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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80만원 세대가 짓고 집없는 자가 파는 월간 '빅이슈 코리아'

80만원 세대가 짓고 집없는 자가 파는 월간 '빅이슈 코리아'
제작진 3인방이 말하는 '집없는 천사의 작품'




"비오는 날엔 과일향이 은은하겠네요"

"좋죠."

심샛별 국장과 걷는 오후 길은 마침 비로 젖어있었다. 서울 영등포청과시장 내에 입주한 빅이슈 코리아의 사무실은 입구서부터 아랫층 가게가 내놓은 수박이 반겨주는 입주 환경을 자랑한다.

'홈리스'가 판매하고 수익을 나누는 잡지로 알려진 빅이슈. 해외 각국에선 주력지로 자리잡았으나 한국에선 아직 생소한 브랜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두달 전(7월호) 창간호를 내고 이제 세번째 책 마감에 전념하고 있는 23일의 빅이슈 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문화사업국장 및 팀장, 편집국 기자 3인이 '우리들의 잡지'를 이 자리에서 말한다.




안병훈 문화사업국 팀장 "35개국 107개 회원사의 빅이슈, 한국에서도 올해 안에 정착한다"

안병훈 빅이슈 문화사업국 팀장이 말하는 빅이슈의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 창간된 빅이슈는 현지에서 당초 타블로이드판 신문으로 시작하다가 월간지, 그리고 현재는 주간지로 변신해 빅이슈 월드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매주 14만부가 판매되며 주력지로 자리잡았고 영국에서만 5개 지역판이 나간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2003년 런칭해 현재 격주간으로 3만부씩 나가고 있다. 이 밖에도 남아공과 호주 등 9개국에서 14개 지역판이 '빅이슈'의 이름으로 찍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해 이름은 달라도 스트레이트판이 나가는 국가들까지 포함하면 총 35개국에서 발간 중이니 명실공히 월드잡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무실엔 일곱개의 시계가 각각의 시간추를 돌린다. 막내인 한국판의 약진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이미 괄목할 성과를 얻었다. 창간호인 7월호는 5000부를 판매했고 아직 최종 스코어가 찍히지 않은 8월호가 두배가량의 판매기록을 썼다. 판매부수 1만부 돌파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일본에선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5년이 걸렸어요. 2008년부터 고비를 넘긴 거죠."

"여러분의 목표는?"

"올해 안에 넘기는 것을 목표합니다. 2만부가 나가게 되면 일단 우리 식구들 추스리는 정도는 가능할 걸로 봅니다."

빅이슈코리아를 제작하는 인원은 현재 23인. 아직은 손이 모자란다. 그리고 판매사원은 16인. '빅판'으로 부르는 판매원 또한 향후 서른에서 쉰명까지 확장을 염두하고 있다. 알려진대로 판매원 자격은 '자립 의사를 가진 홈리스'다. 직접 찾아와 10개의 규칙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하는 이라면 누구나 판매원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는 이들을 '노숙자'라 부르기 보단 '홈리스'라 부르길 원한다. 공식용어를 노숙자에서 홈리스로 대체하는 안건이 '외래어'란 이유로 기각된 것에 대해 그는 납득할수 없다고. "이슬을 맞고 잔다는 노숙자란 말도 본디 나쁜 어감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집없는 천사들이 만들어가는 잡지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있어선 홈리스 내지 새로운 용어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샛별 문화사업국장 "최저임금 감내하는 인재들과 자립 의지 갖춘 홈리스가 만들어내는 작품, 빅이슈코리아"

'남아공의 블로거'로 알려진 심샛별 문화사업국장은 빅이슈 코리아가 한국에 태동한다는 소식에 귀국해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여건상 최저임금으로 인재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빅이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남아공판의 생산 컨텐츠가 빅이슈 중에서도 특히나 뛰어나다고 밝히는 그녀다. 그 이상의 한국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일념하에 자녀들도 남아공에 둔 채 창간멤버로 입성한 여장부.

마침 사무실 앞에서 '빅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자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 그 사람은 '홈리스'내지 '노숙자'가 대동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말쑥한 차림이었다. 빅판에 대해 물었다. 그녀에게서 듣는 홈리스의 개념은 부정적 인식으로 점철된 사회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홈리스, 냄새나고 혹은 위험한 그런 부정적 대상은 사실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에요. 나머지는 나름 열심히 (몸매무새를 비롯 자신의 삶에) 사는 분들로 정착지가 없는 이라면 모두가 '홈리스'죠. 다른 어느 국가의 잣대로 보자면 저도 홈리스예요."

안 팀장의 설명도 같다. 일을 해서 수익을 만들고 고시원, PC방을 전전하는 사회친화적인 홈리스들이 많다고 했다. 빅이슈는 이렇듯 자립 및 언젠가 홈리스에서 벗어날 내일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목표다.
 



판매국 사무실을 들여다 봤다. 마침 빅판들이 판매할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도 주저함이 없고, 생기있는 표정은 도시 어디에 녹아들어도 이상할게 없는 모습이다. 현재 빅이슈 판매원 모집은 급식소나 홈리스들의 쉼터 등을 통해 계속해 알리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홈리스 내부엔 정보 네트워크가 충실히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소문을 듣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이라면 모두 환영한다고 했다. 단 10개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증명ID 착용, 음주 중의 판매 금지, 몫으로 돌아온 수익금의 50%는 반드시 저금할 것 등이다.




복장과 수레가방을 갖추고 빅이슈 홍보를 돕는 판매원들도 있다. 인터넷이나 서점가 같은 통상의 판매루트는 모두 배제하고 정기구독자 외엔 현장 판매원들에 의해서만 구매가능한 빅이슈다. 정가는 3000원. 그리고 각자가 판매한 분량의 수익 중 53%인 1600원을 판매원이 갖는다. 홈리스의 당당한 자립을 외치는 빅이슈의 판매 수익 배분 시스템이다.

한편 심 국장과 안 팀장이 이끄는 문화사업국은 다른 잡지사에선 들어보기 힘든 사업국. 광고 영업등은 담당자가 또 따로 있다. 빅이슈를 널리 알리고 보다 빨리 국내에 안착시키고자 홍보를 전담하고 여러가지 아이템을 찾는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는 게 심샛별 국장의 설명. 잡지의 생명을 불어넣는 중책은 쉴새없는 업무 부담도 잊게 만들었다.





김나라 편집국 기자 "해외판과 우리 생산 기사 비율은 6대4, 쉽지않은 강행군이지만 보람있는 나날"

김나라 기자에게 어떻게 빅이슈 코리아로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물었다. 예상했던 "본디 팬이었다"같은 모법답안은 나오지 않는다. 꽤 긴 답변이었는데 요약하면 "그냥 어쩌다 보니 시간대가 맞아서 이직을 했어요" 정도.

심샛별 국장에게서 시기가 시기인지라 늦은 퇴근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우리들 80만원 세대의 멍울을 함께 진 것을 들은 후였다. 여러모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순순히 답한다. 아니나다를까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가뜩이나 어제도 늦은 업무에 치어 얼굴이 말이 아닌데..."하고 신속히 머리를 쓸어올렸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다. 만만찮은 업무강도에도 웃는 얼굴로 일에 열중하는 여자야말로 진짜 매력있는 이성 포인트임을.

그러나 어려운 와중에도 보람있고 만족스런 나날이라고 답했다.

"내부 분위기도 좋아요."



그런 것 같다. 회사 여기저기는 여타 언론사와는 달리 상당히 정감있는 디스플레이다. 이렇듯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불가능한 쉴드를 펼친 현장도 있다. 첫인상은 '아이구 두야'.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그림을 그려놨다. 입주 전부터 있었던 거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고, 저마다 솜씨를 발휘해 직장을 꾸몄다고. 어떤 의미에선 가장 긍정적인 직장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현재 편집국은 국내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취재기자 2명과 해외판 번역 기자 2명, 편집장 1명이 꾸려가고 있다. 각국 해외판에서 추려낸 번역기사와 오리지널 한국판 기사의 비율을 물어봤다. 그녀는 "6대4 정도의 비율로 직접 생산한 것을 약간 더 비중을 두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지난 두 권과 지금 마감 중인 한 권. 아직은 국내 기사가 해외판에 실리지 않고 있지만 그 첫 기사가 무엇이 될지는 모두가 기대하는 사안이다.

80만원세대의 인재가 꾸려가고 홈리스가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 코리아는 그 작업물 자체가 그들에 있어 존재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엮어가는 페이지는 꿈 있는 자들의 오늘, 그 자체였다.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