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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서태지, 들을 때마다 다른 것을 보게 하는 마법사

[리뷰]돌아온 서태지, 들을 때마다 다른 것을 보게 하는 마법사
새 싱글 모아이, '아이들' 시절 추억하는 올드팬들에 손짓...팔색조 마력 겸비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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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새 앨범 '모아이'가 발매된 29일. 10만장 매진의 열풍은 부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일 오후 찾은 남포동의 한 레코드점에선 그의 앨범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계속됐다. 물품은 아예 계산대 위에 올려진 채 판매중이었다.

"아저씨, 예약한 거 있죠? 서태지."

예약물을 찾아 돌아가는 손님 뒤를 이어 기자 역시 한 장 달라 주문했다. 점장은 "오늘 아침부터 날개돋힌듯 팔렸다"며 화색.

"서울에서는 벌써 매진됐다는 전화가 와요. '혹 거기 물건 좀 넉넉하면 이리로 넘겨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데뷔무대였던 '특종 TV 연예' 방영분부터 지난 16년간 팬이었던 사람으로선 반가운 일. 하지만 '그럼 그렇지'하고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매 앨범마다 '당일 매진'이란 말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언제나 화제였으니까.

다만, 팬임에도 '과연 이번 앨범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고 던진 자문엔 솔직히 자신없었다. 여기서 잠깐 서태지 팬으로서의 본인을 소개하자면.

테입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1집부터 4집까지의 정규앨범과 93년 마지막축제 라이브앨범, 1집 리믹스 앨범, 굿바이 앨범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부터 출발하다보니 이 중엔 길거리 '비품'도 섞여있지만 이후 상당수는 몇년후 다시 새앨범으로 구매. 솔로로 컴백했을 때의 앨범과 '태지의 화' 앨범도 소장 중. 그러나 이후 15주년 베스트앨범 등은 구매하지 않았다.

이쯤하면 눈치챘겠지만 팬이라고는 해도 홀로서기 이후 최근엔 관심이 시들했던게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태지' 보단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에 가까웠다고 할까.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앨범은 1집 앨범. 첫인상의 강렬함으로 인해 이후 십수년간을 계속 팬이라 자처하며 살 수 있었고, 바꿔 말하면 처음의 그 즐거움을 넘어서는 후속작은 없었다.

그렇다. 본인은 그의 실험적 작품보단 대중적인 작품을 좋아한다. 특히 달콤한 멜로디가 담긴 것들. 1집의 '이제는',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같은 곡 말이다. 3집의 락 분위기도 좋아한다. 단, 여기엔 '팝이 가미된'이란 말이 선행돼 있었다. 똑같이 락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이후 홀로서기해 발표한 테이크 시리즈(5는 좋아한다) 등은 사실 본인 취향은 아니었다. 쉽게 말해 '대중적'이기 그지없는 식성. 다시말해 "그의 진정한 음악은 솔로 이후 시작됐다"며 그의 실험적 음악을 즐기던 이들과는 정반대되는 입장.

이렇다보니 개인적으로는 들려있는 앨범이 부디 '말랑말랑'하기를 바랐다. 비록 1, 2집 때 발라드의 그것을 느끼는건 불가능하겠지만.

케이스를 개봉하고 헤드폰으로 4곡(1곡은 리믹스)을 한번씩 들어본 소감은 '지화자'. "이게 얼마만에 듣는 서태지표 '팝'이냐"는 기쁨. 기대 이상으로 말랑말랑한 곡들이다. 난해하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본인이 좋아하던 그만의 감수성이 역시 환영해 마지않는 전자사운드와 락에 가미되어 은은히 배어나온다. 과거 그의 대중적 음악을 좋아했던 이라면 두 손들고 환영할 만한 '경사'다. 몇번이고 반복해 듣는다. 역시 좋다.

전체 분위기를 축약해 표현하자면 '첫 인상은 슈크림, 두번째 인상은 박하사탕' 정도. 트랙별로 감흥을 쏟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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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번째 트랙 모아이. 물방울 튀는 자연의 소리와 리드미컬한 드럼, 상쾌한 전자음이 그만의 독특한 미성과 기묘한 어울림을 갖는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피아노건반 위론 기분좋게 연주자의 손가락이 떨어져 내리고 저 너머에선 서태지가 마이크를 쥐고 기분좋게 미간을 좁혀 온다. 박하사탕의 '화'한 맛이 음색에서 전해진다.

이를 새롭게 담은 네번째 트랙 역시 기본적으론 모든게 흡사하다. 다만 틀린 게 있다면 앞서의 것이 '박하사탕'이라면 이건 박하향 담배 한 모금을 뱉을때라고 할까. 비록 끽연자가 아니라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억지로 물어본 담배에 박하맛이 은은히 배어있고, 이것이 끽연자로하여금 금연을 못하게 만드는 카타르시스의 순간, 즉 깊게 들이쉬었다 내뱉을 때에 이르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트랙인 휴먼드림은 도입 초반부부터 톡톡 튀는 발랄함을 전달한다. 혹 예전 솔로앨범의 파격성에 '불친절하다'란 거부감을 느꼈던 이라면 이번엔 "너무나 친절하게 다가와 준다"는 탄성을 내지를법하다. 혹시 체리향 나는 무알콜칵테일에 토스트 하나를 곁들여 아침식사상에 올려놓으면 바삭바삭한 소리에 달콤한 향이 더해져 이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혹 소녀의 감성과 소년의 장난기가 만나면 이렇듯 톡톡튈까 싶기도 하다. 톡톡 쏘지만 탄산음료의 그것과는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세번째 트랙 틱탁. 이런 음악은 한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 유사한 곡을 찾을 수 없으니 빗댈 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이질적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지금은 떠올릴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 혹은 아주 먼 훗날에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그리운 느낌을 담고 있다. 기계음이 노이즈와 번져 흐르지만, 그 음악이 흐르는 공간엔 금속만 차 있지 않다. 어디선가 쇳조각 냄새가 흐르지만, 다시 맡아보면 이는 인간의 피 냄새로 화한다. 강한 사운드는 중후반 부분, 순간 애잔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로 짧은 변신을 시도하는데 마치 겨울의 백설 터널을 뚫었다 싶으면 황량한 가을의 흑갈색 바람부는 들판이 펼쳐지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러나 허무한 듯한 이 두 계절의 빛은 네거티브한 언덕에서 만나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발하니 그 중심엔 그의 보컬이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고자 하는 표현이 천가지 만가지로 늘어난다.

리뷰를 쓰다보니 처음 밝히고자 했던, 그의 옛시절 대중적인 감각을 사랑하던 올드팬에게 어필하는 음반이란 점 외에도 또 하나의 매력이 숨어있었다. 그건 이전에 그가 선보였던 어떠한 음악과도 차별된 독창성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라마지 않던 옛 향수로 다가와 생각지 않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기분. 그의 솔로 앨범에서 강인한 개척정신을 느끼고 열광했던 이라면 이번 앨범이 대중친화적 사운드를 지니고 있음에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반면 장르는 달라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그가 보여준 독특한 감성과 달콤한 멜로디의 조화를 사랑했던, 아직 이를 간직하고 있던 이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선물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엔 양 쪽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킬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란 기대를 품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대개의 음악은 아무리 좋아도 몇번씩 듣다보면 감흥이 떨어지고 반복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비해 그의 이번 음악은 이미 십수번을 반복해 들었어도 그 때마다 느낌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 매번 새롭다는 인식을 하게되니 질릴 시간을 주질 않는다. 이건 이거대로 미스터리다. 트랙 4개 짜리 싱글 앨범 속에 마치 머나먼 여정이 담긴 듯 하니 말이다. 혹 첫 감흥에 매력을 못 느낀 이들이라도 다시 들어보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고 회를 거듭하면 매력은 마력이 되어 더 많은 이를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지, 혹 서태지가 이같은 미로를 '설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역시 망상일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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