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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와인] 2. 생뱅상(프랑스) - 어른의 맛

[와인, 무대포로 즐겨봅시다] 2. 생뱅상(프랑스) - 어른의 맛 
서민 초짜의 와인탐험기 
 

 

     
  
  생뱅상 - 프랑스, 구입처 그랜드마트, 가격 7900원  
 


2. 생뱅상 (프랑스)

생각보다 꽤 오랜 시한에 걸친 이야기가 됐다. 드디어 와인... 아니 술 맛을 가르쳐준 선생님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처음 열었을 땐 망설이다 작성 보류

가져왔더니 이번에도 아니나다를까, 코르크마개로 봉인돼 있군. 공포의 와인 오프너 노가다(전편 참조)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업, 시작.

     
어라? 웬걸. 생각보다 쉽게 빠진다! (원래 이게 정상이지만)

아항, 이제 좀 알겠네. 지렛대 원리라더니만, 정말로 이번건 제대로 병 끝에 걸려주었다. '펑' 하는 경쾌한 소리가 상큼하다. 병 끝에서 흘러나오는 향을 맡아봤다.

신 맛을 예상케 하는 향이었다. 분명 스위트와인이라고 했는데. 뭐, 어쨌든...

     


  
드디어 구한 와인잔.(첫 시간엔 맥주잔이었으니 장족의 발전, 드디어 와인 리뷰다워지는군) 역시 서민의 친구 다X소에서 2000원에 업어왔다. 레드와인잔을 구하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크기에 부담없는 모양새와 사이즈(?!?)의 화이트와인잔을 하나 선택.

오오, 그럼 드디어 와인잔에 담아보실까.

     
스티커 떼어내고 물에 씻은채 말리지도 않고 담았더니 꼬라지가 말이 아니군요. 게다가 와일드하게 따른 덕에 거품까지...   

향은 역시나 시다. 초짜에겐 스위트한 것부터 배워나가는게 좋겠다 싶어 선택한 건데 후회하는거 아닐까. 한편 색깔은 아주 진하고 불투명. 끈끈해 보인달까.

한 모금 입에 대어 봤다.

"......"

우려하던 대로... 아니, 시다기 보단 쓰다? 아아, 이게 '떫은 맛'이란 거구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이런 맛은 젬병인데' 하며 곤혹스럽게 와인병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 입에 안 맞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없고. 역시, 초심자로선 조금 난코스인가. 어찌할까 하다 일단 준비한 음식과 함께 한잔 더 즐겨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이 와인은 육류와 잘 어울린다고 소개했겠다. 해서 선택한 것이 바로...



족발. 이거야 원 무드도 없고 분위기도 없고 소주도 아니고 말이죠. 허나 어차피 초심자이면서 서민을 위한 와인 탐험기이기에 이런 시도도 필요하지 않으냔 말이다. 만일 이 가격에 족발과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면 당장 강추할 생각으로 함께 먹어 봤다.

"......"

안타까웠다. 안 어울린다기 보다는 역시 지금의 나로선 '맛을 모르겠다'고 고백하는게 솔직한 거겠지. 와인은 입에 쓰고 음식은 짜고. 차라리 상극의 달콤한 맛이었다면 뭔가 조합됐을지도 모르는데.

다시, 와인의 맛에만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장 한두잔으로 다른 무엇을 찾을만큼 녹록치가 않았다. 다만, 시간을 좀 더 두고 다시 마셔보면 또 다르지 않을까란 기대를 걸게 하는 끝맛. 잘은 모르겠지만, 어쩜 이 와인은 열어두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 맛이 난다는 부류가 아닐까.

여하튼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일단은 보류, 좀 더 시간을 둔 뒤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와인은 다시 봉인.

나중에 생각해보니 역시 이게 정답이더라.

성숙하는 것은 와인인가, 아님 초짜인가.

며칠 뒤. 다시 와인을 열었다. 향은 별다른 차가 없고, 떫은 맛도 여전했다. 하지만 입에 대기가 한결 편해졌다.

난 억지로 맛 없는 술을 맛있어질 때까지 마시며 내가 저 세계로 끌려가는건 거부한다. 하지만 약간의 인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수업에 임하는 기분으로, 또 어디까지나 즐긴다는 기분으로 혀 끝을 대어보니 다행히도 그에 맞는 대답이 조금씩 들려왔다.

다음날 다시 한잔. 드디어 단 맛이 조금씩 살아남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호감을 느끼게 하는 술도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줄어든 병 속의 술이 반병 가량.

떫은 맛은 여전했다. 하지만 스위트함도 함께 겸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첫 와인이었던 보헤미안이 '진짜 스위트와인'이었기에 보다 엷고 은은하게 퍼지는 생뱅상의 단맛은 초반에 잘 전달되지 못했던건지 모르겠다.

둘 다 초저가 와인인건 사실이지만, 이탈리아산 보헤미안이 곧장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와인이라면 이 프랑스산 와인은 그에 비해 도도했다. 이 둘을 의인화해 표정을 살핀다면 둘 다 눈웃음을 쳐도, 그 둘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앞서의 것이 '따라와'라는 신호라면, 이 생뱅상은 감히 소비자에게 "초짜예요? 조금은 날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해 봐요"라고 뒤돌아서며 내보이는 자신감의 표현이랄까.

다행히도 이 와인은 높은 난이도의 코스를 요구하진 않았다. 초보자에게 약간의 고민만 안겨주고 이에 상응하는 노력만큼 곧바로 가르쳐주는, 알고보니 꽤나 친절한 와인.

남은 와인을 설 연휴 때문에 상당기간 그냥 베란다에 뒀다. (냉장고에 넣긴 그렇고, 셀러는 꿈도 못 꾸지요) 돌아온 날 밤, 혹 '식초가 되진 않았을까' 염려하며 다시 꺼내어 한잔 마셨다.

생각처럼 그리 쉽게 맛이 변하진 않았다. 본래의 맛을 찾아갈 뿐, 변질되진 않는 것에 안도.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면 점차 평점이 높아지는 와인이구나 싶었다.


치즈 한 조각과 간단히 즐겨 봤더니 지화자

이 쯤하니, 함께 곁들이기 좋은 음식은 없을까 하고 다시 고민하게 됐다. 지난번 족발은 상성이 맞지 않는 듯 했고, 뭔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간식거리 중 괜찮은 거 없나 냉장고를 열었더니 (노란색보단 하얀색에 가까운) 슬라이드치즈 한 장이 눈에 띈다. 짭짤하기는 족발보다 더 하겠지만, 원체부터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음식이기에 약간의 기대를 걸었다.



이거다 싶었다. 적절히 달고도 씁쓸한 와인에 적절히 느끼하고 염분을 담은 치즈가 입 안에서 뛰어난 조화를 선사했다. 7~8000원대의 와인에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즈라면 누구나 부담없고 간결하게 즐길 수 있는 조합. 역시 친서민적 와인이었던 게다.

술맛에 눈뜨게 하는 초저가 와인

영문 그대로 읽으면 '세인트 빈센트'가 된다. 마치 수도원의 신부님을 연상케하는 이름이랄까. 만일 여기에 착안해 상을 그려나갔다면 또다른 그림을 그렸을수도 있겠다. 다만, 지금 꺼내보이는 건 그와 조금 다르다.

어른의 맛이 이런 건가. 약간만 맛 봐도 어쨌거나 10도가 넘는 술이기에 초짜의 머리를 뜨겁게 달구기엔 충분하다. 무료한 밤이면 또 한 잔이 기대된다. 7900원에 모셔오면 한동안 '어른의 교습'을 담당해 주는 선생님인 셈이다.

가격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각 마트에 진열된 저가와인코너를 살피니 와인의 왕도라는 프랑스산은 타국의 것에 비해 최저가 라인의 가격이 조금 셌다. "단돈 1~2000원 차이야 뭐"하는 분들이야 별 차를 못 느끼겠지만.

사실 이 와인을 그랜드마트에서 선택했던건 저 가격에 걸린 프랑스 와인이란 점에 있다. 전체에서도 가장 저렴한 군에 속했고, 이젠 나도 어디 한번 프랑스산을 맛보고 싶다는 바람과 잘 맞아떨어졌다.(실은 첫 회에서도 프랑스산을 먼저 염두했었다) 비록 연도가 명기되지 않는 와인이지만, 막 배우기 시작한 빈털털이의 입장에선 꽤 고상하고 배우는 맛이 있어 추천할 만 하다.

'전혀 신경쓸 것 없는' 개인적 평점을 꺼내자면 최소 70점은 돌파... 7900원이니 79점 정도로 할까.(야!)

권하는 파트너는 치즈.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흰살 고기구이와 곁들여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와인에 머릿속으로 그린 이미지를 소개하자면... 이번에도 여인의 형상이군. 쳇, 나도 남자라는거냐.

꽤나 매력적인 여인이다. 마을에선 그럭저럭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유명한 사람. 누구나 얼굴 한번 보러 찾아가는 정도는 쉽지만, 정작 몇 미터 앞에서부턴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 그리고 실제로도 와일드하고 고고한 언행. 출신성분에 연연하는 남자들에 있어선 그저 '평민주제에 까다롭다'란 투덜댐이 나오기 쉽상이지만, 실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친구가 되어 주는것에 인색하지 않은 그런 사람 말이다. 마치 첫인상을 봤을 땐 차갑지만, 알고보니 은근히 친구들이 많은 스타일이랄까.

그리고 이런 사람은 그런 연줄을 통해 또다른 인연을 맺게 돕기도 한다. 달콤한 와인부터 시작해, 처음엔 접하기 까다로운 떫고 씁쓸한 맛을 함유한 종류까지. 한병의 수업이 끝나고 보면 어느새인가 좀 더 넓은 부류를 상대하도록 자신감을 선사해주니 꽤나 낭만적인 와인이다.


생뱅상 (프랑스)
구입처 그랜드마트, 가격 7900원
초짜평점 79점
한줄 요약 - 달콤쌉싸름한 와인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