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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가 편지 올립니다 - 명영수 서울경찰청 경비과장님께

[Dear] 거짓말쟁이가 편지 올립니다 
To. 명영수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과장


To. 명영수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과장님 앞

처음 뵙습니다. 1일 경복궁 집회 취재에서 물대포에 직격당하고 '위험하다'라 밝히는 거짓말쟁이가 편지 하나 띄웁니다.

먼저 시간이 조금 늦어버린 것에 사과드려야겠군요. 과장님 말씀을 한발 늦게 접했지 뭡니까. 물대포 찜질에 몸조리하느라 잠시 휴식했습니다. 아무래도 가뜩이나 이런 저런 말들에 심란하실텐데 매 한대 더 붙이는건 아닌가 싶군요. 거짓말쟁이가 된 제 입장에서의 반론 하나, 그리고 말씀에 있어 미처 생각치 못하셨을 차후 문제의 소지 하나를 지적하고자 펜을 듭니다.

먼저, 물대포 맞아 다쳤다면 그건 거짓말이라 하셨는데요. 전방에서 취재 중 표적이 돼 직접 맞아본 입장에서 거짓말 하나 올립니다.

현장 기록했던 제 1인칭 기사 중 한 부분을 소개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6시 상황 中 - 양 측 접선이 무너지면서 일순간 상황은 최악에 직면했다. 경찰과 시민측의 일렬 선이 서로 뒤섞이며 혼란이 가중됐다. 넘어진 채 깔려버리는 사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 저지선과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진 사람에겐 물대포가 날아왔다. 도로 가장자리를 통해 뒤돌아 후퇴하고 있던 나 역시 그대로 직격, 일순간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일어서며 생각했다. 짧은 순간인데도 불구 "이 정도 위력이면 아까 이야기처럼 직격 시 실명도 무리는 아니겠다"고 되뇌었다. 이와 함께 직전의 상황 파악 시작. 나는 다른 이들과 순간 거리가 떨어진 상황에 있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타겟 록온이다. 경찰 측에겐 "이미 경고를 했다"란 사유가, 시민 측에겐 다시 한번 밤새 외치던 "살인무기" 주장의 당위성이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일어섰지만 어느새 한데 몰려 뒤엉킨채 무너지는 사람들 아래로 다시 깔렸다.

"에이 이게 뭐야, 밀지 말라니까요!"

방패막이 된 예비군복 청년 하나가 경찰에 투덜대다 나더러 빨리 일어나라 했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하필이면 운동화가 거의 벗겨지며 왼 발목이 접질려 순간 기동성을 잃었다. 팔을 짚고 일어서려니 이번엔 부어오른 팔꿈치가 비명을 지른다.


생각해보니 한 번 더 직격 당했었네요. 사실 제가 팔에 부상을 입은 것이 물대포에 맞아 나뒹굴때인지, 아니면 일어서다 밀린 인파에 깔리면서인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합니다. 워낙 경황이 없던터라 말이죠. 하지만 말입니다, 설령 후자라 하더라도 후퇴하던 여러 사람이 뒤엉켜 대규모 부상이 우려되는 저같은 상황에 물대포가 원인을 제공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 이건 물대포 안전보다는 진격과 살수가 함께 이뤄지는 양동 작전에서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나을까요.

그럼 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죠. 물대포 직격에 따른 직접적 충격은 아닐지라도, 이로 인해 쓰러져 나뒹굴다 입게 되는 부상이라면 이 역시 물대포에 의한 부상이라 생각하는게 맞는것이 아닐지.

물대포에 의한 직접 충격 역시 '안전하다'란 주장에 대해선 물음표를 그립니다. 뒤에서 얻어맞았을 때, 제 처지는 '씻겨내려간다'란 표현이 딱 맞았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면 '날려버릴' 위력이란 표현도 가능. 행여나 얼굴에 제대로 맞았더라면, 현재 논란 중인 실명, 고막파열 등의 중상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위력이었죠. 저 당시 인파는 흩어지고 있었고 물대포는 한사람 한사람 표적삼아 맞춰잡고 있었습니다. 이미 뒤돌아 달려가던 이들까지 쓸어버리시더군요. 살포가 아닌 말 그대로 조준 직사였고 제가 느낀 위력에 비추어 본다면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선 인터넷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가 어제 나왔던데. 일부 언론이 보도한 물대포 진압 눈 실명 부상자 소식에 관련, '출혈이 있지만 실명까지 심각하진 않다'란 당직의사 소견말입니다. 실명이 아니라니 천만다행입니다만, 눈에서의 출혈이라면 이 역시 부상 위험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없겠네요.

뭐, 하지만 과장님의 그 말씀에 발끈하며 '새빨간 거짓말'이라 무작정 내몰 생각은 없습니다. 당시 살수차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거칠 것 없이 조준했겠지요. 허나 그 대신 '안전 불감증' 딱지가 붙는건 어쩔 수 없겠군요.

어린이, 노약자, 취재기자들에 미리 물러서라 경고한다고 하신 말씀, 그건 그 자리에서 사실로 확인했습니다. 군중에 대한 살수 경고에선 아이와 노약자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후, 진압 직전 마지막 방송에선 기자들에게도 '자재가 젖어 훼손될 수 있으니 물러서라'고 경고하더군요.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신체가 아니라 장비가 물에 젖는 위험에 초점이 잡힌 건 역시, 신체상엔 별다른 위해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공사벽 위에서, 즉 측면에서 카메라 촬영하던 분들은 그곳이 안전지대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군중들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막상 살수차가 포 각도를 꺾어 그들에게 물을 퍼부을때는 "저것 좀 봐"하며 놀라더군요.

경고 방송에도 자리를 지키던 어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물대포와 경찰 진격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 있으니 천천히 하라"는 요구가 터졌지만 공허했습니다. 말씀대로 분명 경고는 이뤄졌습니다. 다만 그 경고에 물러설 이들이라면 그 시각까지 남아있지도 않았겠지요. 뭐... '우린 경고했다'란 최소한의 배려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거짓말쟁이가 됐으니 이렇게 올린 말씀을 신뢰해달라 바라기엔 무리인 것을.

그럼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 부탁 올립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본론입니다. 과장님 말씀 듣고 순간 우려했던 것은 아직 물대포의 위력을 겪지 못한 채 살수차 앞에 나설 차후 집회참여자들이 그 말씀 그대로 믿을까 하는 걱정. 앞으로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서서 연일 시위하겠지요. "그 양반이 안전하다고 했는데 별 일 없겠지"하며 살수 경고가 떨어져도 행여나 그냥 얼굴을 들이대는 이들이 있을까 걱정입니다. 경찰이시니 잘 아실겁니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미리 알고 대비할 때와 무방비 상태의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여러분의 안전불감이 저들에게까지 전해졌다가 계속 부상자가 나올까 걱정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땐 과장님이 명백한 거짓말쟁이로 규탄받겠군요. 아울러 현 상황도 점차 악화될 겁니다. 최소한 과장님의 "물대포 맞고 다쳤다면 그건 거짓말" 발언 만큼은 시한폭탄 같아 조마조마하네요.

가장 안전한 장비라 말씀하셨으니, 안전한 대응을 위해 살수 동원을 자제해달라 바라는 건 곤란하겠지요. 그렇다면 시위대 안전을 위해 꺼내든 장비이니만큼, 그 뜻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말로 안전하게 사용해주시길. 앞에서의 조준 사격까지 "다쳤다는건 거짓말"이다 하시면 이는 곤란합니다. 아울러 이틀전 발언이 위험을 더 키우는 원인이 되는 건 아닐지 고려해 보시길. 해서 말인데, 물대포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하는 언론과 여론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섭섭케 생각은 마시길. 어쩜 우린 차후 벌어질 부상자의 수를 좀 더 줄이고자 과장님 말씀을 보완, 혹은 부정하는 기능을 맡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이만, 줄입니다. 개인 메일주소를 알 수 없어 대신 소속되신 서울지방경찰청 게시판에 올려놓죠.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편지, 혹 답장 주신다면 첨삭없이 말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

# 이 글은 3일 서울지방경찰청 참여광장 자유게시판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