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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

시민기자와 프로기자, 인간과 직업의식의 충돌

[오아시스] 인간과 직업의식의 충돌, 시민기자와 프로기자


#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카메라 내 놔요!"
"왜요?"

"아 왜 여기다 카메라를 들이대냐고."
"야 괜찮아! 우리도 찍어, 찍어!"
"이 XX가!"
"뭐 이 XXX야!"


과격해진 집회, 시민과 경찰들의 극한 대치 가운데서 기자들도 격하게 충돌했다. 피로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벌어진 인간과 직업의식의 충돌이었다.


34. 인간과 직업의식의 충돌, 시민기자와 프로기자


8일 아침의 광화문 사거리였다. 철야 촛불집회 중 물지옥의 1일 새벽, 명박산성 함락의 11일 새벽과 더불어 가장 굵고 치열했던 아침으로 기록될 쇠파이프의 8일 현장이었다. 아침이 되자 강제해산 작전이 시작됐고, 인파는 세종로 사거리의 각 길목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라인 안, 공백으로 남은 사거리 한복판에도 아직 남겨진 자들이 있었다. 취재경쟁을 벌이던 프레스진, 그리고 진압 과정에서 쓰러진 부상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들, 미처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소수의 참가자들이었다.

여기에서도 크고 작은 충돌이 빚어졌다. 한 남자는 "알아서 나가겠다"며 신호등 앞에서 담뱃불을 붙이다 끌려내려갔고, 한 여자는 폴리스라인 등을 언급하며 밖으로 나갈 것에 불응하다 "여경들을 시켜 내보내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기자 역시 "이제 그 쯤 했으면 밖으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다가 'NPC'(중립 유닛. 여기선 취재진을 말한다)임을 눈치챈 듯 유야무야됐다. (완장도 기자증 목걸이도, 프레스 가드헬멧도 없다보니 최전방 강제해산 표적이 돼 물대포에 휩쓸려 내려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시민과 경찰의 대립이 아닌, 기자와 기자의 대립 상황이 벌어졌다. 부상자 촬영을 놓고 벌어진 실랑이가 일촉즉발 상황까지 발전한 것.

그건 의료진들이 한 부상자를 둘러싸고 응급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다급한 외침이 들려 달려가보니 유혈현장이었다. 부축되어 앰뷸런스로 옮겨지는 다른 부상자와는 달리, 이번 부상자는 이동 자체가 위험한 듯 아스팔트 위에 누운 채로 보호받고 있었다. 머리부분에서 흐른 피가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어 언뜻 보기에도 위중했다.

인근에서 동시간대에 몰려든 취재진은 반사적으로 너나할 것 없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 때, 의료봉사자 중 한 사람이 "사진 찍지 말아요!"를 외쳤다. 그녀의 동료들 역시 "카메라 치워요!"를 외쳤고 한층 더 부상자를 밀도있게 에워쌌다. 한 편에선 "카메라 촬영이 환자의 쇼크를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에 기자들도 카메라를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프레스완장을 찬(어느 협회 완장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한 여성 기자는 한번 제지를 당하고 뒤로 밀렸음에도 불구, 뒤에 있던 사람들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대고선 기어코 셔터를 한 번 눌렀다. 이에 안에선 곧바로 고함소리가 터졌다. 모여있던 사람들 밖으로 나가려는 기자. 그러나, 안에선 "카메라 내놔요!"란 요구가 터졌고 이내 여성 의료봉사자 한명이 달려나오더니 그녀의 카메라 줄을 붙잡았다.

"카메라 내놔요!"

여기자는 웃으며 "왜요?"라고 묻더니 떨쳐내려 한다. 상황은 일순간 악화됐다. 몇사람이 더 가세해(의료봉사자인지 지켜보던 시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자를 압박, 그리고 여기엔 이들 의견에 동조한 시민기자들도 있었다. "다친 사람 얼굴 나왔을 거 아냐!"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번엔 성토의 대상이 된 그 기자와 같은 완장을 찬 동료 기자들(물론 소속은 제각기 달랐다)이 이를 제지했고 결국 이들의 도움으로 여기자는 현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때부터는 기성기자들과 시민기자들간의 충돌이었다. 푸른색의 시민기자단 완장을 착용한 이들과 기성기자 완장을 찬 이들끼리 고성이 오갔다. 기성기자 측에서 먼저 나선 것은 한겨레신문의 카메라기자. 오가는 고성 끝에 분위기는 험악하게 치달았다. 그런데 갑자기 주목대상이 달라졌다. 이번엔 연합뉴스 카메라기자와 또다른 시민기자가 나선 것. 시민기자 측에서 이들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기성기자 측은 "왜 우리를 찍느냐"고 화를 냈다. 그러나 뒤에 있던 또다른 시민기자는 "괜찮아, 찍어! 찍어!"하며 오히려 그들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다시피 했고 이에 연합뉴스 기자는 그를 밀쳐버렸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말리며 몸싸움을 막아섰다. 그러나 흥분한 두 사람은 계속 상대에게 달려들려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XXX야! 우리도 찍어! 찍는다고!"

"아 씨X, 나 사진기자 안해! XX가 카메라 있다고 아무대나 들이대?"

연합뉴스 기자는 목에 걸었던 자신의 카메라를 집어던질 듯한 모습을 보이다 말았다. 그와 욕설을 주고받던 시민기자 역시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 화낸 기색이 역력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처음 언쟁을 주고 받던 한겨레 기자와 시민기자는 양측을 대변해 말로 해결을 시도했다. 한겨레 기자는 웃으며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지고 사진을 지우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시민기자는 "기자님!"을 연발하며 확약을 요구했다.

"한겨레 기자님! 기자님은 분명 책임지고 저 여자기자분 사진 지우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대체 어떻게 책임지고 지우실 겁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기자 역시 물음표 부호를 머리에 띄웠다. 분명 한겨레 기자는 노련한 중견급으로 보였고 문제의 기자보다 선배로 보였다. 소속은 달라도 저들간엔 기성기자간의 동료의식이 있었기에 보호차원에서 그녀의 탈출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동업자'라 해도 소속이 다르다면 강제적으로 필름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 확답 자체가 무리이지 싶었다.

뒤에선 다른 시민기자가 외쳤다.

"내가 옆에서 봤어! 저 여기자 MBN인가 뉴시스인가 그랬어!"

이에 기성기자 측에선 "MBN엔 여기자가 없다"고 답했고 한동안 "어디 기자냐"는 말들이 오갔다. 그 와중에서도 양측 대표들은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네. 책임지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옆에선 아까의 적수들 간에 계속 욕설이 오갔다. 아마추어냐, 프로냐의 차이를 떠나 똑같이 현장을 사진으로 담는 이들간에 벌어진 충돌의 여파는 상당히 오래갔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기자는 혼란스러웠다.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손 들어 줄 수가 없었다. 기자직함이 찍힌 명함을 쥐었지만 프로라 할 수 없는 햇병아리 저널리스트, 그러나 기자증 없는 절름발이라지만 아마추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위치.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수년전, 이 판단을 위해 제시됐던 숙제를 여태까지 풀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었던 것. 대학시절 포토저널리즘 강의 때 받았던 숙제였다.

그건 로버트 케네디가 저격당해 쓰러졌던 모습을 촬영한 사진기자에 관한 강의. 총격을 받고 쓰러진 그의 앞에서 그 기자는 잠시 망설이다 카메라를 갖다댔고, 이 때 한 여성이 그를 가로막았다.

"쏘지 말아요! 나도 기자예요! 하지만 찍지 않았어요!"

그는 "찍으면 안된다"며 인간에 호소하는 그녀 앞에서 다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 주저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이윽고 그녀를 강하게 밀쳐내며 외쳤다.

"빌어먹을 여자같으니, 이건 역사야!"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그 사진이 세상에 공개됐다. 취재윤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수십년에 걸쳐 회자되는 일화다.

당시 교수님은 "기자의 직업의식과 인간과의 갈등문제"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 스스로가 하라"고 말했다. 다만, "적어도 그 때 결단하지 않았다면 저 역사적 사진은 없었으며, 기자로선 본분에 충실했던 그의 판단이 옳다"고 말했다.

사실 그 때 기자는 그보다 그녀에 더 호감이 갔다. 직업의식보단 인간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모양이다. 저 기자 역시 실은 그녀에게 화를 낸게 아니라 갈등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였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 언젠간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라고도 예측해 봤다. 기자의 본분에 대해선 좀 더 배워야 한다는 잠정결론과 함께. 그렇게 ing형으로, 결론은 수년째 장기방치 숙제로 미뤄뒀다.

지금 생각해보니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싶었다. 혼란스런 와중이었지만 굳이 저 장소에서 흔들린 내 마음의 화살표를 밝히라면 이번에도 인간의 마음 쪽에 좀 더 기울었으니까.

30년전 그 일이나 이번 일이나 크게 다를 일은 아니다 싶었다. 로버트 케네디도 당시엔 사망자가 될지 부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피 흘리며 쓰러진 누군가의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그 경중이나 상황, 촬영대상의 역사적 가치 여부를 떠나 적어도, 인간과 기자의 본분 사이에서 갈등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선 똑같다고 판단했으니까.

시민기자들은 피 흘리며 쓰러진 이의 모습을 임의 촬영하는 것을 놓고 "해선 안되는 일"이라며 인간적 도의를 선택했다. 신념은 확고했으리라. 이후 언제 어떻게, 직장 선배로 만날지도 모를 '메이저리거'들에게 "책임지고 사진 지워라"고 요구하는 한편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위까지 펼쳐보였으니 말이다.

반면, 그 기성기자는 비난이 터져나올 상황이 분명함에도 셔터를 눌렀다. 현장의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아야한다는 것, 그것이 강박관념일지, 또다른 투철한 책임감 때문일지는 그녀 자신만이 알 일이나 기자로서 고뇌해야 할 부분인건 어느 쪽이라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녀가 빠져나갈수 있도록 도왔던 프로기자들은 그같은 고충을 이해했기에 성난 사람들 앞을 막았을 것이다.

"카메라 내놔요!"란 요구에 돌아보며 "왜요?"라 물었던 그녀의 말 뒤엔 아마도 이러한 말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사진이예요"라는 말 말이다. 혹은, "나도 인간이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란 하소연일지도.

그에 반해 "괜찮아 찍어! 찍어! 우리도 찍어!"라고 분노하던 그 남자의 말 뒤엔 또 이런 말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동의없이 찍히는 기분이 어떻냐"는 말 말이다. 혹은, "하물며 피범벅으로 경련할 때는 어떻겠느냐"란 말이 이어졌을지도. 기자이자 시민인 시민기자로서 꺼내보인 분노였다.

인간과 기자 사이에서의 갈등을 두고 오래묵은 숙제장을 펼쳐본 기분이었다. 지금도 기자에겐 수년전 문장이 끊긴 지점에서 한 장 더 나아갈 자신도, 용기도, 신념이라고 거창하게 내밀 주장도 없다.

다만, "어딘가에 내던져버리고만 싶은 괴로운 숙제야"라 되뇌이면서도, 절대 눈감고 돌아서면 안될 문제임을 확신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자신이 없어도, 결론 내리지 못해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어쩜 고민만 하다 매번 그렇게 끝날지 모를 일이다. 선택을 요구하는 순간마다 결국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돌아서지만, 그건 저 시민기자들처럼 뭔가 신념을 가진 결과가 아닌, '판단 유보'의 한심한 결말일지 모른다. 혹 성난 사람들 앞에서 일순간 셔터를 눌렀어도, 비난의 눈빛 속에 궤변 하나 못 꺼내고 도망치듯 숨어버려 그저 '우발적 행동'임을 스스로 증명해보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자기 판단에 떳떳하게 나설수 있는 날은 멀었나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민 또한 노력인 것을. 전진인지 후퇴인지 헤매는 건지도 알 수 없고 언제 닿을지도 기약없는 일이지만, 해답을 찾고자 노력은 해봐야 할 게 아니겠는가. 주저앉아 있는 것보단 훨씬 나을테니까.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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