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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나이들어 좋은 연애

[리뷰]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나이들어 좋은 연애




절망에 인생을 흘려보내던 스트레이트샷의 남자


하비 샤인. 이 초로의 뉴요커를 어찌 할까.
멋지게 나이든 신사, 광고 음악을 하는 전문가. 이제 딸아이를 결혼시키는 아버지. 겉으로 봐선 남자로서 동경할 만한 황혼의 인생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못하다. 머나먼 영국 런던에서 결혼한다는 딸아이와는 소원하다. 이혼 후 멀어져버린 가족들. 게다가 이 시간에 맞춰 회사에선 '실패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마지막 기회를 잡으라 압박해 온다. 

여독에 지친 남자에게 세상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던져주는 듯 하다. 딸아이는 친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하겠다고 밝힌다. 게다가 일도 꼬여 그는 피로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그는 딸의 결혼을 저 멀리서 박수로 축하하며 슬프게 퇴장하고 만다. 

급하게 공항으로 떠나지만 비행기 수속에 늦어 다음 날에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세상은 완전히 그를 버리겠다는 듯 해고 통보를 날린다. 과거형이 되어 버린 듯한 딸아이,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증명하던 일자리마저 모두 놓친 남자. 

공항 라운지의 바는 언제나 실패자가 머무르는 장소인가. 시드니셀던의 소설에서 사흘동안 술만 마시고 떠난 남자의 모습을 보듯 그 역시 조니워커 한 잔을 들이킨 뒤 또 한잔을 부탁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 여자를 봤다.




고독 속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던 와인의 여자


케이트. 재미없는 런던의 영국 여인.
세상도 재미없고, 그녀 역시 재미없는 여자. 엄마는 이혼 후 심란한 마음을 그녀에게까지 전이시킨다. 남자를 만나고 사랑한다는 것에 있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여자. 그러나 소설 창작 수업에 끼어 로맨틱 소설을 꼬박꼬박 챙겨 듣고 환상을 품는다. 실패를 두려워함은, 결국 그것을 동경해서다.
공항에서 설문조사하는 직업이란 무시당하는 일상이다. 그날도 그랬다. 한 남자에게 뭔가를 건네려 했지만 피곤한 남자는 손사래치고 떠났다. 
동료는 소개팅을 주선해주지만 상대 남자는 그녈 철저히 고독 속으로 빠뜨린다. 소외감이 우울함으로 이어지고 눈물을 쏟게 한다.

언제나처럼 공항의 바에서 휴식하는 여자. 식전을 소설과 와인으로 보내던 여자에게 기억조차 가물한 남자가 인사를 해 온다. 일전에 설문지를 되밀던 남자. 퉁명스럽게 대하니 당연히 저기도 퉁명스레 대할 수 밖에. 그런데 서로 툴툴대며 자기 할 말을 꺼내다 보니 이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어른의 사랑을 채색했다


이번엔 독특하게 스크리너를 받아 시사하게 됐다. 시사회를 놓쳐버리고 부탁한 자료는 일주일가량 늦었고, 이걸 또 이번엔 이쪽 사정으로 며칠 묵혔다. 결국 정식개봉 다음날 보게 됐으니, 리뷰치곤 꽤나 늦었다. 발행하는 지금은 이미 개봉 5일째인가. 초반 관객이 입소문을 퍼뜨릴 때 즈음, 그러니 중간평가 글이 나돌 때 쯤의 평이 되겠다.

그러나 덕분에 이번 리뷰는 정말 독특한 경험이 됐다. 매번 홀로 보던 영화, 이번엔 마침 함께 만난 여동생, 엄마와 함께 집 컴퓨터로 보게 됐다. 가족끼리 보는 주말 안방극장의 분위기.

이 영화를 본 뒤 소감을 물으니 동생은 "좀 갑갑해"라고, 엄마는 "보기 좀 안쓰럽더라"고 밝혔다. 여기서 보여지는 인간군상은 그 말 그대로 상당히 딱하다. 

그러나 영화는 절망적이던 상황은 그 하루만에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까딱하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필요이상의 내용누설이 될까 멈추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이 영화는 미화인지 멋진 채색인지 몰라도 노년의 로맨스를 멋드러지게 표현해 보였다. 어른의 사랑. 서른즈음에 닿아도 애송이, 어린애로 보이는 그런 연배의 사람에겐 노년, 초로, 중년보다 그냥 '어른'으로 표현하는게 맞겠다.

하비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말한다. 제목의 '마지막 로맨스'는 이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정말 마지막일지 모를 그 나이에 만난 사람들. 어린이인지 젊은이인지 그 열정적인 시대의 연애와는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더스틴호프만, 엠마톰슨. 나이들어도 멋진 사람


영화를 보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본 게 두 주연의 프로필이다. 적잖이 놀랐다. 더스틴호프만. 영화 후크에서의 그 악역 캐릭터가, 언제나 개성파 배우로 각인됐던 그 남자가 이렇게나 달콤할 수 있나. 그것도 이렇게 적지않는 나이에. 미노년이란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피아노연주를 들려줄 때 모습은 어쩜 30년 후에 그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꼭 튀어나올 귀중한 사진자료가 될지 모른다.

엠마톰슨은 젊은 여성에게서만 바랄 수 있을 것 같던 그 새침하고 귀여운 면모를 틈틈이 내보인다. 육척단신의 더스틴호프만과 비교해 너무 커 보이는 키. 그래서 구두를 벗어 맨발로 키를 맞출 땐 더스틴호프만이나 보는 나나 감탄할 수 밖에.

이들을 보자면 나이가 들어도 남자와 여자가 멋있을 수 있구나 하고 환상을 갖게 된다. 연애란 인생의 대사를 그 때도 멋지게 할 수 있겠다는 그런 무책임한 환상까지 곁들여서.




11월, 미완성의 인간에게 바람 잔뜩 넣는 영화

11월은 로맨스 영화가 강세인가. 지난해엔 귀없는토끼를 리뷰했는데 올해는 또 이 영화. 고독한 가을에 미완의 관객들을 끌어낸다.

인간은 미완이다. 이 영화의 두 사람을 보라. 연륜으로도 미숙한 모습을 숨기지 못한다. 도리어 많은 상흔이 이들을 스스로 옥죄인다. 그리고, 솔로. 한 짝이 아니기에 결국은 미숙하다. 정말 인간이 반쪽이고, 그래서 한 쌍이 되어야 완성된다는 그런 존재라면.

특히나 이 영화는 내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하고 자신이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는 이에게 있어 바람 한번 잔뜩 집어넣는다. 그래서 영화인 게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는 금세기 최대의 쇼가 아닌가. 

 


연애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인생의 별다를 것 없었던 커다란 하루 

참. 중요한 이야기를 잊었다.
영화는 연애 이야기만 꺼내놓지 않는다. 황혼에 든 이들에 있을법한 인생의 고민. 서로의 결점을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씩 채워 그 하루새 삶을 바꿔 놓는다. 더스틴의 하비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소심했던 남자인데, 그게 엠마의 케이트가 곁에 있어주는 것 하나로 싹 달라진다. 피로연에 참석토론 권하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를 함께 참석하자고 부탁하는 그.

관객의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하비가 갑자기 용기를 내어 발언권을 요청하던 것을 보며 순간 무리수를 던지나 햇었다. 그러나 그가 일전엔 꺼내놓지 못하던 마음의 소리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래 그가 아버지로서 저런 이야기를 못할 게 대체 뭐가 있었나"하고 스스로에 반문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꺼내야 할 자신의 권한을 소심하게 포기하던 자신의 인생에 충실해 가는 모습이 진정 딸아이가 원하던 아버지였다. 때론 욕심을 내는 것이 모두의 행복을 위한 의무였다.

그리고 그녀. 정작 그가 여기서 잃었던 두가지 중 하나를 되찾았을때 그걸 도와준 그녀는 다시 소외감에 사로잡혀 떠나려 하지만, 이번엔 그가 피아노연주로 그 은혜를 갚는다. 서로가 부대끼는 것이 그들의 세상을 달리 만든다. 

하비는 자신의 꿈에 대해 재능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 기회를 붙드는데 일조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플롯으로 돌아가는 듯 하지만 꽤 촘촘한 선을 가진 것이 이 영화다. 그리고 이것은 꿈에 대해 아직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는 나이의 나에게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는 것이었다. 좀 더 삶에 충실하라고.

삶에도, 사랑에도 충실하고 싶고 아직은 꿈꾸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여러가지를 나눠줄수 있다면 좋을텐데. 예쁜 사랑을 순간적인 환상으로나마 보고 싶은 자들에게 권한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다.


권근택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