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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beck), 두시간반동안 기타치는 가면라이더 좋아해?

벡(beck), 당신 기타치는 가면라이더 좋아해?




소년이 노래하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기가 막힌 보컬이 숨어있었다. 다만, 그 부분은 관객들에 들려주기 싫었나 보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영화 벡(BECK)의 일반인 시사회가 꽤나 크게 열리고 있다. 11일에 이어 12일 연일 대한극장에서 상영 중인데, 이것도 나올 때 보니까 옆 상영관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두개관을 동시에 빌려서 이틀에 걸쳐 시사를 하니 초반부터 스포트라이트가 상당한 작품이다.

난 이 영화가 원작이 있는줄 몰랐다. 알고보니 이미 지난 2004년 26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또 일전에 원작 출판만화가 있었던 일본 인기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에 실사로 담아냈다.

작품은 일본 특촬물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국내 애니메이션 케이블 채널을 선호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좋아할 법 하다. 국내선 챔프로 더빙 방영된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주인공이 밴드안에 둘이나 있다. 하나는 가부토의 미즈시마 히로, 또 하나가 후속으로 이어졌던 덴오의 사토 타케루. 강아지 벡을 통해서 맺어진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에선 순간 색다른 느낌이 들 정도. 맞다. 난 본적없지만 상대편의 악역 중 하나도 극장판 가면라이더의 출연자라던데. 게다가 전체 스토리의 비중에서 '텐도와 료타로' 두사람의 것이 또 워낙 크다 보니 가면라이더를 먼저 본 사람으로선 그 영향이 크다. 재밌는건 성우더빙으로 들었던 사람 입장에서 막상 본인 목소리가 나오니 얼굴을 봐도 한동안은 알아보질 못한다는 사실. 소리가 이미지 기억에 미치는 영향이 꽤나 컸다.




단, 이 영화에선 두 사람 다 일전의 캐릭터를 벗고 새롭게 주어진 캐릭터 벡의 코유키와 류스케를 능청스레 소화해내면서 영화가 진행되다보면 이내 새로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본드라마에서 활약하는 잘생긴 청춘배우들이 대거 투입된 탓에 시사회장은 여성팬들이 많았다. 소녀보다 아줌마 팬들이 더 많아 보이던데 내가 잘못봤나.

벡의 내용은 전형적인듯 하면서도 그것을 살짝 깨어버린 5인조 밴드의 이야기다. 결성에서부터 환상의 무대를 이끌어내는 장면까지 다루고 있다. 가지각색의 멤버가 모여 최고의 락밴드를 목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클럽무대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음반 판매로 인기몰이하며 데뷔, 이후 일본 최대의 락페스티벌 무대에 나가 수중 라이브를 펼친다. 이미 멤버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서 한순간 스치듯 그 꿈의 공연실황을 봤다. 그리고 이 와중에 사랑 이야기, 연예계 내부의 암투, 열정을 뒷받침하는 우정, 그리고 기타 루씰을 둘러싼 이야기 등 여러가지가 뒤섞여 눈과 귀에 쉴새없이 속삭여댄다.




이 작품은 꽤나 긴 런닝타임을 자랑한다. 8시30분에 시작하더니 끝나서 나가려니까 거의 11시다. 2시간 30분에 육박한다. 장편 원작의 내용을 영화 한편에 집어넣으려니 길어지는건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보여줄걸 다 못 보여줬다는 느낌이 든다. 5인조 밴드 각각의 매력과 사연을 한번에 믹스하려면 3시간 정도로 늘여야 했으려나.

그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몰입도의 끈을 훌륭하게 당기고 있다. 내용은 학교문제인 아이들의 괴롭힘, 요새는 '빵셔틀'이라고 하던데 그걸 당하는 유약한 소년 료타로... 아니지. 순간 가면라이더 때 생각이 나서. 유약한 소년 코유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코유키는 천성적으로 착한 탓에 외국산 깡패들이 괴롭히던 강아지를 구해내다 또 맞는다. 괴롭힘 당하는 착한 소년이란 컨셉은 이 배우한테 벌써 두번째다. 코유키가 자신을 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실상 첫번째 친구가 되는 사쿠라이와 연인 마호를 만나면서 천부적인 노래실력을 깨닫게 되고 기타를 배워나가며 인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 이야기는 그와 마호의 이야기가 사실상 이 작품에서 전부다.

벡을 결성한 기타리스트이자 리더, 류스케의 미즈시마 히로는 첨 보고 어? 했다. 하늘의 길을 걷는 완벽남, 가면라이더 가부토의 그다. 그래서 그가 불량배에게 얻어맞거나 하는 모습을 보고선 "빨리 변신해"하고 외칠 뻔 했다. 벡의 또 한 축을 담당하는 기타 '루씰'과 다잉브리드와의 이야기는 그로 인해 엮인다.

래퍼와 락커의 선을 넘나드는 메인보컬 치바는 자기 한계에 대한 도전, 그리고 순간 벡에서 느끼는 소외감으로 자기 껍질을 깨어 나가는 모습을 자신의 에피소드로 그려낸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잠시 그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상황이 그려지기도.

이들에 비해 드럼에서 걸상까지 다양한 리듬악기를 치는 사쿠라이나 베이시스트 타이라의 이야기는 다소 비중이 적다. 사쿠라이는 '코유키의 첫번째 멤버'로, 또 히로미와의 연애이야기로 자기 영역을 담지만 이들 팬에겐 아무래도 할애된 시간이 부족하다. 타이라의 경우는 처음부터 여기저기서 눈독들이는 실력있는 베이시스트로 등장, 벡이 흔들릴 때 이를 바로잡는 큰 형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역시나 개인적인 에피소드는 딱히 실리질 못했다. 분명 원작에선 그들의 오리지널 루트가 있을 텐데. 

분명 데스노트 처럼 영화를 2부작으로 나누는 방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 영화의 분량. 더 늘여 3시간 넘게 하자니 부담이고, 해서 일단 1편으로선 사실상 개봉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2시간 30여분의 롱타임으로 잡긴 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 




코유키는 두달만에 기타를 잡고 공연장에 나가는 실력을 보여준다. 아직 코드잡는데 급급하지만 어지간한 열정이 아니라면 힘든 성과다. 그러나 처음 마호가 인정하고 이후 멤버들이 인정하고 마지막엔 라이브장의 관객, 나아가 우천 중의 야외관객들을 사로잡는 마력의 목소리를 보이면서 어느샌가 벡의 또다른 보컬이자 히든보컬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정말 궁금하다. 진정 그의 진짜 목소리는...? (응?) 




공연 실황은 상당히 볼 만한데,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아마추어와 프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젊은 뮤지션들의 이야기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락밴드의 모습에서 벡은 재능과 성장을 무기로 한 신예들의 이야기를 무난하게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이같은 작품에서 흔히 나오는, 그래서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레퍼토리 '멤버 빼 오기'를 답습하지 않았다는 거다. 첨엔 몰라보다가 나중에 진주인걸 알고선 비열하게 멤버 내지 주인공을 빼내는 악역의 이야기는 예전 안재욱, 최진실, 차인표 주연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같은 작품에서 등장한다. 드라마성에선 어떨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작품 몰입에 그다지 달갑지 않은 요소인데, 일단 여기서의 악역은 그것 대신 경쟁자인 벡 자체를 연예계 권력으로 묻어버리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세한건 영화감상의 재미를 반감시킬까 싶어 이쯤에서) 전형적인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건 이 때문인데.

사실 한국에서 락은 여전히 메인에 서지 못하는 음악장르다. 대중적 음악 프로그램에선 여전히 댄스그룹이 강세고 발라드, 그리고 자기만의 영역을 굳게 구축한 트롯이 함께 나가고 있지만 락밴드나 로커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아예 연주악기를 들고 나오는 팀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기타를 들고 나오는 이들의 음악은 정통파 특유의 강렬함을 희석시킨 채 나오는데, 이는 팝이 가미된 락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락이라 받아들이기엔 모호할 때가 있다. 이런 와중에 대중적인 락 사운드를 보여주는 밴드가 영화의 허구에서나마 등장한 것은 이에 목마른 이들에게 오아시스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락밴드 이야기를 영화로... 하나쯤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 벡. 11월 18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권근택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