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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슬로의 이상한 밤, 북유럽무비의 이상한 분위기

[리뷰] 오슬로의 이상한 밤, 북유럽무비의 이상한 분위기




스크리너를 요청할 때 배급사 담당자는 "매우 독특한 무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북유럽국가의 영화, 특히 노르웨이 영화는 매우 희소하고 신비하게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상당히 분위기가 독특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이름처럼 이상하게 다가온다. 사실 난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글을 쓴다.
동유럽국가의 영화를 보고 흔히들 중간에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봐도 제대로 몰입하지 않으면 완전히 흐름을 놓치는 걸 첫경험에서 확인했다. 당시 지친 상황에서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며 시사를 했던 건 사실인데 그래도 이렇게나 연결고리 잇기가 어려울 줄이야. 만일 그대로 리뷰를 썼다면 난 아마도 "유니크하긴 한데 뭐가 뭔진 잘 모르겠다" 정도로 얼버무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두 번째 시사를 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처음부터 제대로 본다면 몰입의 끈을 쥐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작품은 주인공 오드 호텐이 시간별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걸로 이어지는데 사실상 실패했던 첫 시사 땐 그것이 완전히 따로 놀며 맥락이 끊겼었다. 그러나 두번째 시사에선 오드 호텐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전반의 흐름을 짚을 수 있었고 일단 그것이 성공하니 영화는 꽤 담백한 맛이 있었다. 

워낙 희소한 스타일의 영화다 보니, 아마 어떤 관중은 "나도 작품을 제대로 이해를 하긴 한거야?"하고 옆사람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 대답엔 저 위의 장면이 답해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상당한 비중을 지닌 저 장면을 떠올리며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면 제대로 본 것이고 모르겠다거나 어디서 나왔더라 하고 어리둥절하면 실패다.




작품의 이야기는 줄거리만 요약해 보면 매우 간결하다. 오슬로와 베르겐 구간을 넘나들던 기관사 오드 호텐은 40년의 근속을 마치고 정년은퇴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마지막 운행 전날밤 엉뚱한 해프닝으로 운행시간을 놓쳐버렸다. 개인적으로도 아쉬움 진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추 하나가 틀어지면 다른 일도 다 엉켜버리는게 세상 일인건지, 그렇게 맞이해 버린 은퇴 첫날은 가는데마다 뜻하지 않은 사고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너무 좋아 닥치는 일마다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여버리는 그는 그렇게 우연찮은 만남과 장소이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자신과 비슷한 초로의 사람이며 흘러간 과거 내지 죽은 이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의 나이 67세, 노년의 인생에 대해 관객은 그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스토리는 받아들이는 이에 있어 매력적일수도,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역시 그 사람의 몰입도에 따라 확연하게 갈릴 것이다. 난 두 가지 모두 경험해 버렸다. 영화관을 찾는 이에게 던지는 팁이라면 처음부터 조금은 주의깊게 살피라는 거다.

배우의 연기력은 어떨까. 오드 호텐 역의 바드 오베에 대해 프레스킷에서는 '무표정의 대가'를 잇는 위대한 무표정 연기파를 말하고 있다. 워낙 캐릭터가 희노애락의 표현이 드물다 보니 90여분 남짓한 런닝타임에서 남는 것은 거의가 표정 없는 얼굴이다. 그 외엔 엷게 미소를 띠는 정도가 전부. 그 외엔 낙담한 표정도 곤란한 표정도 생각하는 표정도 무표정의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도 결국은 거기가 동일한 출발선이다.
확실한 것은 무표정한 것도 연기의 표현이기에 영화를 일단 보기로 한 우리는 다소 낯선 연기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코미디, 휴먼드라마를 장르로 내걸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코미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포장되는 모습은 일절 없다. 절제됐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할만큼 언뜻 봐선 놓쳐버릴 유머와 눈물이 담겼다. (사실 작품 속에서 외면적으로 눈물 짓는 이는 한명도 없다) 




작품은 간간이 세계지도 최북단의 추운 나라 노르웨이의 설경을 담아낸다. 흑과 백으로 펼쳐지는 노면열차의 행진은 나름 영상미를 갖췄다. 하지만 영화의 주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볼 때 마치 블랙커피에 익숙치 않은 이가 천천히 에스프레소를 맛보듯 그런 노력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영화 한 편 보겠다는데 그런 노력까지 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당신껜 이 영화를 추천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독특한 정취를 맛보고 싶다며 신선한 영화를 찾는다면 한번 추천하겠다. 내 개인적 감상은 첫 시사 땐 '내가 영화 수준을 못 따라주는 건가'하고 심히 갈등하게 만들었고 둘째 시사 땐 "여운이 괜찮은데"를 말하게 하던 작품이란 사실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표현을 자주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그 말이 딱이다. 100점 만점에 90점짜리가 될 것이냐 10점이냐는 당신의 취향에 달렸다.
 



이 녀석이 원흉이다. 주인공의 스케줄을 확 바꿔 버리며 영화도 더욱 난해하게 만든 '잘못 채운 단추'말이다. 이 녀석이 아니라면 영화는 아마도 정년을 맞이하는 40년 경력의 기관사가 그려내는 추억의 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단추를 만난 뒤에도 꽤나 많은 만남을 갖는 오드지만 극중 시간은 영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이상한밤', 즉 하룻밤을 넘나드는 짧은 시간이 전체의 골격이다. 

영화 전체의 시간 흐름을 다 합쳐도 2박 3일에 불과하다. 영화는 사실상 그의 마지막 운행이 되는 날 아침에 시작해 은퇴파티와 저 녀석과의 만남이 이뤄진 '이상한 밤의 전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틀어져버린 다음날은 '오슬로의 이상한 밤'으로 이어지고 대미를 장식하는 엔딩 장면은 또 그 다음날이다. 첫날은 서막, 둘째날은 핵심, 셋째날은 에필로그로 나눠진다. 그리고 그 동안 펼쳐지는 각 에피소드에서 당신이 얼마만큼의 감흥을 꺼낼 수가 있는가가 영화 감상의 포인트다.




그럼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40년간 한결같았던 평생을 정리하는 정년은퇴 기관사의 복잡미묘한 감상일까. 그것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담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다. 오드는 평생직장의 나날이었던 지난 40년보다도 앞선 소년기 때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건 은퇴 경기를 놓쳐버린 날 맨 먼저 찾았던 어머니를 통해 밝혀진다. 유약한 탓에 어릴 적 스키점프를 하지 못했던 그는 "이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늦게 찾아오기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란 말이 돌아온다. 노년이 되어 스키점프대를 찾은 그는 어머니의 옛 모습을 만나고, 그제사 날아오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퍼즐과도 같다. 자칫해 퍼즐맞추기에 실패하면 영화 감상은 영영 미제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오슬로로 날아갈 거예요"라던 그의 말이 어떠한 의미로 귀결되는지 찾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꽤 멋진 퍼즐의 완성그림을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괜찮은 작품도, 의미불명의 괴작도 될 수 있는 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2월 10일 개봉한다.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