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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물벼락, 정전사태 덕에 외로운 추석 보냈다

물벼락, 정전사태 덕에 외로운 추석 보냈다




올 추석은 여느 때보다 특별(?)하다. 추석 연휴 사흘은 다 흘렀지만 여전히 뉴스에선 향후 귀경 정체 보도가 나오고, 여전히 휴일 느낌이다. 어느 직장인진 모르겠다만 최장 9일을 쉰다고 하는데 어느나라 이야기냐.

내 추석일지는 어둡고 음침했어.

21일. 연휴 첫날 쏟아진 때 아닌 물벼락.
아직 해 떨어지려면 멀었는데도 방 안은 고요하고 어둡다. 전기가 나갔기 때문에.

그렇다. 뉴스에서 나오던 그 정전 사태의 그 지역이다. 신월 양천 강서 염창 지대에 100가구 라고 하던데 그럼 이 중에 선택받아 포함된거냐. 주소상으로는 신월 바로 옆 화곡이지만 뭐 어때.

바깥엔 폭우가 쏟아져요. 나갈 수도 없어요. 집안은 Tv도 못 봐요. 초가 없어요. 그냥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침대속에 숨어들어가 벼락소리를 들었네.

그제사 전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배터리로 움직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져봤다. 카메라로 한 장 찍는다. 인증샷을 보니 어디서 사다코가 비실비실 나올것만 같다. 그럼 나는 "와 여자다" 하며 반기겠지. 혼자는 외롭다.
 
전화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게임도 할 수 없다. 비를 뚫고라도 그냥 밖에 나갈까 했으나 엄두가 안 난다. 신촌에 나갈까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홍대 전철역은 물난리. 안가길 잘했지.

남들은 가족과 상봉하여 떡을 돌린다는데, 난 굶고 있었다. 왜냐면 시장을 이 날 나가려던 참이라 부엌이 비어 있었다. 밥을 지으려면 전기밥솥에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인간극장감이다.

그렇게 약 4시간여의 정전사태가 끝났지만, 엘리베이터는 며칠새 고장 중.

다음날은 더 웃겼다. 그제사 시장을 나가려 했으나, 추석 당일이라 다 논다. 그래서 또 굶었다.

과거 '세 남자'라는 시트콤이 있었는데, 거기에 보면 박상면 씨가 추석날 술집에 갇혀 사흘간 굶어 죽기 일보직전으로 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난 천혜의 고립사태, 그리고 이로 인한 적절한 타이밍으로 추석 내내 외롭고 어둡고 배고픈 인고의 특훈을 보냈다.

뭐, 굶었다는건 과장이고, 명절답게 풍성한 특식을 갖추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군대에서도 이렇진 않았다. 덕분에 전기가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함을 알았다. 그래도 제발 이런 경험은 두번다시 답습치 않길 바란다.

당국의 적절한 수해 예방 대책을 요구한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