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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어머니는 수능 아침 미역국을 끓어주셨다 [오아시스]

[오아시스] 어머니는 수능 아침 미역국을 끓어주셨다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결전의 날, 교복을 입고 식탁에 앉았다. 든든하고 뜨끈한 아침을 준비해 주신 어머니께 난 장엄한 눈빛으로 말했다.

"미역국이네?"

 

42. 어머니는 수능 아침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예비 09학번들의 수능 디데이 1일. 난 새삼스레 식겁한다. 벌써 난 저들의 10년 선배구나 하고.

강산이 한번 변했어도 그 날 일은 아직도 선명하다. 특히 세가지가 생생한데, 첫째는 돌아오는 저녁 골목길의 기억, 둘째는 난생처음 홀로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온 객기... 내 소심하던 소년기에 있어 이건 한 획을 긋는 역사였다.

마지막이 아침 식사 임팩트. 난 무슨 드라마 소재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다. 세상에... 다른 집 엄마들은 "우리 새끼 엿 먹어라"하며 찰싹 붙는 찰엿을 주신다는데 우리 엄마는 "시험 잘보라"며 미끈미끈 미역국을 퍼 주셨다.

물론 난 찰엿보단 미역국을 훨씬 좋아한다. 미역국은 밥에 말 수 있지만 찰엿은 곤란하다. 국그릇에 담긴 정성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날만은 징크스에 연연할 수 밖에 없었다. 찰엿의 행운은 믿지 않아도 미역국의 불길함은 또 그 성질이 다르니까. 행여나 한달 후 "난 몇 군데 대학에 지원했으나 연거푸 미역국을 먹었다"란 말을 꺼내게 될까 두려웠다. 다시 말하건대 "더 줄까?"하고 국자를 내밀던 어머니가 칼날 들이대는 제이슨 엄마(1편에선 그녀가 주인공이다)보다 더 무서웠다.

어떻게 됐냐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철썩'하고 붙진 않았어도 '끈쩍끈쩍'하겐 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지금껏 트라우마로 따라다녔을지도.

그런데 오늘, 난 10년의 세월을 넘어 울 엄니한테 감사하게 됐다.

실은 미역국이 수험생에게 매우 좋은 권장음식이란다.
(관련보도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4541 )

생각해보니 난 그날 강심장이었고 어렴풋이 간당간당 생각날까 말까하던 위기마다 결국은 깊숙히 숨었던 정답을 꺼내들곤 했다. 오히려 엿을 먹었다간 뇌 속의 기억들이 내 부름에 일어나려다 끈끈이에 걸린 바퀴들 마냥 나뒹굴지 않았을까.

다른 네티즌들의 공유지식을 살펴봤다. 물론 징크스를 말하는 이도 있지만 상당수는 이미 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의학적으로 이같은 사실이 판명됐음을 말하며 많이 먹어주라, 또 많이 먹여주라고 다독이는 사람들. 왜 난 이걸 지금껏 몰랐을까.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신에 순간적 효능이 좋으면 좋았지, 둔화시키거나 나쁘게 할 성분이라면 산고 겪은 산모에게 먹일 일이 하등 없는 것을.

사흘전 개그콘서트 보니 저 에피소드가 소재로 쓰였다. "엄마, 미역국이네? 엄마는 대체..." 하며 성질 엄청 내던(실은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 아들래미를 보니 기분이 미묘하다. 다행히 난 그때 저리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던 걸로 기억한다.

혹 시험을 보고나서 이 글을 보는 수험생 방문자 중 오늘 어머니의 미역국을 받은 이가 있는가. 행여나 곤두선 신경 때문에 어머니께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추운 입시날 맑고 뜨거운 국물 먹여 보내겠다고 새벽부터 고생하신게 감사할 일 아닌가.(미역국은 끓이는 방법도 상당히 까다롭다) 미역국 먹은 오늘, 분명 당신의 컨디션은 좋았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험생에 있어 특효약은 어머니가 건네는 정성, 그 자체임을 환기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