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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

드라마 '이산'에 나타난 약소군의 주군

[이야기 속 세상 보기] 약소국의 주군 
MBC 대하드라마 이산 69부


 
대국의 상인들이 소국민을 납치해 팔아넘겼다. 백성들로 장사를 벌인다는 말에 주군은 노했고 그들을 일망타진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국의 사절단이 찾아와 그들을 내놓으라 한다. 자신들이 본국에서 죄를 엄히 다스리겠다는 말에 왕은 믿을 수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 그러자, 청국 군사들은 포도청 앞으로 몰려와 무력 시위를 강행한다.

대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는 신하와, 언제까지 눈치만 살피며 다 내어 줄 것이냐는 신하들의 줄다리기. 주군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약소국의 주군 - MBC 대하드라마 이산 69부 중

홍국영의 이야기가 흘러가고, 이젠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첫 활약이자, 송연과 혜경궁 홍씨의 관계를 진전시킬 새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 것이 69부. "자칫하면 청국과의 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정조 스스로 말할만큼 문제의 경중은 남다르다.

매회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것이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번작은 물론 서 나인 때도, 허 의원 때도 그랬다. 4년주기로 찾아드는 이병훈 프로듀서 작품의 공통된 매력이 아니겠는가.

허나 대개의 경우가 지속되는 인물간의 대립과 갈등의 부산물이라면 이번 편은 국가의 존망까지 이어지는 스케일. 모처럼 출연 인물 전부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 한데 엮였다. 허준 때는 임진왜란을 그렸던 상황이 그랬고, 대장금 때엔 전염병 마을의 전소 결정이 내렸을 때가 그러했다.

물론 이른바 주말드라마식의 인물간 갈등도 건재하다. 앞서 밝혔듯 장원급제해 들어오자마자 샌님 임금과 야학하는 정약용, 오래된 벗을 잃은 공백을 곧바로 채워주는 새 인재 앞에 다시 혈색이 돌아온 임금,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온 국난의 조짐에 용기를 내어 시어머니 앞을 찾은 타박 며느리. 이 위기감에 맞물려 시청자들의 눈을 끌 만한 요소들이 풍성하다.

그리고 괄목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약소국의 주군이 강대국과 마주한 상황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임하는가하는 부분은 현재 이 나라의 형상과 겹친다는 점.

뉴스엔에선 이번 편을 두고 '조선판 소파' 문제로 다뤘다. 확실히 이방인 범죄자를 놓고 현지의 형법으로 다루느냐 송환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와 연계하는 것이 알맞다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꺼낼 이야기는 괴리감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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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 그려진 문제를 간략히 정리해 본다. 청국 상인들이 조선의 인신매매범들과 손잡고 이 나라 백성들을 배로 피랍하는 현장을 수기서 군관들이 급습, 전부 잡아들여 포도청으로 압송했다.

주변에선 정조에 곧 사절단이 찾아올 텐데 저들의 압송 문제가 불거질 것을 언질한다. 그러나 정조는 이 나라에서 이 나라 백성들에 저지른 죄니 당연히 우리 형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

염려했던 문제는 현실화됐다. 정조와 대면한 청국 태감은 저들을 방면하라 요구했고 이를 정조가 거부하자 포도청으로 군사를 보낸다. 자칫하면 양국의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으로 발전한 것.

어전 회의는 혼란스럽다. 판서들은 "대국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고 저들의 요구 수락을 간청한다. "겨우 죄인 몇사람 때문에 이나라 백성들을 위험에 빠뜨려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조와 맞수였던 영의정 장태우는 모처럼 정조와 공동전선을 편다. "더 이상 저들에게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것. 좌의정 최석주 역시 뜻을 같이 한다.  

정약용과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등은 이번 일을 해결할 전례를 찾고자 문서를 뒤지지만 어느 하나 마땅한 것이 없다. 그 때, 박제가가 찾아낸 것은 현종 때의 일화. 청국 황제의 칙서를 요구하고 시간을 벌 수 있는 비책이었다. 그러나 상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아 자신이 황제의 대리인이니 직접 칙서를 건네겠다고 맞선다. 그리고, 이 때 예기치 못했던 인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송연이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현재의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을 생각해 연관짓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죄인 송환 문제 및 무력 대치에 무역 협상과 그 여파를 떠올리는건 분명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자가 이 둘에서 공통된 문제를 의식하게 된 것은 강대국과의 마찰에서 약소국의 군주가 어떠한 자세로 임하는가 하는 연관성 때문이었다. 정조는 어전회의에서 신하들이 고한 이야기를 홀로 남아 다시 떠올린다. "어찌하여 저들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십니까, 일단은 이것을 넘긴 후에..."라며 청국의 뜻을 들어주라는 말과 "그렇게 언제까지 저들 뜻대로만 따를 것인가"란 장태우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정조의 뜻은 처음부터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저지른 짓이니 그냥 둘 수 없다"였다.

양 쪽 모두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한 일"임을 주장한다. 주장하는 바는 다르나 모두가 나라의 국민을 위한 일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지금의 현안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후 "우리 국민들도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라 자평했다. 이 나라 국민들을 위한 결단이었고 성과라는 말이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나선 사람들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 위험한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며 역시 국민 모두를 위해 반대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조공을 바쳤다"는 원성과 함께 "이 나라 국민들 건강을 저들에 팔아넘겼다"는 비난까지 터졌다. 

강국과의 대화에 임하는 모습 역시 현실과 작품은 완벽히 대조된다. 청국 태감이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고했을때 정조는 "아니, 난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 없소"라며 "우리의 일은 우리가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강대국인 당신들의 말만으로 신뢰를 보낼수는 없으며 이는 우리의 주권문제임을 명확히 주장한 것.

쇠고기 협상과 청문회, 국민들에 대한 발언에서 현 정부는 어떠한 말들을 했나. 100분 토론에서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은 미국에 대한 신뢰감의 근원을 추궁하자 "미국을 못 믿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국을 믿어라'고 일관했다. 정부의 대미 신뢰에 PD수첩은 "미국 측의 선의만을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청문회에서 장관과 이하 관계자들은 수시간 내내 "OIE의 판정이 그러니까..."로 답변했다. OIE와 미국의 관계 논란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이 역시 우리가 주체가 아닌 타인의 판정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다가 이는 권고사항. 이상길 단장 스스로도 '권고사항'이라(청문회 당시 강기갑 의원의 공세에 결국 권고사항임을 인정했다) 밝혔고 PD수첩에서 OIE 부회장 역시 "우리의 기준은 권고사항이지 어떠한 강제력도 없다"고 밝힌바 있다. '금과옥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입의 합당함을 주장하는 정부 측 최대 근거였던 OIE는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엔 역부족인 단어가 됐다.

여론에선 과학적 입증 뿐 아니라 우리의 검역주권을 포기했다는 국민적 상처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수백년전 정조 시대에도 강대국이었던 청국에 있어 심기를 건드리면 제물이 될 수 있는 약소국이자 신하국이었고, 현재도 미국에 있어선 함부로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상대적 약소국이다. 우방국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새인가 미국은 '형님 나라'가 됐고, 이는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에게까지 '신하국'임을 자처했던 지난 날 조선의 입장과 별다를게 없다. 이번 문제와 연관한 기사 등에 쇠고기 수입을 열렬히 찬성하는 리플을 대거 작성, 안티 스타덤에 오른(?) 어느 네티즌은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소비해 주어야 양국의 우호가 증진되며 진정한 호국"이란 주장을 폈는데 이는 결국 약소국 딱지를 여전히 떼어 내지 못하는 한국의 서글픈 현실을 스스로 전제한 셈이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번 일은 국민들에 있어서 약소국의 국민이라는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사안이었다. 설령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아 "핸디캡을 극복하고 강대국에 훌륭한 외교를 펼쳤다"는 찬사가 나왔다 하더라도 이는 "약소국이니까"라는 전제 때문에 가능한 것. 하물며 이 민감한 사안에 국민들과의 소통 없이 협상한 것을 놓고 반발이 일자 결국 대통령 스스로 "국민 앞에 너무 교만하지 않았나"라고 반성이 나오는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왜 당당히 우리에게 밝히면서 협상하지 않았나"는 성토에는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만이 담겨있지 않다. 

지금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분노를 내보이는 국민들, 그들은 대하드라마 이산의 정조가 지녔던 주군으로서의 그 담대함이 아쉬웠던게 아니었을까.   


<뉴스보이> 권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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