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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카메라 두고 지하철 탔던 나, 고마운 역무원들 만나 되찾았다

카메라 두고 지하철 탔던 나, 고마운 역무원들 만나 되찾았다
악몽의 30분이 일깨워준 고마움




월요일의 오후의 일이다. 상당히 바쁜 스케줄이 이어지는 날이었다. 용인, 강남, 그리고 여의도로 이어지는 스케줄은 밥 먹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도록 퍼즐마냥 끼워져 있었다. 늦더위는 여전히 기승이었고, 그래서 난 꽤나 지친 채로 귀가하고 있었다.

마침 교통카드가 바닥난 거였다. 자동충전기에다 만원짜리를 밀어넣는데 이상할정도로 먹질 않는다. 보아하니 최신식 기기인데 이 어린노무자슥이 당최 거부하는 거다. "주는 대로 처먹어, 주는 대로 처먹어"하면서 편식하는 놈을 호통쳤지만 계속 토해낸다. 결국 옆에 붙은 다른 충전기를 통해 만원어치를 채웠다. 그리고 그때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열차를 타고 보니 5호선을 타야하는데 웃기게도 9호선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정신 없는 상태였다. 뭐 거기까진 그래도, 사소한 거니 그러려니 했는데.

한참 가서 보니 뭔가가 없었다. 나의 주요무장, 메인 웨폰인 카메라가 손에도 가방 안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가 띵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거진 2년간 함께 호흡한 파트너가 오늘 하루동안 작업한 결과물들을 머금은 채 나와 안녕하고 있었다. 내가 놔 둘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다. 여의도역, 그 충전기에서 씨름할 동안 그 머리통에다 올려놓고는 그냥 온 거다.



지하철을 바꿔타려니 이게 또 급행이다. 되는 일이 이상하게 없다. 결국 가양역까지 가서는 되돌아가는 열차를 타는데 이건 또 일반.

어떻게 하나 동동대다가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유실물 센터를 접속했다. 홈페이지가 나오길래 1577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냅다 눌렀다. 여의도역에 미리 수배를 부탁하려는 요량이었다.

타들어가는 내 마음은 모르고, ARS 응답기가 몇호선은 몇번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한다. 다이얼이 먹히질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인터넷으로 들어가 직통으로 이어질 전화번호를 찾아 누른다. 잘못 눌렀다. 다시 확인해서 누른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받질 않는다.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때였다. 마침 옆에 젊은 승무원이 와 있었다. 역에 있으면 역무원, 차량에 있으면 승무원... 뭐 아무래도 좋다. 나중에 명찰을 보니 '보안요원'이 정식 명칭이었다. 난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는 무전기를 꺼내어 여의도역에 연락을 취한다. 그가 맨 윗사진 우측에서 웃고 있는 김진운 씨였다.

연락이 잘못 들어간다. 마침 함께 있던 선배, 이름을 결국 알지 못한 사진 좌측의 베테랑이 몇번으로 연락하라고 일러준다. 난 그에게 소니 하이엔드 카메라임을 거듭 알리며 인터넷 어느 블로그에 접속한 휴대폰 화면을 통해 생김새를 보여줬다.

"시간이?"
"아마 30분쯤 되었을 거예요."
"...네. 4시 15분 경에 분실했답니다."

많다면 꽤 많은 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앞으로도 10분 정도는 더 걸려야 역에 도착할 수 있다. 다행히 그는 희망적 소식을 전해온다.

"찾았다네요."

나는 순간 구원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검은색은 확인하지 않았지만 여하튼 소니 카메라 하나를 보관 중이라는 역무원 센터의 답변이다. 90퍼센트는 확실해 보인다.

"그래도 혹시 다른 것일지도 모르죠."
"고가의 장비인데."
"카메라가 문제가 아니라 안에 오늘 찍은 사진들이 있어서..."

가볍게 말하는 스스로에게 흠칫한다. 그간 동고동락한 카메라를 둘째 치는 거 이상으로 홀대하고 있었다. 물론 오늘 당장 뽑아낼 사진도 중요하지만 파트너에게 차마 못할 말임에 분명하다.




"저는 잠깐 내릴테니 선배님은 계속 타고 가시죠."

그러나 김진운 씨 뿐 아니라 그 선배님도 함께 내려서 함께 확인하겠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나로선 그 배려가 고마웠다.

다시 여의도 역에 닿는다. 우린 빠른 걸음으로 역 운영팀 센터로 들어섰다.

"이거 맞나요?"

사진 가운데의 윤성박 역운영팀 고객안전원이 내미는 카메라를 확인하고서야 난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내 것이 분명했다.

난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알고보니 연락이 닿기 전부터 카메라는 이 곳 사람들에 의해 센터로 옮겨진 상태였다. 만나지 못한 다른 대원이 순찰 중에 카메라를 발견하고선 팀에 맡기고 간 거였다.

"하루 정도 보관하다가 주인이 안 오면 내일쯤 유실물 센터에 맡기려던 참이었어요."

얼굴 모를 그 순찰자, 그리고 이를 받아서 기다린 윤성박 씨, 처음 내가 손을 내밀었던 김진운 씨, 또 이름 모를 선배 요원 모두가 내겐 은인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냐"고 묻길래 "기자"라고 하니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내가 이들에게 달리 해 줄 건 없고, 그저 미담으로서 기사에 소개하고 싶다고 하니 반색하는 표정이다.

"사실 우리가 칭찬에 목마른 사람들이거든요."

김진운 씨는 도통 사람들에 칭찬받을 일이 없는 업무라며 웃는다. 나 역시 "사실 공무원들 칭찬하는 글을 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밝혔다. 내가 기사에 담는 공무원들은 주로 정치인들이고, 이들은 대개 비난 내지 논란에 오른 경우가 태반이라 기사도 씁쓸함을 동반하기 일쑤였다. 만일 내가 미담으로 소개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아마 소방대원 쯤이 아닐까 싶었는데, 우연히도 첫 주자가 지하철역 근무원들이 됐다.

역에다 유실물을 두고 지하철을 탔다면, 가장 좋은 대처 시나리오는 승차원이 차량 어딘가에 함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를 찾는 일이다. 김진운 씨는 9호선의 경우 이렇듯 항시 한두명 이상의 요원들이 승차해 대기한다고 밝혔다. 그들을 통해 현장과 연락이 닿는다면 당신이 되돌아가는 사이 유실물 수색할 시간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다. 9호선을 탔다면 여러모로 이야기가 빠르다. 물론, 이것은 운 좋은 케이스다.
그것이 곤란할 경우, 직접 체감한 바 아쉽게도 유실물센터로의 유선 연락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114? 해봤는데 아시다시피 휴대폰으로 114를 누르면 우리가 아는 114가 아니라 통신사 본부로 넘어간다. 지역번호를 눌러야 이곳을 통할 수 있는데 정신없을 땐 여기에 미처 생각이 안 닿을 수도 있다. 이 곳 도움을 받으려면 꼭 지역번호와 114 조합을 유념하도록. 그래도 이 쪽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휴대폰이라 해서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것보단 여러모로 빠를 것 같다. 여기서 만난 이들 역시 "그쪽으로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난 불행 와중에도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사람을 만나 직접 도움을 받는 것이니까.

아 참. 카메라에게 난 이후에 말을 걸었다.

"아까 카메라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거 미안해. 앞으로 더 소중히 여길게."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