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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칼럼

사은품 받기 힘들다! 힘들어! [권근택의 오아시스]

권근택의 [오아시스]
41. 사은품 받기 힘들다! 힘들어!

#여기는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다른 것까진 좋다 이거야. 궁시렁대려면 손님 나간 뒤에 하라고!

 

새로 이사온 동네는 재밌는 풍경이 많다. 그 중 하나가 편의점이 무진장 많이 널렸다는 거. 상권 지대라 그러나? 심지어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이 반경 백여미터 이내에 세개씩 늘어져 있는걸 보기도 한다.

무대배경 설명은 이쯤 하고.

실은 요즘 한 편의점에서 벌이는 쿠폰북 행사에 재미를 들였다. 쿠폰 세 장을 모으면 예쁜 헬로키티 접시가 한 장, 또 일곱장 째를 모아 가져가면 다시 한 장... 뭐 그렇다. 남은 행사기간이 빠듯해 열심히 여기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내가 주먹밥으로 삼시 세끼 먹으면 하루에 고급 접시 하나가 생긴다! 하고.

그런데 이거 받는게 참 곤욕이더라. 처음에 석장 모아 쿠폰북을 건넸더니...

 

촬영 시작합니다. 테이크 원!

직원A - 접시가 어딨는줄 몰라요. 다음 사람한테 말해 놓을게요. 다음에 오시면 안될까요?

그러려니 했다.

 

테이크 투!

직원B - 어? 전에 있던 분이 깜빡하고 전달안했나 봐요. 다시 오시면 안될까요?

(접시 받기 힘든)비운의 주인공 - 다시 오면 세번짼데? 아니 무슨 행사가...

직원B - 이거 받으러 오는 분이 단 한 분도 없었거든요. 점장님께 물어봐야... 행사 시작한지도 얼마 안되서...

행사 시작한지 한달째라고요! 이달이면 끝나!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다음날 다시 왔다.

 

테이크 쓰리!

(접시 받기 힘든) 비운의 주인공 - 접시 있어요?

직원B - 네!

첫번째 미션은 이렇게 삼세번으로 클리어. 롤플레잉 게임이었다면 이런 서술이다.

"세번만에 경험치를 채워 첫번째 미션을 성공하고 레벨업했다. 고행이었지만 그래도 직원B 분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 .

두번째 미션은 다섯장 째(여기선 접시 대신 고급 커피우유를 준다)를 모았을 때다. 이번엔 옆동네 매장으로 들어갔다.

 

테이크 포!

(접시받기 힘든) 비운의 주인공 - (부시럭부시럭)

직원 어나더 - 아? 행사 끝났어요. (접시) 없어요.

(접시 받기 힘든) 비운의 주인공 - ...접시 말고 우유요. (5장인거 보지도 않고 '없다'부터 나오면 어떡해요 언니야...)

직원 어나더 - ...가져오세요.

서술 들어간다. "사은품 소비를 막으려는 고도의 책략에 까딱했음 말려들 뻔 했다..."

여기까진 좋다 이거야. 문제는 오늘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점심 때 먹을 주먹밥을 사들고 일곱장째 쿠폰을 붙여 내밀었다. 이번엔 다시 테이크 쓰리까지 찍었던 최초의 매장. 안주인 쯤 되어보이는 분은 이걸 보더니 "할 줄 모른다"부터 꺼낸다. 따로 점장님의 존재를 말하는 걸 보니 마스터는 아니고 중간 보스 쯤 되겠다.

 

테이크 파이브!(여기까지 찍을 줄 누가 알았누?)

중간 보스(?) - 이거 해 본 적 없어서요. 다음번에 오세요.

같은 말이더라도 직원A, B 이런 양반들처럼 "다음번에 오시면 안될까요?"의 회유형하고, 위풍당당하게 "다음에 오세요, 다음 손님!" 하는 결론형하고는 심리공격의 쇼크효과에 있어 차원이 다르다. 과연 중간보스. 그냥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 정확한 시간을 물었다.

(접시받기 힘든)비운의 주인공 - 언제쯤 오면 될까요?

갑자기 창고 안의 점원 C를 부르는 중간보스. 점원C가 "접시? 아아 그거요..."하며 곧장 들고 나온다. 순간 '어억!'했다. 그럼 두번 걸음 시키려 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직원에게 물어보라고요. 다른 손님 먼저 계산할테니 잠시 기다리라 하면 못 기다려줄 줄 알았어?

자고로 러시아인은 장편을 좋아하고 부산 사람은 바다를 보며 자라기에 대인배의 여유를 좋아한다고...

(접시받기 힘든)비운의 주인공 - 저, 저번에도 직원분들이 모른다 하셔서 세번을 왔다갔다 했는데...

근데 그 말을 또 끊는다냐.

중간 보스(?) - 해 본적이 없어서, 몰라서 그래요.

(접시받기 힘든) 비운의 주인공 - (독백) 그러니까 글쎄, 행사 시작한지가 한달이 넘어 끝물...

중간 보스는 점장이라 부르는 마스터의 존재와 통화로 물어물어 바코드 찍고, 사인쿠폰을 받고, 접시를 건넨다. 사은품 하나 주고받는게 이토록 힘든 미션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말도 안해. 문제는 문을 열고 나갈 때였다. 다음 손님 계산을 하던 중간보스에게서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간 보스(?) - 치...

치? 쌍시옷 다음으로 굴욕적이라는 치옷?

닫혀버린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 물어보고 싶었다. "그 다음 말은 뭐요? 별 놈이 별 걸 다 가져와서 쪼잔하게... 이거야?" 라고. 하지만 여하튼, 여기서 Fin이다.

 

자문자답이지만, 어쩜 정말 쪼잔한지도 모른다. 소비자고발도 아니고, 기사 쓴다는 너엄이 자기가 겪은 불편을 이렇게 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난 쪼잔한 너엄이 맞는가'라며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면서 변명으로는 슬쩍 "이건 공익을 위한, 언론인의 사명에 의거한 고발이다"를 꺼낸다.(꺼내보이는 스스로도 참... 뭣하다) 

그래도, 쿠폰북 가져가 사은품 챙겨가겠다는 것에 대해 누가 '쪼잔하다' 묻는다면? 그 사안에 있어선 난 칼춤부터 추련다. 없는거 내놓으라 억지 부리는 것도 아니요, 자신들이 포스터 붙이고 버젓이 손님을 끌어들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준비 안된 유명무실한 사은품 행사도 일종의 고객 우롱이라고. 기쁜 맘에 하악하악대며 쿠폰북 꺼내는 이를 고생시키는건 너무 무책임하다고요.

그도 아니면 최소한, 안들리는데서 시부렁대시던가.

     
 


  그래도 고생한 보답은 있어서, 접시는 참 맘에 든다. 오오, 헬로키티 여사님 오오...   
 


추신 - 접시 속의 헬로키티 여사는('나는 편의점에 탐닉한다'의 저자 채다인 님에 의하면 35세 독신이시다) 말이 없으시다. 그도 그럴 것이 입이 없으니까.(입 없는데 아이스크림은 어케 드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신비주의도 맘에 든다. 30대에 소녀틱한 것도 이상적이다) 내가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고 과한 음식을 위에 올려놓는다해도 불평 한마디 하시지 않을 여사님이기에 좋다. 이렇듯 험난한 미션을 클리어하면서도 '좋아 죽어'를 연발하며 모시고 있다.

"귀는 크고 입은 없는 헬로키티가 롱런한 것은, 말없이 자기 말을 들어만 주는 파트너를 원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라던가. 나이가 드니, 저 캐릭터 성공론의 근거 샘플에 나도 어느새 포함돼 있었구나 싶어 놀랍다.    

결론은? 여사님을 또 모으고 싶어서라도 남은 3일간 열심히 가서 또 한장 모은다. 다음번엔 마스터와 대면해 편히 미션을 진행하고 싶군. 빈정 상하면 더 들이대는 이 못된 심보는 어찌해야 할까. 말없이 하소연을 들어주는 접시 속 여사님을 멀뚱히 들여다본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