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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2 UNN 뉴스가 보여주는 언론코미디의 맛

스타크래프트2 UNN 뉴스가 보여주는 언론코미디의 맛
오픈베타 리뷰 2라운드 - 적나라한 풍자에 네티즌 '할말을 잊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오픈베타 게임 중 캡처 (아래 상동)


스타크래프트2 - 자유의 날개엔 쏠쏠한 재미가 많다. 무엇보다 온라인 게임에 부재하던 스토리성을 캠페인으로 멋지게 커버한 건데, 혼자 즐기기에도 부족함 없는 이 스토리 모드에서 최고의 인기 캐릭터는 누굴까.

물론 주인공은 짐 레이너고, 그의 인기는 의심할 여지 없는 주인공이다. 그러나, 네티즌 사이에선 케이트'짜응'(네티즌 신조어로 누군가를 격하게 부르는 애칭)을 연호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본다. 케이트 록웰은 게임 중 존재하는 유일한 뉴스채널 UNN의 여성 기자.

매번 전투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쉴 때면 TV를 통해 이 뉴스를 볼 수 있다. 이름에서 보듯 CNN을 패러디한 이 미래의 뉴스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멀쩡하다. 단독 앵커인 도니 버밀리온은 '최고의 뉴스, 유일한 뉴스'란 오프닝 멘트로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럼 케이트 기자는 은하 각 행성을 뛰어다니며 특파원으로 현지 상황을 알린다.
이 UNN 뉴스는 스타크래프트2에 입문한 유저들에 있어 가장 사랑스런 게임 아이템이 됐다. 존재자체가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신랄한 풍자 코미디기 때문이다. 힌트는 화면 아래 쪽지에 있다. 뉴스 보다 총으로 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세상이 모로 병들었다는 증거다.

최고의 뉴스이자 유일한 뉴스라는 이 매스컴은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도니 - 레이너의 반란으로 인명피해가 컸다죠?
케이트 -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명피해는 자치군의 과잉진압에 의한 것으로...
도니 - 네 말씀 감사합니다. 레이너가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케이트가 실상을 알릴라 치면 도니는 곧장 말을 끊고 현장 중계도 끝이 난다. 이에 네티즌은 "도니의 말 잘라먹기 신공"이라고 웃어버렸다.
가끔은 도니가 홀로 논평에 들어간다. 민중의 영웅이지만 반란군이자 학살자로 내모는 레이너를 향해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이 때 방송을 보던 레이너는 "설교자 납시었군"하며 미동도 않는다. 제 구실을 못하는 언론을 헤집는 블랙코미디다. 실권을 잡은 테란의 황제와 자치군을 비호하며 실로 '어용'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절름발이 매체의 단면을 보여준다.

반면 케이트는 유저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실상을 전달하며 방송 사고(?)를 연발하는 모습이 그나마 양심적인 기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아직은 직접 확인못한 첩보지만 이후 케이트에겐 나름 축하할 일이 생긴다는데, 이런 걸 보면 또 UNN이 의외로 제대로 된 언론사다. 마치 '군부정권에 함락당했지만 우리도 좋아서 하는건 아니다'를 강변하 듯. 물론 진상은 스토리작가만 알 일이다.




이 놈이 죽일 놈이다. 맹스크 황제.
그가 이 뉴스와 1대1 대담을 하는 장면은 방송을 통해 민중을 쥐락펴락 하려는 독재자의 면모 중 하나다. 황제는 뉴스 뿐 아니라 다른 방법을 통해 노동자들의 근무지에서 독려 방송을 편다. 물론 UNN은 중재나 중립이 아닌 그의 신격화에 골몰한다. 화면을 향해 쏘지 말라는 경고문은 사실 누구보다 레이너에 주효할 부분.




실제로 초반부에 레이너는 TV를 향해 총을 쏜다. 자신을 험담하는 맹스크를 보다못해 총질하는 모습은 언론이 시청자의 속을 긁어놓는 실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보나마나한 듯한 이 뉴스를 레이너와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지켜본다는 거다. 도니를 향해 조소할 때도 그 말 끝엔 묘한 애정이 담겨있다. 이는 지켜보는 유저도 동일한데, 은근히 중독성 있는 뉴스다.

스타크래프트2는 과거 군부정권 때라면 백퍼센트 심의가 불가했을 작품이다. 88올림픽을 전후해 공영방송으로 소개될 뻔한 '기동전사 Z건담'(주1)이 군정을 다룬 설정 탓에 당시 불발됐다는 설을 보면 납득하고도 남는다. 한 네티즌은 "땡전뉴스를 보는 것 같다"며 소회에 잠기기도.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지금은 아무 문제 없이 이런 작품이 들어오는 좋은 시대란 말 같잖아. 그러나 지금 UNN 뉴스가 이처럼 네티즌들의 반향을 얻는 것을 보면 케이트 기자의 말마따나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다. 이 언론폐해의 희화는 '남일같지가 않다'는 말을 동반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인터넷상엔 아예 UNN뉴스 부분만 따로 편집해 놓은 총집편격 동영상이 돌며 화제를 낳고 있는데 이가 소개된 야구커뮤니티 'MLB파크'(http://www.mlbpark.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621596)에서 게임 중 UNN뉴스부터 챙겨본다는 작성자 후로드 님은 "우리나라 상황과도 잘 어울리고..."라며 여운을 남겼다.

UNN뉴스, 스타크래프트2에서 생각치도 못한 대어다.


주1) 기동전사 Z건담과 한국 이야기 - 로봇애니메이션의 금자탑 '건담'에서도 손꼽히는 명작. 토미노요시유키 감독의 건담 월드 중 퍼스트건담에 이은 2번째 작으로 팬들에게선 가장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1985년작이다. 한국에서도 건담은 일찌기 프라모델 등을 통해 익히 알려졌으나 정작 작품 자체의 TV방영은 이뤄지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Z건담을 비롯한 초기작들은 정식 방영 및 더빙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Z건담은 과거 모 방송국을 통해 방영이 검토됐었다는 설이 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티탄즈'라는 군부정권을 다룬 설정이 당시 한국의 시대상에선 여러모로 불편했던 탓에 불발됐다고 전해진다.
최근 토미노 감독은 내한 인터뷰 중 이에 대해 "갈등이란 연방과 지온 뿐 아니라 어디에든 있는 법이며 Z건담은 전쟁상황에서 있을 법한 상황을 그려냈을 뿐 한국 내 상황과는 관련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Z건담은 DVD나 소설 등으로 국내 소개되고 있으며, 2005년엔 극장판 3부작으로 리메이크됐다. 이번 피판에서도 초청작으로 상영됐다.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