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에필로그] '7억짜리 희망 아연이' 취재후기 - 작은 기적, 모래성

* '7억짜리 희망' 거대백악종 앓는 아연이네 가족의 겨울나기 [뉴스보이 권근택] 2008.11.24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4601
기사의 에필로그 입니다.


24일, 아연이네 집에서의 취재.
이영학 씨가 이야기 도중 몇번이고 반복해 말한 것들이 있다. 네가지 정도를 추려본다. 하나는 '기적'이란 단어였다.

"기적을 바라는거죠."

또 하나는 '희망'.

"희망을 갖고 사는거죠."

그리고 또 하나. 자기 암시와도 같은 말 한마디.

"다 잘될 거예요."

마지막 하나는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기자님, 근데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이 많이들 볼까요?"

밝히건대 난 미덥지 못한 핀치히터였다.
그는 꾸준히 정황을 실어주던 메이저 신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포털 발행이 끊겼다고 했다. 그나마 최근 기사화된 곳은 이곳 하나. 독점을 전제로 찾아왔다 저기에 선점을 빼앗겼던 빅3 중 한 곳에 이제사 취재요청을 하기엔 일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촬영이 예정됐던 한 공중파 방송국의 간판 다큐프로는 작가가 교체되면서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여차저차해 공이 내게로 왔다.   

난 "확답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자기 소개시엔 언제나 "작은 전문지 기자입니다", 혹은 "힘 있는 매체 기자가 아닙니다"라고 거리낌없이 밝혀 왔지만 이런 땐 소리가 목으로 들어갈 수 밖에. 
메이저 기자도, 파워블로거도 아니다. 당장은 본지보다 블로거뉴스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메인에 걸리는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최대한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운에 맡겨야죠"라 답했다. 그런데 이 씨는 낙관적이었다. 이렇게 다시 반복해 말한다.

"다 잘될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기적을 믿는거죠. 지금껏 그렇게 지냈고."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배웅 나온 그는 또 한번 같은 질문을 했고 난 미안하다고 했다. 이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다 잘될 거예요"란 주문을 거는 이 씨였다. 그리고 "기적"이란 말도.

그가 이 자리에서 말하는 기적은 아연이의 생존이 아니다. 내일 당장의 성패 여부였다. 내 기사가 메인에 걸려 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 주는 것. 그에겐 그 정도 일조차도 '작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기사는 꽤나 장문이 됐다. 조금이나마 더 어필할 수 있는 제목을 고르고 또 골랐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날짜를 넘기고 동이 틀 새벽무렵이 되서야 송고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많은 조회수를 거듭 의식했다. 
어찌될지 모를 상황에서 늦은 잠을 청했다. 프리랜서의 생활패턴은 편한 듯 불편하다.

정오경 전화 한통에 일어났다. 그의 전화다. "기사 지금 보고 있습니다"로 시작된 이 씨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메인에 걸렸네요."
그는 내게 웃으며 "거 봐요, 제가 다 잘 될 거라고 했잖아요?"라 말했다. 이어지는 감사인사.

인터넷을 확인해 봤다. 정말 메인에 걸렸다. 2만여명의 조회객을 맞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문객은 10만을 넘기고 20만을 넘겼다. 기적이란 말을 너무 남발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겐 이것도 바라마지 않던 자그마한 기적임에 틀림없다.

조회수 카운터가 늘어나더니 이 날 가장많이 본 글이 됐다. 조회객의 숫자를 보니 문득 모래성이 떠오른다. 숫자 하나하나가 이에 모여드는 기적의 모래알갱이처럼 보였다. 겨울나기란 제목에 여름날 모래사장이 펼쳐질 줄이야. 
물론 모래성은 허물어진다. 물기가 마르면 균열이 생기고 이내 파도가 거세지면 신기루가 된다. 이 날 하루 네티즌들이 보여준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 이것이 한시적인 것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터. 치료가 끝날 20년 후는 너무나 멀다. 

하지만 이들 가족이 저 숫자에서 한번 더 희망을 봤다면 그걸로도 의미 하나는 남았다. 저 성체의 자리, 열기를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날에도 가끔씩 이를 들춰보며 '저런 모래성이 있었다'고 흐트러진 몸매무새를 가다듬을 수는 있을 테니까.

물론, 그 때도 어딘가 새로운 모래성이 쌓여 있기를 바란다. 여기저기서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들은 이내 기적의 20년에 닿아 있을지 모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www.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