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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정치인 '최저생계 체험' 여야 할거 없이 전부 문제있다

정치인 '최저생계 체험' 여야 할거 없이 전부 문제있다
'나트륨의 황제' 차명진, '쌀 컵' 홍희덕...결국 1박2일 자체가 무리수


참여연대가 재미있는 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야 정계인들을 대상으로 쪽방에서 1박 2일동안 최저생계를 살도록 하는 거다. 내달 결정되는 최저생계비를 두고 입법권력자들이 직접 살아보라는 거다.

여야에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소감을 털어놓는 순간 네티즌들은 여야 할거 없이 의문부호부터 꺼내든다. 예감됐던 무리수가 결국 탈이 난 셈이다.


'나트륨의 황제' 차명진, 맨날 통조림만 먹고 살라는 거냐

27일 화제의 인물은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다. 차 의원은 체험 후 이른바 '황제' 수기를 남겨 도마에 올랐다. 26일 시작한 체험담에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다"며 세 끼 해결은 물론 1000원은 사회기부까지 하는 등 여유로왔다는 내용이다. 그가 황제의 식사라 표현했던 식사는 마트 세일로 산 쌀국수, 참치캔 등 통조림과 인스턴트 식품이다.

당장 반응이 몰려왔다.


오후 5시 상황. 홈페이지는 먹통이 됐다.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관련보도 디시뉴스 http://www.dcnews.in/news_list.php?code=ahh&id=572682) 본인 역시 곧장 사과문을 내고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밝혔다.

디시의 한 유저는 "나트륨의 황제"라고 밝혀 게시판을 실소케 했다. 쌀국수에 참치캔, 미트볼과 황도캔. 황제의 식사는 다름아닌 '나트륨의 황제 식단'이었다.

논란의 단초는 차 의원의 '황제' 표현이다. 절대빈곤층은 물론 서민층 시선에서 보면 생계감각에 무감하고 무지한 것이 문제다.

차 의원이 밝힌 취지는 "6300원으로 하루치 식량을 조달하고도 남는다"는 거였다. 마트에서 떨이 품목을 찾으면 식료품을 현 최저생계비 내에서 구한다는 건데, 당사자들에겐 하루로 끝나는 문제가 아님을 망각한 결과다. '나트륨'에서 보듯 그가 먹은 음식은 전부 인스턴트다. 매일같이 통조림만 먹고 사는 건 상식선의 인간 생계에 넌센스다.


'따끈한 된장찌개만' 홍희덕, 하루치 아니면 두부 살 수 있어요     

이번엔 선발주자로 나섰던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의 사례다. 홍 의원은 지난 7일 체험에 들었다.
(관련보도 한겨레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view.html?cateid=1001&newsid=20100708194023972&p=hani)

보도 내용대로면 홍 의원은 된장찌개를 먹고 싶었지만 재료값 문제로 포기하고 라면을 끓였다. 물을 샀고 김치를 샀고 쌀 세 컵을 샀다. 그랬더니 6300원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홍 의원은 "라면밖에 먹을 게 없다"며 사실상 불가능함을 밝힌다. 차명진 의원과는 정반대 논지로 흘러간다.

여기서 네티즌 댓글이 술렁인건 홍 의원이 선택한 식료품의 구성이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소매로 치면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하루로 할당된 조건이 눈대중을 어렵게 만든 셈이다. 다음유저 kel21 님은 "단순하게 하루로 계산하면 답이 안난다"며 "보다 장기간의 날짜 단위로 계산해야 맞다"고 밝힌다. 하루치로는 불가능하지만 시간제한 없이 진짜 최저생계가 생활인 이들은 김치를 살 거 없이 재료로 직접 담가 먹을 수 있고 이게 장기적으로 소매품보다 더 부담없음을 누구나 안다.

홍 의원은 따끈한 된장찌개를 먹을 수 없어 라면을 샀다고 했다. 이는 현 최저생계비의 비참함을 표현하려는 건데 하루치로는 분명 두부와 파를 사기에 버겁다. 그러나 체험기간이 일주일이었다면 두어끼에 나눠 먹을 찌개냄비를 끓였을 것이다. 만일 정녕 된장찌개조차 끓일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저생계비는 두 말없이 이를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는 데 누구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쌀 컵?' 결국 하루 생계비 체험 자체가 맹점, 민생에 필요한데 일주일 쯤 시간 못 내 주시나?

참여연대의 1박2일 체험은 국회의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단기간 체험으로의 설정이 불가피했을 수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바쁘신 몸들에 적잖이 섭섭한 민초의 눈이다.

차명진 의원은 하루 먹을 식료품 조달에만 한정한 뒤 '황제'를 경솔하게 붙여 빈축을 샀다. 반면 홍희덕 의원은 하루 할당량의 한계에서만 계산한 바 도리어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모두 '하루 6300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쌀을 '컵'으로 샀다는 거다. 역시나 하루 체험의 결과다. '쌀 컵'은 당장 사람들이 시선을 멈추게 할진 몰라도 이내 "그러니 하루 체험이지"하고 고개를 젓게 만드는 대목이다. 홍 의원은 쌀 세컵으로 2400원어치가 들었다고 했는데 4킬로포대가 1만 몇천원대인걸 생각하면 1인 하루치 쌀값으로는 부담스러운 지출이다. 보다 정확한 최저생계 체험을 기대한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나랏일로 바쁜 몸이라지만, 이러한 체험이 진정 민생과 직결되고 가치가 있는 체험이라면 한달까진 안되더라도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없는가 묻고 싶을 정도다. 일주일이라면 통조림으로 황제식단을 짜는 것의 어려움을 안다던가, 보다 적은 지출로 실제의 것과 가까운 식단을 짤 수 있게 된 대신 또다른 지출요인을 마주하고 다시 고민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터. 나랏님들이 야속하다.

마지막으로, 이대로라면 '의원들이 직접 체험을 해 봤다'란 시도 자체도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움을 든다. 지금 두 의원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최저생계비 책정을 놓고 예상되는 여야의 입장차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여당은 최저생계비 증가가 필요없음을, 야당은 최저생계비 증가의 필수를 역설할 거라고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한나라당의 차명진 의원은 황제의 식단에 남는 돈으로 신문을 사 문화생활을 하고 사회기부까지 하며 여유롭게 6300원을 썼다고 밝혔고, 민주노동당의 홍희덕 의원은 실상과는 맞지 않은 소매가격을 꺼내 절대불가능을 밝혔다. 처음부터 당론을 전제해 결론을 준비하고 체험에 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대로면 이번 체험은 여야 대립의 단면 정도 외엔 그 자체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진정 이들이 최저생계의 쪽방 생활을 통해 민생과 진심으로 통하려 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보다 많은 시간 투자가 필수다.        

이육사는 백마탄 초인을 기대했지만 민중은 시간 내어줄 수 있는 범인을 바랄 뿐이다. 정사엔 바쁘면서도 민초들과 어울리는덴 시간이 남아도는 묘한 범인말이다. 소통의 첫걸음이란 어려울 듯 쉬워 보인다.


ⓒ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