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TV SSBS TV 팀과 함께 한 26일 광화문 현장
"AI 때문에 전국의 닭장들 다 모였어."
5월 26일, 사흘 연속으로 촛불이 켜진 광화문 청계 광장. 그 인파 속에서 누구보다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쉴새없이 독설을 퍼붓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상기된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또다른 남자. 그리고, 그 뒤엔 노트북을 든 또다른 남자가 있다. 그 묘한 조합, 정제되지 않은 언어. 언뜻 봐서도 일반적 TV 방송국 중계팀은 아니다.
"아프리카 시청자 여러분, 좀 나와 주세요. 네?"
촛불 집회 현장을 직접 알리고자 생중계에 나선 네티즌들. 아프리카TV의 SSBS TV 방송국 팀이 그들의 정체였다.
현장스케치, 촛불집회 생중계에 나선 네티즌들 - 아프리카 TV SSBS TV 팀과 함께 한 26일 광화문 현장
"노트북을 3대 가져왔거든요? 그런데도 배터리가 금방 금방 떨어져요."
SSBS 방송국의 리더격인 방호석 BJ(브로드캐스팅 자키)의 손은 휴식 시간에도 노트북 자판에서 멈출 줄 모른다. 막간의 휴식 역시 배터리 교체를 위해 불가피한 시간으로 한정된다.
"1만명 정도가 우리 방송을 봤거든요? 그런데 이 중 절반은 이 자리에 나오라고 막 꼬시고 싶어."
방호석 BJ는 광고 대행사의 제작자 직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동료들도 거의가 직장인들이라 소개. 그러나 내일의 출근걱정은 생각치 않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오늘 몇 시까지 있을지. 처음엔 직장인들답게 늦게까지 남을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헌데 막상 와서 중계하다 보니 가슴이 막 저며 오네. 그냥은 못가겠어요."
청와대 행진의 24일, 신촌거리 진압의 25일... 그들은 앞선 이틀동안엔 이 장소에 없었다고 밝혔다. 오늘이 첫 출격. 결과적으론 이틀 연속 강행군을 했던 타 아프리카 방송팀의 바톤을 이어받은 셈. 어느 누구에게서 무엇 하나 지원받은 것 없이 그저 의욕 하나로 뛰어 나왔다고. 그러나 정작 대학 시절엔 학생 운동과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다 고백했다.
"제가 대학 시절엔 시위를 무지 싫어했어요. 지금도 시위, 파업... 좋아하지 않아요. 집단 이기주의 같아보이기도 하고, 뭐가 옳은지도 쉽게 알 수 없고요.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제가, 여기있는 우리 모두가 옳다는 걸 알고 있어요. 경찰은 평화집회에서 가이드 역할을 해야합니다. 허나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제 나온 거예요. 처음엔 호기심을 품고 왔죠. 하지만 이젠 울컥해요. 무게감이 달라요."
▲ 방호석 BJ는(우측) 쉴새 없이 밤새 중계를 이어갔다.
"방송 중 구사하는 언어가 너무 과격하다"고 말하자 그는 "이건 약과"라며 손을 내저었다.
"지금 욕이 심하다고요? 이건 양반이죠. 제가 축구중계를 많이 맡으면서 말이 좀 거침없긴 했는데... 사실 지금은 많이 참고 있어요."
그들은 어젯밤 일로 치민 화를 다스리는 중이라 전했다. 신촌에서 방패 진압이 본격화되던 새벽, 때마침 그 30여분간 와이브로 송신이 중단됐다고. 그게 우연이라면 그 운명에 노여울 일이라 밝혔다. 당시 노트북을 빼앗긴 동료가 있음은 물론, 구속된 시민기자가 있는 것 또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동료들 소개를 부탁하자 방 BJ는 "내가 무서워 억지로 나온 애들인데..."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홍일점인 강미란 씨(24세 대학생)는 "억지로 나온거 아니예요"라고 정정한다.
"솔직히 겁은 나요. 그래도 억지로 끌려 나온 건 아니예요. 하는 일이요? 그냥 캠프 지키고, 잡일하고..."(웃음)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한 동료는 기타를 메고 있다. 이유인즉 행여나 연행될 위기에 처하면 공연 멤버라 둘러대기 위함이라고.
"사실 우리 모두 음악 활동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죠. 정치하곤 원래 안어울리는 집단인데..."
객원 멤버도 있다. 카메라 촬영을 담당한 하민우 씨는 본래 이 팀이 아니라 아프리카 내에서 게임방송 전문 PD라고. 그러나 손이 많이 가는 네티즌 생중계에서 지원 병력을 자처하고 나섰다.
전원 재충전 완료. 청계광장에서 자리를 옮겨 이번엔 길 건너 집회장소로 향한다. 시각은 이미 9시를 넘어 집회 해산 시간인 10시에 가까워진 상황. 그러나 자진 해산 뒤에도 일부 군중들의 추가 행진이 시작되자 심야 생중계를 강행한다. 그는 "들으셨나요? 분명 자진 해산 후 자발적 행진입니다. 선동 세력 없습니다"를 외쳐댔다.
다시 이동할 채비를 하는 방호석 BJ는 땀에 축축히 젖었다. 그에게 현장에 직접 나선 소감을 물어보니 "가장 가슴 아픈 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걸 보고 무서워 하는 모습"이라 밝혔다. "옳은 일이라 생각해 나섰고 옳은 말이라 생각해 꺼내는데도 카메라에 담기는 데에 공포감을 느껴야 하는 현상황은 잘못"이라 주장했다. 아울러 "솔직히 다신 안 나왔음 한다"고 밝혔다.
"제가 여기에 나온건 이 집회가 누구나 다 알면서 동시에 또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디어의 축소된 보도 때문이예요. 미디어의 책임입니다. 마이너든 메이저든 가감없이 보도록 하는게 공통된 책임이라고요. 그런데..."
거침없이 "미디어는 죽었다"고 내뱉었다. "네티즌이 생중계에 나선 것이 언론매체의 현장 부재 때문이냐"는 질문엔 "그렇다"고 말한다.
"지금 보니 미디어는 죽었어요. 조중동을 비롯 잘 알려진 매체의 기자들은 보이지가 않네요. 오히려 여기엔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군소 신문, 매체의 기자들이 더 잘 보여요."
"내일도, 모레도 계속 나올 것"이라고 밝힌 그는 마지막으로 네티즌 시청자들에게 희망했다.
"모든 건 자유입니다. 시청을 하시는것도, 댓글로 참여하는 것도, 직접 나와 참여하시는 것도, 그리고 방관하는 것도. 하지만 자기 선택에 후회가 남는다면 이는 평생 갈 겁니다. 나오세요. 그저 촛불만 평화롭게 들어주시면 됩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 미디어몽구 블로거기자 합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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