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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

그날 그곳 촛불집회

그날 그곳 촛불집회


 
광우병에 대해서, FTA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촛불집회에 대해서 내가 확실히 아는 단 하나의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뿐이다. 슬프게도.

한쪽는 광우병와 FTA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FTA의 밝은 미래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민주주의라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법과 질서를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믿는 사람도 있다.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참여를 독려하는 열정적이고 감동적인 목소리도 들었고, 참여를 비웃는 듯한 냉철하고 차가운 시선도 보았다. 어느쪽이 옳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만약 대답한다 할지라도 다른 누구에게 내 대답을 강요할 자신이 없다.

이럴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냥 조용히 사태를 지켜봐야 할까? 아니면 일단 현장에 나가야 할까? 그냥 신경을 끄고 자신의 사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일 것이다. 나는 그냥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선택을 하기로 했다.

다녀왔다. 서울시청 앞 촛불집회에 지금 막 다녀와서 사진을 정리하고 관련 자료들을 스캐닝했다. 고작 한번 다녀온 것 가지고 누구 앞에서 잘난척할 생각도 없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선서를 할 생각도 없다.

과연 내가 다시한번 시청앞에, 청계천에 나갈지 그건 모르겠다.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그곳에서 보고 느낀바를 정리하는 일 뿐이다.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그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Ⅰ.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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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어스를 통해 살펴본 내 이동경로다. 촛불집회 참여시간은 저녁 7시부터 10시 30분 정도까지. 약 3시간 반이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나와 8시 30분 가량까지 시청앞 광장과 그 근처 도로에서 머문 뒤 잠시 자리를 피해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후 다시 시청앞으로 돌아온 건 9시 정도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두 시위대에 합류했다. 청계천까지 시위대를 따라 움직인 뒤 그 근처에서 조금 맴돌다 방향을 바꿔 교보문고쪽으로 향했다. 물론 중간에 또다른 시위대를 만났다.

지하철 광화문역 부근,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세종로 일대는 이른바 '닭창차' 로 봉쇄되어 있었다. 기타 다른 지역도 이곳저곳 봉쇄된 것 같았다. 그곳에서 전경과 시민의 대처상황을 지켜보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시간이 11시 40분 가량이었으니 대략 10시 30분쯤에 시위현장을 빠져나온 셈이다.

Ⅱ.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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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였다.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다. 주최측에서는 10만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정확한 인원은 모르겠다. 적어도 수만은 될 터이고 어쩌면 진짜 10만이 넘었는지도 모른다. 7시 정도까지만 해도 주로 시청앞 광장을 가득 매우고 있었는데, 8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 대한문 근처 도로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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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어두어진 이후에는 사실상 하나의 집회라기보다 여러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주최측의 목소리는 시청앞 광장 밖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리지조차 않았다. 그곳에서는 그곳 나름대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위치고 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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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광장 집회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거리로 향했다. 아마 9시 전후가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일부는 이쪽으로, 다른 일부는 이쪽으로. 앞에 몇몇 사람들이 깃발, 혹은 플랜카드를 앞세우고 전진했지만 뚜렷한 목적지나 단일한 지휘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그래서 때로 행진하던 사람들이 방향을 못잡고 흩어지거나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Ⅲ. 남녀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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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박수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소위 예비군 부대가 이번 집회에도 등장했다. 이들이 줄을 이어 시가지를 걸어가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조금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남녀문제, 군대와 민간인 문제를 떠나서 예비군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시위 참가자들을 '반란 음모자' 쯤으로 몰아붙히려는 사람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리는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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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집회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여고생, 여중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 일부는 호기심에 구경나온 것 같기도 했고 일부는 진지하게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전세대와는 다른 10대, 다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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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가 어찌 젊은이들의 전유물일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촛불을 든다면 어르신들도 촛불을 든다.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결코 적다고도 할 수 없었다. 촛불을 든 어르신들의 모습은 그 어느 젊은이보다도 더 힘차고 활기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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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번 촛불집회가 가장 두드러진 점은 여기에 있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참여. 물론 이들의 절대 다수는 부모 손을 잡고 온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뭤도 모르는 애를 시위판에 끌고온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채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을 나이의 어린애들, 유모차에 탄 아이들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어린이들은 종이에 구호를 쓰고, 촛불에 불을 붙혔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되었든 오늘 이들의 체험은 훗날 이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Ⅳ.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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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가 : 운동가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앞장서서 시위를 주도하려 하고, 또 각종 전단지를 돌리며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려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운동가가 맞다. 최근 많은 비판을 받는 '다함께' 부터 안티조중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사람들만큼이나 운동가들도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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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지원팀 : 속칭 메딕. 이글루스에도 몇몇분들이 의료봉사를 나간다는 글을 올리셨는데, 혹시 만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서로 못 알아봤겠지만. 의료지원팀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걸 보면 나름대로 조직을 꾸리고 역할을 나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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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KBS기자가 인터뷰하는 것도 봤고, SBS 촬영진이 사진을 찍는것도 봤다. MBC차량이나 CBS기자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도 봤다. 그러나 그런 전문 기자, 프로 기자보다 인상깊었던 건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작은 수첩을 들고 현장을 누비는 시민기자들이었다. 분명 이들이 찍은 사진이 내일 각종 블로그에 올라오리라.

Ⅴ.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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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에 집중한 구호. 둘째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과 그를 감싸는 보수언론을 비판한 구호. 셋째는 시민들의 참여와 질서유지를 독려하는 구호.

첫째는 "고시철폐 협상무효" 둘째는 "이명박을 탄핵하자" 와 "조중동은 폐간하라" 마지막은 "민주시민 함께해요" 가 내가 들은 인상적인 구호였다. 그리고보니 모두가 4/4 로 끊어진다. 신기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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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가두행진하며 외치는 구호보다는 각자 종이에 써온 구호들이다. 즉석에서 종이와 펜을 나눠주며 구호를 쓰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어 현장에 등장했던 기발하고 재미있는 구호들을 몇 소개한다.


- 장로님, 쪽팔려서 교회 못가요

- 명박지옥 탄핵천국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구절

- 양초는 내가샀다! 200원!

- 내불은 내돈으로

양초 1만개의 출처와 배후를 묻는 MB에 대한 시민들의 답변

- 배후세력은 이명박이다!

이것이 바로 배후세력의 정체

- 소고기와 대통령은 국산을 애용합시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센스로 꼽고 싶습니다.

- 아키히로상과 오사카로 함께 닭장차 투어

일본출신이 무슨 죄라고 ㅠㅠ

- 너때문에 데이트도 포기했다.

이건 대놓고 염장

- 아빠가 출근할때 기름값~
엄마가 시장가면 미친소~
우리가 학교가면 영교시~

가사를 정확히 듣지는 못했는데 대략 이렇다. 뽀뽀뽀 노래를 이용한 풍자

Ⅵ.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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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나 정당의 깃발, 대학이나 인터넷 동호회 깃발, 그리고 태극기까지. 각양각색의 깃발들이 휘날렸다. 다함께 깃발과 ANTI다함께 깃발이 동시에 휘날린 것처럼 때로 깃발들은 충돌하기도 하고(물리적 충돌은 아닙니다) 함께 걷기도 했다. 낯익은 이름, 낯익은 깃발도 많을테니 한번 찾아보시기를.

Ⅶ.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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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에 대해서는 명확히 뭐라 하기 힘들다. 분명 시위대는 도로를 무단 점거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교통경찰들의 기본적인 통제에는 비교적 잘 따랐고 가두행진 역시 일정한 대열을 이루고 질서있게 움직였다. 예비군들을 중심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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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 한편에는 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또 그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는 길에 마구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수만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치고 거리가 비교적 깔끔한 인상이었고, 그만큼 우리나라 시민들의 시민의식이 향상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Ⅷ.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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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용의자 1 : 이명박 대통령

증거 : 수많은 시민들과 목격자들이 MB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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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용의자 2 : 양초 상인

증거 : 양초 상인들이 없었다면 양초 수만개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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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용의자 3 : 집회 참가자들의 이성과 양심

증거 :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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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용의자 4 : 너

증거 : 보시는대로.


Ⅸ.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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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 최대한 원형 보존.
주의할점 : 현장에 있던 전단지의 일부일 뿐이다.
.... 판단은 각자 자유에 맡깁니다.

Ⅹ.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바는 다한 것 같군요. 사진을 많이 올려서 그런지 노트북에서 계속 끼긱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길지만 산만한 글. 결코 좋은글은 아닙니다. 저도 압니다. 다만 하나의 모자이크 그림처럼 현재의 촛불집회 정국을 바라보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듣자하니 시위대가 청와대 쪽으로 향했고, 경찰이 공식적으로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씁쓸합니다. 더구나 제가 자리를 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마음이 편치 못하군요.

반은 비겁한 변명이고 반은 진짜 슬픈 일입니다만... 결론은 역시 처음에 했던 말. "나는 확답을 못하겠습니다"이 말만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촛불집회에 특정한 배우가 없고, 중요한 건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그러나 종종 무시되는 상식을 다시한번 확인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걸로 좋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뉴스보이> 이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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