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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선 아나가 자살? 천만에 우리가 죽였어!

송지선 아나가 자살? 천만에 우리가 죽였어!

자살이라고? 우리가 죽인 거겠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제어 못할만큼 격한 흥분을 금할 수 없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밖에서 돌아와 뒤늦게 그녀의 투신 소식을 듣고선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몇번을 확인해도 믿기지가 않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사람의 야구팬으로서(두산 팬은 아니고 한화 팬이다) 그간 벌어졌던 상황은 계속 소식을 접하고 또 걱정스레 그녀 트위터로 들어가보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대단히 걱정스러웠던 일인데 끝내 이렇게 됐다.

그럼 내가 어째서 흥분하느냐. 혹시 그녀의 지인이냐고? 천만에.
난 그녀를 지금껏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공식석상에서 취재차 멀리서 바라봤다던지 하는 일도 없다. 그저 베이스볼투나잇야를 통해 그녀를 봤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함께 진행하던 김민아 아나운서와 나란히 설 때 누가 누군지도 분간 못할 정도였으니 팬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저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이글스의 경기가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그 프로그램을 틀면 맞이해 주던 반가운 얼굴이었다고 말하는게 더도덜도 않는 진솔한 나의 말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격한 분노를 느끼는 건 그녀가 '자살'했다는 말에 끓어오르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심정이다.
말은 바로 하자. 자살이라고? 그녀가 스스로 19층에서 뛰어내렸으니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정말이지 책임감 없는 처사가 아닌가. 그녀는 자살한게 아니라 우리가 부추기고 떠다민거다. 인정 못하겠나?

그녀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죽였다. 우리 사회가 죽인거다. 그게 아니면 그녀가 목숨을 내던질 때까지 수수방관한 거다. 우리라던가, 우리 사회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다방면에서 참 잔인하게도 그녀를 괴롭혀댔다.

한 사람의 공인이 그렇게 위태위태한 곳에 서 있었음을 한달 내내 목도하면서도 어쩜 이렇게 허무하게 그 목숨을 떠나보내는지, 그 무책임하고도 무능하며, 또 잔혹한 짓에 소름이 돋는다.

19층에 그녀는 5월 내내 서 있었다

뉴스를 보니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투신했다던가.
그래서 한 순간 몸을 날렸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는 모든 이들에 묻는데, 진정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다. 
송지선 아나운서는 사실 그 19층에 이번달, 5월 한달 내내 오래도록 서 있었다. 7일날 트위터에 올랐던 그 심상찮은 글을 쓸 때만 해도 그녀는 아직 그 난간에 손을 대고 있진 않았을 거다. 
어쩜 위로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100퍼센트 확신한다. 나 정말 힘든데, 정말 모두 다 놓고 싶은데 하는 설움담긴 독백을 누군가에게 넌지시 흘리는 것은 우리도 한번쯤 해보았거나, 아님 속으로라도 열댓번 꺼내놓고 싶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살이 사망의 주요원인으로 떠오른 현대사회의 그늘을 생각해본다면 '아니 난 그런 적 한번도 없어'라는 당신껜 진심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찬사하고 싶다. 누가 날 좀 붙들어 달라는 느낌이 자욱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우린 어떻게 해 왔나.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대체 어떤 방향으로 진행시켰나. 
지금껏 진행되어 온 상황을 살펴보라. 난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인터넷을 통해 그녀에게 악플공세를 퍼붓던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지난주 야구장에서 누군가가 잡지표지를 카메라에 들이대던 걸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박수를 쳐대던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만일 그렇다면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죄책감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

난 인터넷 여기저기서 본의 아니게 그녀가 구설수에 오르는 걸 봤다. 어쩜 그리도 내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해대던지 제3자라 부르기도 뭣한 관계없는 사람으로서도 서글퍼질 정도였다.

야구장에서 삿갓 쓰고 맥심 잡지 들이미는 잔인함

얼마전 두산과 삼성의 경기가 있었을 때, 카메라는 관중석에서 하필이면 보여줘선 안 될 곳에 가 있었다. 한 삼성 팬이 삿갓을 쓰고 맥심잡지의 표지모델이던 그녀 모습을 들이대는 그 장면. 그녀의 죽음을 돌이켜봤을 때 그 장면은 우리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의 결정판이었다. 사실 지금 이 노여움의 절반 이상은 여기에 기인한다.

의도적이었는 여부를 떠나 그 사건은 TV를 넘어 인터넷에서까지 캡처 사진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온 거다. 난 그것을 내가 응원하는 팀의 팬사이트에서 우연하게 봤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킥킥댔다. 그러나 난 정도를 넘어서 너무하다고 씁쓸한 입술을 다셨다. 차라리 누군가 정신나간 짓이라고 성토라도 해주길 바랬건만. 아니다. 나도 끝내 그러지 못했으니 할말이 없다. 그저 당사자가 제발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뜩이나 위태위태해 보였던 그녀다. 이후로도 그녀가 보여주는 심경은 마치 외줄타기 같았다. 그걸 못 느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간 휘청휘청하던 그녀의 심신을 우리 모두가 목도하지 않았나.
뻔하게 그걸 알면서도 어쩜 우린 저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그걸 그저 우리팀의 응원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는지 난 납득할 수 없다. 그녀가 그 모습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그렇게나 좋아하던 야구, 야구팬, 야구장... 거기서 벌어지는 잔혹하고도 해괴한 쇼. 대체 그 무슨 해괴한 쇼인가.

사흘 후 정말로 목숨을 내려놓은 그녀 앞에서 우린 그것에 변명할 수 있는가? 


퇴출? 징계? 흐느끼는 식구를 붙들고 더 뒤흔들어댄 회사
 

그녀가 베이스볼투나잇야에서 하차할 것이다, 아니 아예 퇴출당할 것이다, 징계 수위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이다...
그간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의 거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방송사의 결정으로 몰렸다.

정말 사람 피를 말리려 드는구나 생각했다. 불거진 일을 앞에 두고서 그녀는 방황했겠지. 모든 것을 한번에 다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 공허함, 외로움, 공포, 상실감, 답답함... 어떻게 된 것이 그녀하고는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관조자 중 한 사람인 내가 그걸 대신 직감하고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곧장 징계 수순이 인터넷 키워드에 뜬다. 회사도 참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다.

징계를 논의하는 이유는 '공인의 무책임한 언사' 정도로 요약될 것이다. 어차피 남녀관계의 만남이야 본인들의 문제고, 그녀에게서 정 책임을 묻는다면 괴로움을 토할 때 같이 묻어나왔던 스캔들의 여파에 따른 공인의 책임 정도 되겠다.

글쎄다. 물론 트윗이던 블로그던 아무리 자기 개인 영역이라도 책임있게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따져야 할 점인데, 우선은 그 사건의 성격, 그리고 피해를 입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점에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최대 피해자는 본인이다.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과 진배없는 결과였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아무리 그녀를 추궁한다 해도 자신의 문제를 경솔하게 이 사회에 꺼내보인 과오 정도로 요약된다.
한명 더 꼽는다면 소문에 함께 휩싸인 상대편 남자인데, 이에 해당하는 글에 대해 그녀는 극구 자신의 글이 아니라 강변했다. 누군가의 몹쓸 소행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지만 진정 그녀 본인의 과실인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이를 사측이 먼저 재단하는 건 '일단은 책임져라'는 너무한 처사일 뿐이었다. 

한 켠에선 이런 기사도 나온다. 단번에 입장을 표명않고 십수일간 길게 끈 회사의 미온적 태도가 화를 불렀다고.

그녀가 지난 한달 간 계속해 이 세상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직 미련을 놓지 않았던 반증이다. 그러나 한솥밥을 먹던 식구에게 그들은 참 잔혹하게도 그 줄을 뒤흔들었다. 그 과오에서 피해 갈 생각은 버리는게 좋다.


"너도 관심받고 싶냐? 진짜 절박했던 암시조차 몰라보게 만드는 세상의 불신감 

그런 생각도 한다. 세상이 지금처럼 불신으로 팽배하지만 않았어도 그녀의 자살암시 글이 떠오른 후 일의 진행은 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고.

누구라고 말은 않겠지만 우린 이미 한번쯤, 혹은 두번쯤 겪어왔다. 비운의 여주인공을 자처하고, 특정인을 지목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가 이후엔 믿음이 가지 않는 기행을 일삼으며 화를 자초하던 모습을. 그래서 우린 언젠가부터 믿지 않기 시작했다. 설령 누가 절박한 심정을 내보여도 "너도냐?"하고 냉소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번엔 진짜였다는 거다.

일전에 이상한 족적을 남겼던 그런 이들.
너네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절박한 심정은 좀 더 세상에 쉽게, 보다 일찍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당사자들의 엇갈리는 말을 듣던 여론은 서슴없이 한 쪽의 편을 들고서 상대편을 몰아붙여댔다. 난 이번 염문설에 오르내린 선수에 대해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다. 두 사람의 진상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테니 여기서 함부로 누구 말이 옳고 거짓이라며 추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도 그것이 이번 비극을 가져와 버렸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진상이 밝혀진 차후에나 평할 일이다. 극구 부인하는데 지금으로선 피의자인지 또하나의 최대 피해자인지 여부도 모를 일 아닌가.
다만 상황에 따라서 이 두 마디는 준비하고 있다.
만일 그에게 있어 억울한 무엇인가가 밝혀진다면 그 땐 먼발치서나마 '당신도 고생이 많았다'고 할 거다. 본인이 들을 수 있을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 땐 사심없이 화려하게 꽃 필 야구인생을 응원해줄 수 있겠지.
다만.
만에 하나 정말로 송지선 아나운서의 고백이 정말이었는데, 겁이 나서 거짓말 한 거라고 밝혀진다면, 그 땐 같은 남자로서 확실히 말할거다.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한 넌 남자로서 최악'이라고. 


악플러들 또 하나의 자살을 만들고 싶었냐?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지. 알 수 없는 남녀관계를 속단하고 내키는대로 써댄 악플러들의 소행. 상대 선수를 옹호하던 팬들은 급기야 그녀를 덮어놓고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욕설에 정도를 논하는 것도 웃기지만, 찾아보면 개 중엔 참 가관인 것도 많다.
불확실한 일에 남의 일이라고 상대가 볼지 어떨지도 모를 인터넷판에서 손 가는대로 써갈긴 악플러들에게 한마디만 던진다. "참 더럽게도 써갈긴다" 라고.


그렇게나 위험신호가 왔는데 우린 어째서 막지 못했지?

화가 나는 이유 중엔 또 하나가 있다. 우리 사회가 보여준 잔혹한 면모 말고도 "참 무능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것. 
그녀가 자살을 암시하는 위험 신호를 내보내고, 때문에 구조대가 달려가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위태위태한 그녀의 행보는 계속됐다. 예견된 인재였고 거듭된 위험신호였다. 그런데 우린 그걸 빤히 지켜보면서도 끝내 막지 못했다. 
그녀가 뛰어내리기 전, 그녀의 트위터를 방문했던 어떤 네티즌은 "진짜 무슨 일을 벌일 것만 같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하나의 단면이었다. 이미 우린 송지선 아나운서가 극단의 선택 직전에 와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음을.

송지선 아나운서의 비보를 듣는 순간 "참 무능한 사회다"하고 혀를 찼다. 옆에선 방조를 넘어 부추긴거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상처 주는 일을 벌이고, 그렇게나 위험신호가 십수일에 걸쳐 울리는데도... 
우린 결국 막지 못했다. 말리지도, 그녀가 마음 돌리도록 위로해주지도 못했다.

야구팬들이 사랑하던 아나운서는 그렇게 구원받지 못하고 투신했다. 돌이켜보면 악플 가득했던 여론도, 가십거리로만 일관하던 언론도, 감싸주지 못했던 회사도,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상처주는 일인지 생각도 않고 날뛰던 관중석에서의 야만도, 그녀의 처절한 메시지조차 묻히게 만들었던 거짓말쟁이들도, 모두 끝난 후에 '다 놓아버릴거야'라는 글만 한숨 섞어 바라보는 우리 사회도 모두가 다 잔인하고 무능했던 사람들이다. 

난 지난 주말, 그녀의 표지를 중계카메라에 들이대는 야구장 모습을 확인하면서 순간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비단 이 일 하나만 놓고 보지 않더라도 이거 참 큰일이다"란 생각. 그리고 또 하나는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건 정말 밑도끝도 없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건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찾아가서는 "힘내라" 한마디를 외쳐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웃기는 생각 아냐?

물론 행여나 기자 직함 꺼내는건 그 상황선 큰일날 짓이고, 그저 지나가는 행인A으로 찾아가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는 말이다. 웃기지도 않는 발상이지만, 내 머리로는 딱히, 달리 도울 방도도 모르겠고 그저 '아무것도 않고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로만 남고 싶진 않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정도는 해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사망 소식을 접하는 지금은 그 웃기지도 않는 생각조차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그랬냐'는 질문을 낳는다.

그리고. 그 나마도 해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지금의 이 격한 감정은 예외가 없다. 나 역시도 무엇 하나 도와주지 못한 이 무능하고 잔인한 세상의 구성원 중 하나다.
말도 섞어본 적 없는 한 사람의 시청자였지만, 함께 야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또 당신을 붙들어주지 못한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놓는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