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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 올림픽 결산 (중)

올림픽 결산 (중) - 빛과 그림자 

 
10. 은메달보다 더 기뻤던 동메달

한국 핸드볼 여자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국내팬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성공, 지난 아시아 예선에서의 잡음 등으로 언론은 줄곧 이들의 행보에 주목했고 국민들 역시 이들에 대해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사실 영화 성공 후에도 크게 달라진 바는 없었다. 전속 주방장이 없어 감독이 직접 김치찌개를 해 선수들 먹이는 사실에 한편에선 척박한 환경을 곱씹게하는 블랙코미디로, 또 한편에선 훌륭한 감독의 감동 스토리로 받아들였다.

홈팀 텃세가 우려되던 중국과의 8강전도 큰 스코어로 무사히 넘기고, 노르웨이와의 4강전. 안타깝게도 믿기지않은 동점에 이어 더욱 믿기지않는 '버저비터' 결승골(물론 핸드볼엔 버저비터가 없다)로 결승진출이 좌절됐다.

하지만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선수들은 결승 못지 않은 감정을 토해냈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두고 스코어를 벌려가며 승리가 점차 굳어져가자 헝가리와 한국의 벤치 모두 눈물을 쏟았다. 이젠 틀렸다란 회한, 그리고 우리가 해냈다란 감격의 상반된 눈물이 TV 앞에서 연이어 겹쳐졌다.

1분을 남기고 임영철 감독은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경기 직후 언론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라 평했지만 사실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우생순의 아줌마 주인공들에게 영광의 올림픽 은퇴 순간을 선물한 것. 마지막 1분간 후회없이 뛰도록 배려해준 그는 이후 "나도 이런 행동은 해본적이 없다"고 밝혔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은 웃음과 눈물로 묘한 표정 범벅을 내보였다. 어깨를 붙들고 원을 그리며 기뻐하는 모습은 금메달 결정전 못지 않은 광경.

4년전 은메달을 결정지었을 땐 결승 패배의 슬픔에 젖었던 이들, 그러나 정작 시상대에선 그보다 한계단 아래인 동메달임에도 훨씬 행복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메달 색깔보다도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승리로 장식한 것에 대한 미련없는 기쁨이 그들에겐 우선이었다.


11. 은메달 목에 걸고선 '미안합니다...' 금메달 지상주의가 남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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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춘 선수가 부상투혼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그는 기쁨이 아닌 사과를 전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 미안하다는 은메달리스트의 눈물은 선수가 아닌 올림픽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숙제거리를 던져줬다. 왕기춘은 귀국 환영행사에서도 눈물을 쏟아 아버지가 "울지마"라고 다독여야 했다.

'회손녀' 사건도 발생했다. 한 여대생이 왕기춘 선수 홈페이지에다 비아냥을 걸어뒀다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낯뜨거운 이슈로 발전해버렸다. 신상정보 유포 등의 추후 논란거리가 파생됐지만 그에 앞서 2인자에게 축하가 아닌 조소를 던지는 그릇된 언행은 지탄을 면치 못했다.

최민호는 금메달 획득 후 "동메달과 대우가 이렇게 다를줄 몰랐다"며 만년 3인자 설움을 토로했다. 금메달 아님 소용없다는 생각, "은메달 100개 따봐야 금메달 하나보다 못하다"는 종합순위 우선주의가 다시 그늘을 드리웠다.

박경모 선수 역시 마찬가지. 가족들과의 통화에서 "금메달 선물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세계 2위, 3위의 성적을 거뒀음에도 가슴을 펴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닌 축하였다.


12. 짝퉁 개막식 파문

화려한 불꽃놀이와 대규모의 인력 동원, 아름다운 동양미가 어우러져 보는 이를 감탄케 했던 개막식. 이전 SBS의 방송유출 건으로 논란이 됐지만 역시 진짜 개막식과 리허설은 큰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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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막식이 끝나자 잡음이 이어졌다. 노래를 부르던 천사같은 아이의 무대는 다른 아이의 목소리를 가져온 립싱크였고 장대한 불꽃놀이 장면의 다수가 TV 시청자들만 볼 수 있던 컴퓨터그래픽이란 사실은 그날의 감동을 한순간의 환상으로 끝내 버렸다.


13. 약물 복용에 울어야 했던 나라들

그리스에겐 최악의 대회로 남게 됐다. 무려 열여섯명의 선수가 약물 양성 반응으로 대회 참가도 못하거나 경기 도중 떠나야 했다. 결국 지난 2004년 본국에서 금메달 6개 등으로 종합 16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그리스는 이번엔 은, 동 각 2개 씩에 그쳐 종합순위 59위로 추락했다.

북한 역시 약물 양성 반응으로 은, 동메달 하나씩을 잃었다. 남자 공기권총 사격에서 진종오와 대결했던 김정수 선수는 시상식 후 양성 판정을 받아 메달 박탈에 베이징 추방이란 불명예를 덮어써야 했다.  

이후 김 선수는 호흡곤란에 따라 한약을 먹었을 뿐이라 해명했지만 박탈당한 메달 두개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14. 심판에 회전차기... 태권도 구설수

태권도 남자 80킬로그램에 출전한 쿠바의 마토스는 한순간 눈이 뒤집어졌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자신의 기권패가 선언되자 어이가 없단 반응을 보였다. 부상 치료를 위해 1분간의 이탈시간을 요청했고 이가 받아들여졌지만 이후 추가 시간을 요청해야 함을 코치도 자신도 몰랐다. 결국 1분이 지나자 멈췄던 경기시간 타이머는 돌아갔고 시간이 종료되자 자동 기권패가 선언. 주심에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서도 보기 드문 심판 폭행에 들어간다. 강렬한 회전차기에 얼굴을 얻어맞은 심판은 휘청거렸고 옆에 있던 코치는 흥분한 선수를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영구 제명의 댓가를 치뤄야 했다.


15. 동메달 던져버린 사나이... 은퇴했는데 징벌이 무슨 소용

스웨덴의 레슬링선수 아라 아브라하미안은 남자 그레코로만형 84킬로그램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다. 그러나 시상식에서 메달을 목에 걸자마자 곧장 시상대를 내려오더니 목에  걸었던 메달을 매트 위에 떨구고 나갔다. 준결승 패배 당시 판정이 공정치 못하다 항의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 후 그는 "금메달 아니면 필요없다"고 밝혔다.

올림픽위원회는 그의 징계를 결정했지만 이미 그는 시상식 퇴장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 네티즌들은 "은퇴했는데 징벌이 무슨 소용이냐"고 고개를 저었다.


16. 사랑의 큐피트

서로에게 큐피트의 화살을 쏘았나. 한국 궁사들 사이에선 경사가 겹쳤다. 박성현, 박경모 선수는 저마다 금과 은 하나씩 메달 두개를 목에 건채 결혼을 발표했다. 남자팀 맏형과 여자팀 에이스의 전격 결혼 발표는 또한번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한편 이 소식이 전해지기 전, 평소 박성현과 친분이 있던 가수 휘성은 대회가 한창일 때 그녀의 홈페이지에 최고로 섹시하다는 찬사를 올렸다. 경기 내외에서 여러모로 주목받는 올림픽 스타였다.


17. 미남자 이배영, 알고보니 오, 쾌남!

훤칠한 외모의 역도 금메달 유망주 이배영 선수는 12일 불운을 당한다. 인상에서 한국신기록 달성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용상 1차 시기에서 그만 한쪽 다리가 꺾여 쥐가 나고 만 것.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시기까지 젖먹던 힘을 냈다.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그는 바벨을 손에 쥔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실격. 눈물을 보여도 좋은 때였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하늘이)안 도와주네요"라며 싱긋 웃어보이는 쾌활함에 국민들이 도리어 위안을 얻었다. 관중들 역시 끝까지 포기않는 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메달을 놓쳤지만 최고로 멋진 실격자로 남았다.

    
 
  귀국 후 프로야구에선 그를 어떤 금메달리스트보다도 빨리 시구행사자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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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올림픽 특수와 정치

올림픽 기간 동안 여권과 청와대는 특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리얼미터는 어느새 지지율 30퍼센트를 회복한 이명박 대통령의 선전 여부에 대해 "대표선수들의 선전이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연관 여부를 떠나 국민들 시선이 베이징에 향하면서 7월말 16퍼센트까지 떨어졌던 그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준 건 사실. 

의아한건 특수 기간동안 촛불정국에 반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것. 이 대통령의 "시위자들도 언젠간 미 쇠고기 먹을 것" 발언 파문과 촛불집회 주요인물 긴급구속, PD수첩 징계와 정연주 KBS 사장 해임 등 예전이라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칠 법한 일들이 연거푸 터졌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회복세에 접어들었고 로꾸거 태극기 실수 역시 딱히 지지율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올림픽 폐막 후에도 정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임 KBS사장 내정과 대대적 귀국행사에 따른 의혹, 나아가 이연택 대한체육협회장의 귀국보고 촛불 폄하 발언 등 올림픽과 시기적으로 맞물린 사고가 계속되고 있어 한동안 잡음이 예상된다.

#사진 제공 스포츠코리아(photoro.com)


뉴스보이 권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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