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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그 많던 레코드점은 어디로 갔을까? - 부산에서 사라진 것들

부산의 그 많던 음악가게, 어디로 갔나요 
사라지는 것들 - 레코드점

 
서태지가 돌아온 29일, 때마침 부산 본가에 내려와 있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아 오늘이었구나"하고 깨달은 본인, 간만에 그립던 거리를 걸어도 볼 겸 일어서려다 순간 충격적인 사실을 검색해냈다.

"...폐장?"

석달전 기사였다. 어느 부산일보 기자가 블로그에 걸어둔 동료의 것이었는데 남포동의 SMH 매장이 문을 닫았다는 내용. 타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부산 사람에겐 꽤나 충격적인 문화소식이다. 그 매장은 부산지역 최대매장이자 인기뮤지션의 팬사인회가 심심찮게 열리던 곳.(서울에 비해 지방에선 이런 행사가 드물다) 그 레코드점이 폐점한 것은 이곳 음악팬들에 있어 음반산업의 불황을 실감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현실이다. 한동안 뜸했던 사이 이런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기사 하단엔 더 믿기지 않는 사실이 이어진다. 48개점에 달하던 부산내 매장이 현재는 4곳만 남았다는 것.

"그럴리가 있나! 남포동 그 근처만 해도 매장이 4개는 됐다고!"

갑자기 목적이 달라졌다. 내가 알던 시내 레코드점을 죄다 돌아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새 앨범 구매에다 생각치 않던 리뷰기사까지 쓰며 소기의 목적에 플러스 알파까지 더했지만...사실 주된 목적은 이거였다. 어째서일까, "암만 그래도 저정도 수준으로까지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란 내 생각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이유모를 확신과 불안한 바람이 뒤섞인 취재였다.

몇 시간 후. 설마하던 입 안 울림은 어째 허무한 탄식으로 변했다.


29일 오후 남포동 - 1곳만 남기고 전멸?!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남포동. 우선 폐점했다는 SMH매장부터 본인 눈으로 확인했다. 큼지막하던 레코드 가게는 사라지고 1000원 마트가 자리에 들어서 있다. 직접 보니 마음이 그렇다. 음료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여기 원래 레코드점 아니었냐" 묻자 그 점원은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대신 옆에 있던 점원이 웃으며 "맞아요"라 답하길래 "없어졌나요"라며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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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포동 극장가 거리에서 인상깊었던 SMH 매장(다이소 자리)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고스란히 모든걸 싸서 내 기억속으로 들어왔다.    
 


뭐 여기 소식이야 이미 알고 오지 않았느냐 자문하며 라이벌 매장을 찾았다. 블럭 하나만 돌아나가면 자갈치시장 입구 큰 길가에 꽤 큰 매장이 하나 있다. '있었다'가 될지 '있다'가 될지 모를 불확실성을 염두하며 걸은것이 2분 남짓.

"여긴 살아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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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포동에서 유일하게 생존을 확인한 가게. 수년전 아래 지하철 매장에서 승천(?)한 가게라고.   
 

'아이러브뮤직'은 아직 남아있었다. 서태지 앨범을 찾으며 반응을 물으니 점장은 "오늘 하루 쉴새없이 나가는 중"이라며 웃어보인다. 어떻게 할까 하다 일단은 다른 매장을 둘러보고자 잠시 물러갔다.

괜한 발품이었나. 결국 이 부근에서 재회한 가게는 여기가 유일했다. 시장골목 어딘가에 붙어있던 중형 매장은 골목을 두바퀴 공회전하고도 찾을수 없었고 두어개 봤던 자갈치역 지하상가의 소형 음악가게도 모두 증발했다.

다시 위 가게에 들어갔다. "여기서 하나 집을 운명이구나"하며 한 장을 구매. 계산하다 점장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 부근에 레코드점은 여기만 남고 다 없어졌나 봐요. SMH도 없어지고."

"거기 말고 또 어디?"

"시장통에도 없고 지하매장도..."

"지하매장? 바로 밑에 있던 거? 그거 우리였는데 여기 올라왔잖어."

"아 그랬었나?"

점장은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라이벌이 없어져 형편이 좀 낫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조금"이라 답한다.

"그래도 힘들지 않냐"고 질문을 바꾸자 그는 재미있는 답변을 꺼냈다. "손님이 없어서 큰 일"이라는 말을 꺼내는게 아니라 "가게가 없어서 큰 일"이라는 것.

"다 없어졌어요. 내가 이 장사를 30년간 했는데, 이젠 한 곳 빼곤 나보다 먼저 가게를 열어 명맥을 잇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 대형매장이라곤 서면에 신나라 하나 남고."


29일 저녁 서면 1차 답습 - 부산 대형매장 = only 신나라레코드?

내친김에 남포동과 더불어 부산 도심지의 양대날개인 서면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뜻하지 않게 본 적 없던 매장 하나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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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 신규 매장이라면 장수하길 기원할 뿐.  
 

두번째로 확인한 매장이다. 그리고 곧이어 세번째 매장 확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서면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신나라레코드가 나온다. 현존하는 부산 내 대형매장 중 단연 첫손에 꼽을만한 음악가게. 이 곳은 아직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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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엔 명실공히 부산 최대 음악매장인 신나라레코드, 위엔 부산최대 서점 중 하나인 동보서적이 있다. 이 건물은 자연스레 문화적으로 특별한 곳이 됐다.  
 

내려가 살펴보니 서태지 앨범의 열기를 곧장 확인할 수 있다. 날개돋힌듯 나가는 앨범. 앞으로 부산 내에서 신보 반응을 살피려면 여기 외엔 딱히 대안이 없을 듯. 그리고 이렇게 이 날 투어(?)는 끝이 났다. 부산 최대 상권인 남포동과 서면 양측을 뒤져서 확인한 건 모두 3곳. "이러다 4곳 남았다는 게 정말인거 아닐까"라며 되뇌었다.


30일 해운대 - 추억의 동네매장 하나만 남았는가

다음날 오후 학창시절을 보냈던 해운대 지역으로 나가봤다.

"여기는 남아 있어주면 좋으련만."

고교시절 팝과 가요 테입을 자주 구매하던 가게가 있었다. 라이오넬리치의 백 투 프론트 앨범, 서태지 4집, 카펜터즈와 엘자의 베스트앨범, 그리고 페이지, 일기예보... 그리운 이름들.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싱글시디인 세일러문과 마법기사레이어스 테마앨범 등도 여기서 구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용돈 꽤나 썼다. 그리고 이 곳은 아직 흑백추억으로 담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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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해운대에서 음반매장을 물어온다면 내가 가르쳐 줄 곳은 여기밖에 없다.  
 


안에 들어가 주인(예전의 그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에게 말을 걸었다. "부산시내 여기저기 뒤지는 중인데 여기가 네번째다"라 말하자 주인은 "장사안돼 죽겠다"고 푸념한다.

"스펀지 밑에 큰 거 하나 있던것도 문 닫았고, 시장에 있던 곳들도 죄다 문닫고... 찾는 사람이 있겠어요, 요샌 다 다운받는데."

"해운대여고 언덕 쪽으로 들어가 볼까요? 여러군데 있었는데."

"아 거기? 글쎄, 요샌 녹음 주문 위주로 남아있던가."

아쉽게도 그날 더이상의 매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단번에 기억나는것만 서너군데건만. 과거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들어와 "아줌마, HOT 들어왔어요?", "서태지 악보 있어요?" 하고 묻던 장소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이제 "원더걸스 있어요?"나 "SS501이요!"를 외칠 수 있는 장소는 파도에 휩쓸려 버린듯 남김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일단 부산일보 기사에서 언급한 '4곳'은 다 채웠음에 위안을 삼았다.


31일 오후 부산대 앞 - 일단 4곳은 넘겼고...

저 정도에서 끝낼까 싶었는데 이왕 시작한거 좀 더 찾아보자는 맘에 또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번엔 부산지역 최대 캠퍼스와 대학가를 자랑하는 부산대학교 앞. 100-1번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5번째 가게와 재회할 수 있었다. 음반은 물론 기타 등 연주악기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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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기억나는 매장이 있어 부산대 정문 앞으로 향했다. 이 날은 그래도 스타트가 좋다. 신나라레코드의 부산대점이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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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좋은 스타트가 부산대에서 건진 수확의 전부. 부근에서 규모면에선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는 매장 하나가 업소로 바뀌었고 정문 앞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놨던 가게 역시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에 자리잡고 음악소리를 키우고 있는 길보드 리어카 노점상이 반갑게 느껴졌다.

31일 오후 서면 2차 답습 - SKC 매장 소멸

그러고보니 서면에 긴가민가한 곳이 하나 남아있었다. 규모에 있어선 서면 신나라, 사라진 남포동 SMH과 견줄법한 SKC 매장이 그것. 지하에 신나라가 있다면 지상엔 SKC가 있다고 말할법한 서면 매장이다. "예전에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를 읊조리며 재차 확인하러 가다가 우연히 부전지하상가에서 새 가게 하나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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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과 장난감이 혼재된 가게. 과거엔 정말 흔하게 찾아볼 수 있던 지하철 상가매장조차 너무나 희귀한 장소가 돼 버렸다.   
 

서면 1번지로 올라와 SKC 매장을 찾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롯데리아로 변했구나."

가뜩이나 패스트푸드점이 밀집한 지역인데 롯데리아가 신규 참전, 피튀기는 경쟁에 나섰다.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맥도날드, 사진찍고 있는 이리로 건너오면 버거킹이 이웃하고 있고 조금만 더 걸어들어가면 이틀전 찾았던 신나라 매장 옆에 맥도날드가 하나 더 있다.(내가 아는 프랜차이즈 최단거리다) 그리고 거기서 밀리오레 방향으로 쭈욱 걸어가면 맥도날드가 또 하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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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저녁 경성대-남천동 라인 - KBS 앞에서 이동통신과의 복합매장 하나 추가, 라스트 라인업

간만에 찾은 경성대 부근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음악가게를 찾아보지 못했다. 아는 곳은 이미 3년전 쯤 다 폐점. 혹시나 신규생성된 곳은 없을까 기대한 건 무리였나.

버스를 타고 남천동 지역을 훑었다. 예전 몇번 들렀던 가게는 조금씩 군것질 가게로 변하더니만, 김밥천국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사흘간의 여정에서 마지막으로 생존을 확인한 매장은 남천동 부산 KBS앞에 자리한 레코드점이었다. 이름이 도레미레코드 점이었던가. 간판이 모 이동통신 대리점으로 바뀌어 순간 놓칠 뻔했다. 움직이는 차내에서 가게 안을 동체시력으로 훑으니 음악샵만으론 운영이 어려웠는지 앞부분은 비워놓고(아마 이동통신 가입공간으로 활용하는듯) 음반은 뒷편에 비치, 반쪽 운영 중이었다.


마치며

정리한다. 사흘간 뒤졌던 곳은 남포동, 서면, 해운대, 부산대, 경성대-남천동 라인. 이외에 양정로터리와 망미동-연산동 라인, 기타 지하철 2호선 라인 지역 등을 찾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지간한 과거 음반매장 밀집지역은 다 나왔지 싶다. 여기서 찾아낸 매장은 모두 합쳐 8곳이었다. 과거엔 동네 한바퀴만 돌아도 중고교 부근이나 번화가에서 이만큼을 찾아냈겄만, 정말 많이도 사라졌음을 실감한다. 대학 구내 매장 등을 뒤지면 좀 더 나왔을법 하지만 시간관계상 들어가지 못했다.

누군가 이런 말을 꺼낸 적 있다. "원래 이 세상은 1999년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며 종말을 맞이해야 했으나 인터넷이 인간의 욕망을 빨아들이면서 종말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생각해보니 인터넷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빨아들였다. 음악시장말이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음반에서 디지털음원으로의 시장 변화, 그리고 다운로드 등으로 인해 그렇게나 많던 음악가게들은 이제 희귀매장으로 변하고 있다. 비단 부산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이 저물어가는거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낭만 하나가 눈 앞에서 추억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에 만감이 교차한다.

물론 본인 역시 양심적으로만 살아오진 않았다. 이럴 때 공짜 다운족에 큰소리 한번 낼 수 있도록 살아왔다면...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저 친근하던 매장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지금의 안타까움엔 내 지난날 과오도 한 몫했다는 고해성사때문에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