라고 하는데..."

그는 "그러고 싶어도 될 수 없는 거 알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난 일본인에게 결국 손님일 뿐입니다. 차별당해서가 아니라, 한일 사이엔 차이가 있어요. 단순히 언어의 것이 아닌 생각의 차이요. 저 역시 저기서 안주할 생각 없고요."

한국 작가가 일본 만화의 기법을 사용하는 것에 매국노라 하는 것 또한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화와 '망가', 차이도 있고 따로 생각할 수도 없죠. 물론 정서를 그대로 따라가는건 반성해야합니다. 저도 무심코 그런게 나와 반성하기도 하고요. 제 그림체를 일본쪽에 가깝다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허나, 예를 들어 말예요. 동적인 느낌 살리려고 배경에 선 넣는 거 있죠? 그거 썼다고 '일본거 따라했다', 심지어 '매국노다'라고 하시면 곤란해요."

"데스카 오사무의 것이죠?"(아톰의 아버지 데스카오사무는 달리는 자전거에 바람을 가르는 선 등을 사용해 혁신을 일으켰다)

"맞습니다. 데스카 오사무의 기술이 많죠. 그거 쓰면 일본식 작품이다? 글쎄요. 이건 이야기가 좀 다르죠. 그 외에도..."

"이중분할 스킬(두 인물의 표정 등을 동시에 반반씩 담는 것)은 또 데자키 오사무('데스카오사무의 아이들'(제자) 중 하나. '디어브라더' 감독 등을 맡았다)의 것으로 압니다만."

"맞습니다. 그러니까, 만화의 기본기법이 된 일본의 것을 사용한다고 뭐라 하는 건 유도 선수더러 '왜 태권도 안 배우고 일본의 유도를 배워 선수생활 하느냐'며 저들을 매국노라 욕하는 것과 다를게 뭐 있나 싶어요. 사실 저도 어릴적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쿵후보이 친미'가 일본작품임을 알았을땐 반일 교육의 영향으로 무척 괴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결국은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그 만화들의 그것이, 결국은 좋았다'거든요. '만화'에 있어 모든 여건을 무작정 배제하고 한국적인, 창의적인 것만 쫓으라는 건 곤란합니다."

    

  
      
항상 영상화 염두하며 만화 그려... 한국에서도 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 되는 것을 원한다

"누가 또 인터넷에서 그래요. '박성우는 한국에선 절대 자기 작품을 영상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라고요. 저 그런 적 없거든요?"

박 화백은 실소하면서 "여건이 힘들다곤 한 적 있지만 맹세코 저런 말은 한 적도 없다"며 인터넷 낭설에 곤혹스러웠음을 밝혔다. 흑신의 애니메이션화에 곤란했던 사연 중 하나다.

"사실 저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면서, 영상화(애니메이션)를 염두해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예 제의 조차 들어오질 않는걸요. 이야길 들어보니까, 한국 제작사들은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더군요. 오리지널 작품을 선호한다는거죠."

"뜻밖인데요. 스토리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원작의 영상화를 바라는 팬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판권 문제도 있고... 그리고 지금 히트한 작품을 보면 그럴 법도 해요. 제 아들이 세살인데, 뽀로로 나오면 '환장'하거든요? (웃음) 저연령 작품이 '대박'을 터뜨리니까, 고연령에 어필할 법한 스토리가 탄탄하거나 하는 점은 메리트가 없을 지도. 게다가 DVD시장 등이 죽어버리면서, 작품 자체로 승부하긴 어려워졌죠. 인형 등 캐릭터 상품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있고."

"만일 한국에서 선생님 작품의 애니메이션제작 제의가 온다면 분명 고려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있죠.(단호히) 문제는 받은 적이 없어요.(웃음)"

유명작을 욕하기보단 묻힌 진주를 찾아 소개하는 편이 훨씬 발전적이지 않을까요?

"네티즌 중엔 국내작품에 실컷 욕질해대고서 '이렇게 해야 발전이 된다'고 하는 이들이 있던데요. 솔직히 말해 팔아 주고서 욕이나 했음 좋겠어요. 그리고 사실 알려진 작품 하나를 욕하는 거 보단 묻혀 있는 좋은 작품을 두개 정도 찾아내 읽고서 많은이들에 추천하는 편이 더 국내업계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박 화백은 "막장드라마도 욕많이 먹지만 결국은 시청률 많이 오르지 않느냐"며 "사실상 비난만 하는건 별 의미 없다"고 일축했다.

(계속)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