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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8년간 아껴뒀던 아들래미 칭찬, 역시 아빠는 아빠

[월드컵통신] 차범근의 8년간 아껴뒀던 아들래미 칭찬, 역시 아빠


        스포츠코리아 (포토로) 제공 사진


한국은 최상의 시나리오를 쓰며 출발했다. 전반 7분, 후반 7분. 일찍 터진 두 골로 우린 생각보다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모두 베스트감이었지만 단연 득점한 박지성, 이정수와 슈퍼세이브를 보여준 정성룡에 보다 많은 찬사가 올랐다.

SBS의 독점중계 문제로 채널을 갈아타게 됐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된 차범근 해설자와 함께 외칠 수 있었다. 사실, 그를 다시 볼 수 있게 됐을 땐 나만의 체크 포인트가 하나 있었으니.

그리스를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 차두리 선수가 선발로 나서는 것을 보며 나는 체크에 나섰다. 이번엔 아버지가 아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며 터지는 칭찬을 틀어막지 못하는 모습을 볼 것인가.

선수와 해설자로 마주한 차범근 차두리 부자의 역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딩크호에 막판 급하게 승선했던 차두리. 그러나 붙박이 주전이 아니었던 터라 예선에선 볼 수 없었던 그였다. 헌데 16강, 1대0으로 끌려가며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그 때 차두리는 교체자원으로 투입된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차두리가 들어설 때 중계석에서 차범근 해설자가 순간 말을 못 꺼내고 기다리는 것을. 자기 아들이 들어서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천상 아버지다.

그러나 그는 차두리에게만은 엄격하게 멘트했다. 아버지라서 가능한 거였다. '빨리 움직여줘야 한다', '저 땐 이렇게 했어야 했다'고 다른 선수들을 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가 오버헤드킥을 작렬 시켰을 때도 이렇다 할 칭찬은 없었다. 그가 공격 기회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할 땐 '자신이 없어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캐스터가 말릴 판이었다. 다만, 경기가 역전승으로 끝난 뒤 기쁨을 나눌 땐 딱 한번, "저기 우리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기억하는 딱 한 순간의 아들자랑이었다. 그 경기 이후 그가 아들에게 '잘하고 있다' 같은 칭찬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4년전 독일 월드컵 때는 차두리가 아버지와 함께 해설자로 데뷔하는 모습을 봤다. 최종엔트리에서 빠진 차두리. 그러나 MBC는 아버지와 함께 그가 중계석에 오르도록 했고 첫경기 토고전을 앞두고선 잠깐 그의 스페셜 영상을 보여주는 배려도 했다.
선수로 뛰지 않으니 딱히 아들 자랑할 상황은 없었다. 대신 그를 야단치는 모습은 볼 수 있었는데 스위스 전에서 믿기지 않는 두번째 실점 인정 순간, 차두리는 흥분하다 못해 "사깁니다 사기"하고 외쳐버렸고 차범근 해설자는 아들을 돌아보며 무서운 얼굴로 "야 이..."하고 경거망동 말라 호통쳤다. 해설자로서의 교육도 확실히 시켰던 아버지였다. 아들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다.

다시 4년. 이번엔 당당히 주전이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수비수로 변신한 아들은 첫 경기 선발로 나섰고 그 모습을 아버지 해설자가 중계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됐다. 그들에게도 참으로 감격스러웠을 순간이다.

이번엔 그가 입이 마르도록 아들 칭찬을 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차두리가 엄청난 활약을 한다면야 그가 칭찬 못할 것도 없다. 물론 잘못한다면야 불호령이 떨어질 터. 다행히 차두리는 탄탄한 수비와 역습 능력, 초반 적극적인 롱 슛 시도까지 풀타임 전천후로 활약했다.

후반 중반. 차범근 해설자는 드디어 "차두리..."하고 운을 뗀다. 박주영 선수에게 차두리 선수가 올려준 크로스 패스, 비록 헤딩이 빗나갔지만 여기서 해설자는 "차두리, 아주 올려주는 패스가 좋았다"고 칭찬한다. 차두리 본인이 들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배성재 캐스터는 해설자에게 집요하게(?) 차두리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버벅대던 차범근 해설자의 모습은 웃음마저 띠게 한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들 칭찬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그는 한국 백넘버 22 차두리 선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며 칭찬해 주었다. 8년만에 머뭇대다 터져나온, 새침한 칭찬이다. 보고 있자니 요새 네티즌들 사이에서 즐겨쓰이는 일본어, '츤데레'란 말이 딱이다 싶어 폭소하고 말았다. 

'차, 착각하지마 딱히 좋아서 칭찬한건 아냐!'

그런 것이었다. 역시나, 차범근. 그도 애 아빤 아빠였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