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무상 애프터서비스 1년'의 가벼움 [오아시스]

[오아시스] '무상 애프터서비스 1년'의 가벼움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아니 근데 이 놈의 냉장고께서 삼계탕을 드셨나.

 

43. '무상 애프터서비스 1년'의 가벼움

 
냉장고가 어제부터 이상하다. 냉장실에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없게 됐다. 미약하게나마 냉기가 나오는 듯도 한데 사실상 작동중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재밌는건 도어를 비롯 본체 외부는 평소에도 이정도였나 싶을만치 시원하다는 것. 마치 삼계탕으로 속을 덥히고 외부 체감온도를 낮추는 옛 선인을 보는 듯 경이롭다.   

무상 애프터서비스 기간을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이미 구매한지 2년을 훌쩍 넘었으니까. 어째선지 몰라도 본인은 지금껏 가전제품, 가구 할 거 없이 무상보증기간은 '대개가 2년'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과거형이 된 건 오늘부터)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혹시나"라 기대했다. "어쩜 3년일 수도 있잖아!" 라는 사치스런 낙관. 자체진단 및 대응법도 알아볼 겸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냉장고 수리'를 검색하니 마침 며칠전 올라온 한 블로거의 글이 추려져 나왔다. 'XX일렉트로닉스...' 오오, 마침 같은 회사다. 살펴보니 출장 수리 및 애프터서비스 기간에 대한 불만글이다.  

이 글을 통해서야 처음 알았다. 무상기간이 2년이 아니라 1년일 줄이야. 물론 2년이나 1년이나 달라질 건 없는 처지라지만 그래도 '너무 짧다'며 놀라고 말았다. 틀어박혀 있던 설명서 내 품질보증서를 찾아내 읽어보니 정말이다. 기간은 1년으로 명기.

동병상련, 그 블로거의 글을 읽어내려가니 '내가 하고픈 말이야'를 연발하고 만다. '새벽에 뭔 짓이여' 할 만치 소리내어 동조할 수 있는 건 역시 혼자 사는 자의 특권이다.

'1년이라니, 이 기간동안 고장이 얼마나 난다고...'

"그렇지요? 교환대상 불량품이 아닌 이상..."

'냉동실, 냉장실의 여러가지를 전부 버렸다...'

"아악, 나의 김치가!"

'기간이 지나 출장비까지 7만원이라고 했다...'

"저거면 4킬로짜리 쌀이 6봉진데!"(언젠가부터 쌀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게 됐다)

'혹시나 이 회사, 수리비를 신경쓰면서... 의심이 들었다. 기간을 1년으로 한 것도 그렇고...'

"그러고보니 제목부터가 '...냉장고의 음모일까'였지. 이건 좀 심한가?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의심 할지도..."

블로거는 냉장고의 무상 애프터서비스 기간을 3년 정도는 해야 제대로 된 고객서비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마침 바라마지 않던 기간이 떡하고 나온다. "흐음, 나만 이런 생각한게 아니었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소비자과실이 아닌 자체 결함임에도 1년 지났다고 저 정도 출혈이라니. 내일 출장기사 부르기엔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했다. 대개의 수리 후기를 살펴보니 기본 출장비가 2, 3만원에 경미한 고장에도 7만원 전후로 비용이 증가, 심지어는 25만원을 날렸다는 한숨까지 나온다. 그나마도 단종된 것은 일정기간이 지난 후엔 빼도박도 못한다나.

그런데, 좀 더 검색범위를 확대해 보고선 또 한번 놀랐다. 알고보니 이 회사만 유독 기간이 짧거나 한게 아니다. '냉장고? 대개 1년이라 보심 되요'란 답변이 주루룩 이어진 것.

하는 김에 컴퓨터 기간도 살펴봤다. 2년인 줄 알았던 내 컴퓨터 메이커도 단 1년이었음을 이제사 확인.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무상기간이 2년인 모 해외제품의 홍보 기사에서 '국내 가전제품은 대개가 1년 전후'란 기사문을 함께 접했을 땐 "난 대체 뭘 믿고 2년이 대세라 생각했지?"란 자문에 빠지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뭘...'이라며 묻어둬야 할까. 그래도 새삼스레 말을 꺼내본다. '무상기간 1년'에서 전해져오는 무게감은 너무나도 가볍다고. 저 냉장고 회사에 한정했던 넋두리가 어느새 이 나라 전반의 기업 풍토를 되새길 만치 스펙터클해졌다.

아, 냉장고의 안부를 깜박했다. 수리기사 호출은 손이 떨려 일단 보류. 누가 가르쳐준 대로 콘센트를 빼고 하루정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의 김치는 베란다에 모셔뒀다) 내부가 얼어붙었을 경우엔 이렇게 녹여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다나.

이게 안되면? '난 이렇게 30만원을 아꼈다'는 어느 사용자처럼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해부실험을 하던가(그래도 일자와 십자의 차이는 아는 문과생), 아님 출혈을 각오할 수 밖에. "애프터서비스 2년 보증에 단종 후에도 20년간 부품을 보유, 자식세대까지 부품교체가 가능하다"는 어느 독일 가전업체 명가가 한층 다르게 보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