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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고 탈많은 싸이가 10년 됐습니다"

"말많고 탈많은 싸이가 10년 됐습니다"
'라디오스타' 연상케 한 싸이의 모습




15일, 충청북도 제천 바이오밸리.

"일어서면 저도 일어서서 할거고 앉아계시면 저도 앉아서 맞춤형 공연을 할 겁니다"

그는 진짜로 앉아버린다. 장중은 실소하고 만다.

제천 한방엑스포 개막식 현장에, 싸이가 나타났다. 간만의 모습이다. 그는 첫 곡으로 챔피언을 선곡했다.

'무리 같은데.'

사실 초반엔 무리수가 따랐다. 개막행사와 연동되어 치뤄진 그의 미니 콘서트. 행사의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여기 들어선 관중들은 대개가 중장년층이다. 사회자가 스탠딩 무대라고 했는데, 이에 익숙치 않은 관중들은 의자부터 들고 나른다. "의자는 자리에 두시고요... 젊은 층이 즐겨 하는 스탠딩 그러니까 일어서서..." 하고 진행자는 거듭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싸이 역시 나오자 마자 앉아 버린다. 헌데 그게 나이든 관중들로선 코미디 같은 재미를 안겨주는 모양이다.

한 곡이 끝나고, 두 곡 째. 싸이는 싸이였다. 주먹 쥔 채 콩콩 뛰는 특유의 댄스가 먹혀든다. 분위기는 한결 좋아졌다. 그러나 역시 연령층을 감안해야 한다.

"여기 20대 있어요? 아아 직장에 있군요. 30대? 역시, 직장에 많이 가셨군요. ...40대?"

그래서인지 다음 곡은 리메이크한 '환희'다. 그가 한 층 더 날뛰며 '싸이 타임'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관중들은 일어서기 시작한다. 본 궤도에 올랐다. 다행히도 그는 가창력, 폭발력, 무대매너를 갖춘 실력자였고, 그래서 '쟤가 뉘기였더라' 하던 노년층에게서 '잘하네' 소리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가 곡을 마치고 나가려 하자 사람들은 "앵콜"을 외친다. 백댄서들은 다 나가고, 홀로 멈춰선 그는 "이 정도 환호면 하기도 안하기도 참 애매하다"고 딴청을 부린다. 그리고, 결국 앵콜곡으로 리메이크곡 '언젠가는'을 선택했다.






간주 중에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수 싸이가 올해로 10년 됐습니다"하고 밝혔다. 벌써 10년이다.

"항상 너무 튀다 보니까 많은 얘기가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여기서 땀흘리는 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인타겟이 아닌 연령대 관객을 앞에 두고 저 정도 반응은 쉽지 않다. 그걸 한 곡 한 곡 진행할 때마다(4곡 가량 했다) 쌓아 올리는 과정은 그의 스타성을 확인하는데 충분했다.

자신이 말한 그대로다. 싸이 하면 군중이 생각하는 건 말 많고 탈 많은 가수.

뱀다리를 하나 걸치는데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군대에서였다. 폭풍같은 신병교육대 생활이 끝나고 자대 배치 받아 처음으로 뮤직뱅크를 보는데 한번도 못 본 이상한 남자 하나가 희한한 춤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거였다. 보아도 이수영도 아닌 남자 가수가 군인아저씨들 앞에서 저 만한 반응 끄는건 이례적인 일이었음을 이후 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군대 이야기 하니 결국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무대 뿐 아니라 구설수에 오르기로도 참 유명했다. 무엇보다 군대를 두 번 다녀온 것이 그의 가수생활에 있어 최대 위기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른 이들은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는 자신만의 영역을 일궈냈건만 정상에 올랐던 스타는 이렇듯 애아빠가 된 상황에서 자칫 몰락할 위기에 봉착했다. 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랬던 그를 우연찮게 제천에서 볼 줄이야. 한방엑스포 개막식을 취재하러 왔다가 처음으로 그를 육안으로 봤다.




자신을 그저 '그 튀던 총각' 정도로 인식하던 지역 어르신들 앞에서 그는 짧은 시간내에 오직 무대 위 실력 하나로 사로잡는다. 스스로 "말 많던 데뷔 10년의 싸이"라 밝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뭔가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와 겹쳐 보이는 실루엣은 '최곤'이었다. 라디오스타에 나오던 그 왕년의 가수왕 말이다. 이런저런 풍파로 인해 몰락한 그, 그에게 있어 영월은 '지탄'과는 또다른 의미의 불초지였다. '무관심', '무지'의 땅. 옛날의 영욕보단 "그런 가수가 있었고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물을만치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한 그 땅에서 그는 결국 현재의 자신을 통해 "역시 스타"란 말을 끌어낸다.

싸이가 그 풍운아처럼 다시 과거의 그 정상에 올라설 수 있을까. 10년차를 맞이한 그는 다시 하나하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확실한 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그가 '그런 사실'을 딛고 다시 실력 하나로 몸부림치는 것을 강원도 대신 충청도에서 확인했다는 거다. 과거 그 모습을 완전히 되찾는다면 그는 실존하는 최곤이 될지도 모르겠다.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