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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이웃집에 불이 났어요

'이웃집에 불이 났어요! 어떡하지?' 
경험에서 습득한 대응 포인트 
 


개요

오늘(23일) 정오경. 기자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재택근무 중이었다.(프리랜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심란했던 것 빼곤 평소와 다름없던 일상. 그런데 그 평상을 약간 흔드는 소동이 있었다.

화재였다.

옆집에 불이 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옆의 옆의 옆집.

기자의 거주지는 주거형 오피스텔. 중앙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여러 호수가 이웃하는 건물 중 둥지 하나를 차지했다. 그런데 같은층의 이웃집에서 연기가 솟은 것.

경비원이 망치로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음에 하나둘 이웃들이 문 밖으로 나왔고, 본인도 도울 요량으로 다가갔지만 막상 나서니 도울 길이 막막했다. 그저 반대편 비상구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었다 놨다하는 정도. 119에 연락할까 했지만 이미 옆집에서 전화를 놓고 있었다.

문은 도어락만 부서졌을 뿐 당최 난공불락. 하긴 그 정도 내구력은 보안상 당연하지만 이 상황에선 무지 곤란하다. 결국은 실패, 5분여 후 도착한 소방관들에 맡기게 됐다.

선두로 나선 소방관들이 소방전에서 호스를 꺼내 물길을 열기 시작했다. 한 소방관은 모였던 주민들에게 '올라가라'고 주문했고, 같은 층에 사는 기자에겐 "(집 안으로)들어가세요"라고 주문했다. 결국은 구경꾼이었을 뿐, 아무 것도 돕지 못한 나.

문을 닫았지만 불안한 소란함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문을 억지로 깨부수는 드릴 회전 소리. 잠시 후 현관 파인더뷰(?)로 바깥을 살폈더니 어느샌가 복도는 검은 연기로 자욱해 사물파악이 힘들었다. 드디어 문이 열린 모양이다.

베란다 밖에선 '쨍그렁'하고 창문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내다보니 투입된 소방관 한 사람이 그 집 베란다 창을 통째로 깨어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20여분 정도 흘렀을까. 계속 이어지던 불길 진압 소리... 생소한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어느새 잠잠해지더니만 갑자기 철벅철벅 하는 소리가 들린다. 파인더로 살피니 연기가 많이 걷혔다. 살며시 문을 열어 앞을 살짝 내다보니 복도가 홍수다. 벽에선 시커먼 물방울이 타고 내리고 바닥은 수산물 시장을 방불케 한다. 내다보는 것도 잠깐, 수초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

상황 수습까지는 두어시간이 더 걸렸다. 바깥으로 나간 것은 쓱싹쓱싹하고 바닥의 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릴 무렵이었다.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후 상황. 화재가 난 집은 물론이요, 반대편 맨 끝인 이 곳까지. 이 층의 복도 전체가 아수라장이었다.     

 

대응 포인트 하나 - 발신기부터 찾자            
  
    

 

밖에 나가자마자 웬 남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당시 상황을 묻는다. 윗 층의 주민대표라던(그런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는 "관리세만 받지 소방 대처기능은 하나도 안 돼 있다"고 말을 쏟아냈다. "운이 좋아 이 정도지 까딱하면 다같이 죽을 뻔 했다"는 남자는 "당시 대피 방송도 안 나왔고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다"고 경비원에게 불평. 그리고 가리킨것이 바로 소화전 위의 발신기였다.

"저거, 저거부터 당장 깨뜨리고 눌렀어야 할 거 아뇨?"

그는 깨지지 않고 그대로인 발신기를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아아, 내가 도울 일이 있었구나"하고 그제사 깨닫는다. 물론, 다른 주민들도 그 황급한 상황선 한사람도 깨닫지 못한 것이리라.

어차피 문이 안 열리고서야 소화기 들고 백날 서 있어 봤자 보릿자루다. 행여나 일차 수습에 나선 경비원이나 건물 관리직원이 문을 여는 데 바빠 미처 저것을 생각치 못했거나 자신이 최초 목격자라면 주저없이 깨뜨려 버릴 것.

실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인데도 막상 일이 터지면 까먹는 케이스란게 딱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오피스텔, 혹은 이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동일한 경우를 겪게 됐다면 꼭 거듭거듭 떠올리고 이것부터 찾도록.

 

둘, 약간의 연기에도 호들갑을 떨어라

기자는 지금도 머리가 어질하다.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어딘가에 남은 듯 몽롱한 것. 그저, 잠깐 동안 약간의 연기만 집 안에 들어왔을 뿐인데.

소방관들이 도착해 그 집 문을 열때까지, 검은 연기는 그 굳게 닫혀진 문의 윗편 한 구석을 통해서만 복도로 새어나오고 있었다.(본인 눈엔 그렇게 보였다) 물론 그 자체가 기겁할 일이지만, 설마하니 '대수겠느냐' 싶었다.

화재가 난 집 바로 앞집과 옆집 사람들이 맨먼저 연기 유입을 의식하며 문을 닫아 버렸고, 가장 먼 곳에 있던 기자는 그보다 조금 더 있다 소방관의 지시를 받고서 이를 행했다.

그제서야 집 안에까지 매캐한 내음이 풍기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별 거 아니겠지 하고 잠깐 베란다 앞 문을 통풍시켰을 뿐, 옅어진 것에 만족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극히 소량인데도 사람 잡을 법한 유독가스임을 몸으로 깨우치는 중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화재 연기의 내음이 정작 당장엔 큰 거부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사실. 옅은 스모크향에 '좀 있으면 다 흩어지고 괜찮겠지'하고 은근히 사람이 얕보도록 만든다. 기자는 어렸을 때부터 도시의 가솔린 냄새를 좋아했고, 담배연기에도 그럭저럭 익숙한데다 심지어는 본드향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는데(즐겼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것이 더 경계심을 늦추게 한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이로 인한 부작용은 타 스모크의 아로마가 수반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울렁증이 꽤 장시간동안 지속되고 있는데, 바람 쐬러 나갔더니 시각과 청각에도 묘한 변화를 주고 있었다.

요새들어 헤드폰으로 예전에 듣던 음악에서 깊은 음을 뽑아내 음미하는 걸 즐기고 있는데, 오늘따라 이것에 장애가 따랐다. 정확한 감음이 곤란한 것.

그런데 반면에 시각에선 기묘한 기능(?)하나가 특화됐다. 카메라로 치면 크로스필터 기능 온. 오늘따라 한강에 흐르는 야경의 반광도 유약처리를 한 듯 특출해 보였고, 언제나 보던 시내의 네온사인 불빛도 매우 반짝이던데 도무지 정상이 아닌 수준.

청각은 메마르고 시각은 윤활유가 좔좔 흘러내린다. 일종의 환각 증세가 아닌가 싶다. 딱히 당장의 건강상 문제가 없더라도 정상적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니 필시 이같은 상황 전개는 금할 것.

명심하라. 연기는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나쁘지 않다.    

       
  본인 집 앞. 피해지역에서 복도서 가장 먼 곳에 있어 그나마 그을림이 적은게 이 정도다.   

 
셋. 호기심 금물, 소방관 지시 상황은 당장 따를 것

"연기가 심해지니 어여 들어가라"고 지시한 소방관의 판단은 정직했고 또 정확했다. 확실히 약간의 연기에도 영향이 커 이에 불응했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게 미덥지 못해 아예 바깥으로 대피했다면? 이후 수시간동안은 통문 개방에 짙어진 연기 및 진압 작전에 따른 통제 등으로 집에 다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신변상엔 이것이 더욱더 확실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막상 나와보니 안에 급한 일을 놔두고 있었다거나(예를 들어 그때까지도 영문을 모르다 기겁해 뛰쳐나오고 봤는데, 알고보니 나도 가스렌지, 혹은 다리미 불을 올려놨다던가 아님 자고 있던 아이를 잊고 홀로 나왔다던가) 하는 곤란한 시츄에이션으로 다시 안으로 진입했다간 더 큰 위험이 따랐을지 모른다.

호기심도 금물. 한 양반은 한참 급하던 그 상황까지도 끝까지 "왜 이래요? 사람 없어요?"하며 총총한 눈빛으로 자리를 지키던데 연기가 짙어지던 때라 위험천만. 이 역시 일반상식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화재라는 특수 긴급 상황에선 상식마저 일시 마비되는 모양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