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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끝, 16강전때 서울광장은 '도깨비소굴'이었다

월드컵 16강전 거리응원 열린 서울광장은 '도깨비소굴'(?)
축제의 끝, 16강전 거리응원전 이모저모




한 벽안의 청년이 돌아보더니 씨익 웃으며 옆의 청년에게 저길 보라 한다. 두 손을 머리에 갖다대고 뿔을 그리더니 신기한듯 컴팩트 카메라를 눌러댄다.

돌아보고 순간 식겁했다. 불빛에 붉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
놀란 가슴 진정하며 다시 돌아본다. 으음...




역시나, 장관이다. 붉은 악마...가 아니라, 순간 도깨비들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도깨비소굴. 축제를 즐기는 도깨비들의 '신나는 난장판'이었다.

26일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서 붉은 도깨비들은 광장이 떠나가라 외친다.





비내리는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 8년전 히트했던 '오필승코리아'는 다음다음 대회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불린다. 거리응원의 재미.

비에젖은 렌즈를 어찌할까 하며 잠시 눈을 뗀 사이 통한의 선취점을 내어주고야 만다. 응원하던 외침은 일순간 한숨과 비명으로 바뀐다. 환성, 비명, 신음, 한숨, 그러나 다시 격려, 응원으로 이어지는 무한루프의 공간. 백가지 감정, 천가지 몸짓이 터지는 멋진 공간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저길 보면서 킥킥댄다. 감독에 지기만 해봐라 하고 으름장을 놨다. 격려라기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가 흐르는 핏빛으로 걸렸다. 고어냐? 전반을 1대0으로 뒤진 채 마친 상황이라 더욱 와닿는다.

꽤나 많이 보이던 외국인들. 그들은 내심 그랬을 것이다. "이 나라 국민들 왜 이렇게 응원이 데인저러스하고 호러블합니콰?"




비가 잦아들자 뒤에 섰던 사람들은 앞에다 "우.산.접.어!.우.산.접.어!"를 외친다. 후반이 시작됐는데도 모니터가 서울시 광고만 비추자 "리.모.콘. 내. 놔!"를 외치기도 한다.

날짜는 이미 바뀌어 27일.

조금씩 초조함이 흐르던 순간, 절호의 기회를 맞는다. 득점기계 이청용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순간, 도깨비소굴은 '도떼기시장'으로 화한다.


 

이것이다. 귀여운 앙마들의 하모니. 이청용의 승천을 보던 도원향의 도깨비들은 중계에서 이곳, 서울광장을 비춰주니 더 난리법석.
경기는 1대1, 접전으로 향했다. 기적의 한골을 바라는 악마들의 눈에 비친 것은 점차 한국의 페이스로 변하는 경기양상이다. 저기서도 비가 내리는데, 여기서도 비가 온다 해서 응원을 멈출 수 없다. 16강 고지를 넘어, 이제 8강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튼다. 여기서 좀 더 외치면 선수들이 더 힘을 낼것만 같아 쉴 수가 없다.




'대빵 도깨비'가 저깄다. 경기는 경기대로, 여기 거리응원전은 그것 자체대로 재밌다. 이것이 축제요, 사람 사는 광장이다.

순간순간 터지는 재밌는 장면을 찍으려 카메라 렌즈 덮개를 틈틈이 열고 고개를 돌리다 옆의 한 처자하고 눈이 마주치는데 같이 온 친구하고 뭐라뭐라 귓속말을 한다. 설마 내가 추파를 던진다(?!--;)고 생각한건가? 다시 말하지만 난 서른살 생일을 맞은 오늘까지 말한번 건넨 적 없는 숫총각이라고! (눈물의 글 http://kwon.newsboy.kr/1713) 그럴 용기도 없다. 됐냐?!

펜스에 여자 친구를 앉힌 어느 청년은 중국말로 샬라샬라. 어떻게 배웠는지 확실하게 '대! 한민국!"을 외친다. 아주 잘 배운 발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승리의여신은 더이상 우리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상대의 결승골이 터졌고, 우린 이어지는 좋은 기회를 딱 한 끝 차로 놓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종료휘슬과 함께 각 화면은 거의 동시에 꺼지고 만다.

비는 그쳤다. 도깨비들은 그 덕분에 울지도 못한다. 계속 쏟아진다면 눈물을 감출수도 있을 것을. 그렇게 애써 미련을 털어내고 생각보다 빨리 평정심을 찾았다.




축제는 끝났다. 적어도 우리들 도깨비부락 대표들의 행군은 거기서 종막이다. 아쉬움은 털어내면서, 남겨진 흔적은 잊지않고 수거하는 이들이 보인다. 조용하게 도깨비들은 축제를 정리한다. 좀 더 오랫동안 요란스레 뒤흔들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남겨진 에너지가 아쉽기만 하다. 




난 잠시 이순신장군에게 가 상황보고를 했다. (http://kwon.newsboy.kr/1714 참조) 얼마나 궁금하셨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지하로 스며들었다. 연장운행하는 도깨비들의 발, 강철의 뱀. 새벽 1시 30분에 이것을 타는 건 머리에 뿔 나고 처음이다. 아마 같은 경험을 여기 많은 부족들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했던 이상으로 침착하게 축제의 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동족들.

8강 좌절에 앞서 우린 16강 진출 달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미 맛보고 있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맛보며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먼저 논하는 게 맞을 것이다. 비바람 속의 축제를 마치고 평온한 휴일을 맞이하러 흩어져 가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4년 후의 브라질을 말한다. 축제 좋아하는 도깨비들은 그렇게 지상 위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