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선, 네티즌과 시티즌의 담소터.
리얼미터의 바늘은 16.9%를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설마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10%대 지지도가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33. 촛불의 밤, 청와대는 악몽을 꾼다
물론 가능성은 생각했다. 1일 새벽, 그 아수라장에서.
물대포가 더이상 '흩어 뿌리는' 살수가 아닌, 집회자 하나 하나 맞춰잡는 모습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고 되뇌었다. 이에 비하면 까짓거 지지도 10%대 추락은 안 믿길것도 없다 싶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의 "물대포 맞고 다쳤으면 거짓말" 발언은 역효과만 낳았다. 기자 역시 그 위력에 추풍낙엽 신세였던터라 절로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은 언론에 의해 그대로 노출됐다. 쿠키뉴스의 5분간 편집 영상은 내가 봤던 고대 깃발 학생의 아찔한 순간, 살수 현장, 아침 진압 당시의 모습들을 근거리에서 전부 잡아냈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이나래 씨의 폭행 장면도 담아냈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이는 72시간 연속집회에서 대규모 인원 동원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큰 반향을 얻었다. 얼굴을 군화발에 짓밟히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직후 카메라를 막아서던 경찰의 모습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저렇게 가려진 모습이 얼마나 더 있을까'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을 가져와 버렸다. 이 영상취재의 이학진 기자는 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경찰 대응이 지나쳤다고 판단한다"며 "그 여성분은 과격시위 주동자도 아니며 단지 대열에 서 있다 봉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고려대 깃발을 흔들다 살수폭포에 쓰러진 학생. 성난 군중들은 경찰에 대고 '살인자'를 외쳤다. 이 대통령의 모교 후배들까지 집회에 가세했고 서울대, 서강대, 홍익대, 부산대 등이 동맹휴업에 나서며 이젠 대학가의 운동권, 비운동권 분류조차 무색해졌다. 사망설은 이 주들어 네티즌들의 의혹을 증폭시켰다. 현재 게시자 검거 및 경찰의 잇따른 해명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는 지금도 의혹 덩어리로 남아 계속 이야기 중이다.
어느새인가 촛불 집회는 '촛불 항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현상황 자료를 보관하고자 어제 개설된 카페는 '촛불항쟁 역사자료실'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시위가 집회로, 집회가 항쟁으로 변하는동안 서울지방경찰청에선 '불법 촛불문화제'라 명시한 보도자료에 항의하는 의견이 빗발쳤다.
그리고, 결과가 이거다. 6월 4일 재보선 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했고, 네티즌들은 "자업자득"이라며 냉소했다. '민심이 이 정도일 줄이야'란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간 좌파 선동, 불온 세력을 주장하던 정부에 네티즌들은 "이래도 계속 배후설을 꺼낼거냐"고 반문했다.
5일 리얼미터의 여론 측정판은 현 정부에 있어 악몽같은 결과를 내놨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6.9%로 폭락. 지난주보다도 7.6%가 다시 떨어지며 설마설마하던 10%대 지지율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젠 "한자리수 되는 거 아니냐"란 우스갯소리조차 주목되는 시국이 됐다. 정당 지지율도 마찬가지. 불과 2주전만 해도 45%대로 고공행진, 18.6%대의 통합민주당과 더블스코어 이상 차를 벌렸던 한나라당은 이 주들어 27,2%대로 떨어졌고 야금야금 지지율을 높이던 통합민주당의 25.1%와 불과 2.1%의 차만을 남겼다. "잘한 것 하나도 없다"는 말을 듣는 민주당임에도 불구, 결국 이들에 대추격을 허용한 셈이다.
같은 날 리얼미터는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두 가지의 여론 조사결과를 내놨다. 집회의 경찰 진압 방식에 대한 여론에선 80.8%가 "폭력적"이라고 응답했다. 지지정당을 불문하고 경찰의 진압은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한나라당 지지층조차 폭력진압 의견이 60.6%로(강경진압해야 한다는 의견도 34.9%로 적지 않았다) 과반수를 넘은 것.
하나 더. 촛불집회 지속여부에 대해서도 64.5%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정부로선 어느 하나 고양이에 쫓기다 궁지에 몰린 쥐 격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미국 대사도 정말이지 시쳇말로 '도움이 안 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에 전화로 전한 유감발언에 이어 다시 'learn' 발언으로 국민들의 심기를 곤두세웠다. "얼마나 얕잡혀보였으면"이란 성토가 정부로 향했다. 이 발언을 알리던 YTN 앵커의 마지막 멘트 '해석은 각자 하시기 바랍니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지금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에 "바우와우"라 외치는 네티즌들은 "누가 '반미'를 부추기고 있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간 "인터넷 괴담"을 주장해오던 정부. 그러나 투표결과에 여론조사(위 리얼미터 결과 모두 인터넷이 아닌 전화조사결과. 이틀간 700명 조사)까지 이같이 나오면서 더 이상은 이 마저도 설득력을 기대키 어렵게 됐다. PD수첩은 지난 3일 방송에서 소통과 국민의 목소리를 언급하다 "인터넷에도 귀를 기울여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한겨레와 경향, MBC엔 "국민 방송", "우리의 신문"을 연호하며 구독 운동에 "시청료 방송사별로 납부케 해달라"는 주장이 일고 일부 보수 언론엔 절독 및 광고주 압박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기업들이 "여론을 감지 못해 죄송하다"며 이에 움직이고 있어 더이상은 이를 두고 '소수의 선동'이라고도 할 수 없게 됐다.
촛불은 연일되던 폭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목,금,토,일로 이어지는 3박 4일의 릴레이 집회는 막을 열었고 예비군부대는 지금도 "경찰과 시민 모두 우리가 지켜야할 국민"이라며 대치 진영을 막아서고 있다. 청와대 앞으로 행진한 시민들은 연일 촛불로 밤을 밝히며 "MB 나와라"를 외쳐댔고 이는 이명박 정부에 있어 선거 참패와 지지율 급락의 악몽으로 이어졌다.
촛불의 밤은 정부에 있어 연속되는 악몽의 밤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타오르는 수백미터 앞 촛불에 청와대는 오늘도 악몽을 꾼다. 반면 시민들은 기묘한 축제의 불로 밤을 밝힌다. 진압 순간마다 터지는 비명 속, 악몽을 보면서도 또다시 '비폭력'을 외치며 결집, 장엄한 축제를 연출한다. 시민악단은 환호성을 끌어내고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자신들이 피운 불을 지킨다. 촛불이기도 하고, 몸을 녹이고자 지핀 모닥불이기도 하고, 꺼뜨리지 않는 고집이기도 하다. 저 응집력은 정부에 있어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악몽의 고리, 그냥 둬서는 절로 끊어지지 않을 견고한 사슬이다. 시민들은 이를 내밀며 오늘도 그들에게 "직접 나서 풀어보라" 말한다. 자, 이제 그들은 이를 어떻게 풀고자 할 것인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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