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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서울광장의 의미는?

서울광장의 의미는?


이번엔 노무현에 열린 광장


18일,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노무현1주기 시민추모문화제 23일 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개최합니다'

이번엔 열리는구나 했다.



이 사진은 지난해,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추모행사 때 찍은 사진이다. 시민악대의 레퀴엠이었는데 마침 한 세션이 동영상 제작에 쓰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와 모처럼 기억을 복기했다. 느낌이 좋다고 원하는데, 사진에 찍힌 장본인이 사용허가를 요청해 왔으니 기꺼이 응할 수 밖에.

이 장소는 덕수궁 돌담길. 서울광장이 열리지 않은 터라 추모객들은 대한문과 덕수궁 골목에서 비좁은 행사를 열어야 했다. 광장을 열라는 여론에 오세훈 시장이 응하며 이뤄지는가 했더니, 경찰청에서 불허하며 끝내 무산됐었다. 만일 열렸다면 이들은 광장에서 기타를 긁었을까.

1주년은 맞은 올해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싶었는데, 어떻게 이번엔 당일 추모행사를 광장에서 열 수 있게 됐다. 불허됐다면 또다시 쟁점에 올랐을 것이 자명했다. 서울광장을 다시한번 인식하는 순간이다.




5월이 되면 더욱 많이 주목받는 서울광장


한국 사람들은 어릴적부터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배운다. 허나 이젠 역사를 돌아보는 달이 되어 있다. 5.18, 촛불집회, 그리고 노 전대통령 서거까지. 우연인진 몰라도 올해는 20년만의 명동성당 시국미사가 열려 4대강을 성토했고, 작년 5월엔 오체투지가 조계사로 줄지어져 시국법회로 이어졌었다. (비와 눈물의 오체투지 http://kwon.newsboy.kr/1245)

덕분에 5월이면 시사판 기자는 꽤나 고생한다. 

이 시기, 서울광장은 그 대개의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관통한다. 취재현장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쟁점에 올라선다. 광화문광장과 더불어 어쩜 서울서 가장 사연많은 광장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 5.18 기념행사도 위태위태했다. 어떻게 시청에서의 행사가 성사되긴 했지만.



"열어라" "못연다" 언제나 집회의 쟁점이 되는 그 곳



지난해 4월말. 용산참사에 대한 추모행사는 그 직전 장소가 바뀌며 혼선을 빚었다. 서울광장에서 예정됐던 행사는 서울역 광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나도 몽구님과 함께 현장서 저 플랜카드를 보며 터벅터벅 꽤 먼 거리를 다시 걸었다.

당시 행사는 촛불로 타올랐는데(http://kwon.newsboy.kr/1208), 여기서 열렸다면 또한번 촛불정국의 모습이 재연될 법 한 그림이 나왔다.

한달 후, 충격으로 다가온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그러나 이 때에도 시청은 열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자리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것에 네티즌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는 추모 인파 속에서 정권을 향해 쏟는 비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가 몸살을 앓기도 했다. (http://kwon.newsboy.kr/1251)

다만, 영결식날 노제 때만큼은 발디딜곳 없던 그 수많은 인파의 행렬, 그 가운데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촛불정국 이후로는 매번 크고작은 집회가 열릴라 치면 서울광장은 항시 집회자와 경찰 사이에서 갈등의 장소로 빚어졌다. 집회 측은 서울광장이 닫힐 때마다 민주주의를 외쳤고 정부당국은 사전예약 내지 법질서 수호를 강조했다. 야당이 나서서 광장 한가운데에 진을 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0일 벌어진 상황이 그것이다. (http://kwon.newsboy.kr/1276)


나는 이때 국가인권위 건물 위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저같은 모습이 나왔다. 어떤 의미에선 현정부 하에 벌어지는 마찰을 가장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촛불집회 때부터였다

촛불집회 이후로 광장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된 것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근하고 있는 광화문과 더불어 상징적인 장소였던 이 곳. 2002년엔 월드컵 응원열기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2008년엔 광우병 파문에 대하는 시민의 모습으로 역시 외신을 탔다.



촛불집회가 국민적 분노로 재점화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던 2008년 6월1일.
(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3381)
아침 6시경 경복궁에서 벌어진 강제진압으로 흩어진 집회자들 중 잔여인원이 이곳 시청으로 흘러들어와 휴식을 취했다. 민주주의의 성지로 거듭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의미로 상징적인 장소가 된 광장. 물론, 이후로 광장에 집회자가 모여드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모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양쪽모두에게 이 곳은 '사수'해야할 자리가 됐다.


계속되는 줄다리기

법적으로 광장에서의 집회를 보장받으려는 노력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10만명의 서명을 맏아 서울광장조례를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서울시의회가 보류를 결정하자 3월 26일부로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논평을 내고 "7대 서울시의회의 사망선고"라 맹비난했다. 

그런 면에서 5월들어 5.18 기념행사와 23일 예정된 노 전대통령 추모행사가 잇따라 가능해진 것은 간만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는 야당이 전진배치하는 형국이다.


한명숙 "서울 광장 되찾기 청약", 서울시도 5월 잇따라 광장 오픈... 6.2 지방선거의 카오스로

이같은 서울광장이 선거에서 이슈화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합법이다 불법이다 따질 일 없이 개정안으로 광장을 열겠다고 야당이 나서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확정에 이어 야권의 연대후보로까지 내달린 한명숙 후보는 곧장 서울광장 되찾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http://kwon.newsboy.kr/1673) 
사이버상에서 서울광장을 평당 분양하는 후원행사는 20일 현재 1350명에게서 1억3500만원의 분양비를 모은 상태. 후원모금부터 광장 되찾기를 내세운 한 후보는 14일 서울광장을 방문해 "6월 2일 틀어막힌 서울광장을 시민들에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내걸었다.




 출처 사람특별시 블로그 (http://www.hanms.net/388?srchid=BR1http%3A%2F%2Fwww.hanms.net%2F388)

현 시장인 오세훈 후보 역시 서울광장을 의식한 듯 보인다. 5월 들어 18일과 23일 잇따라 서울시는 광장을 허가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있어 최대 포인트 중 하나로 다시금 떠오른 광장의 존재감이다.


광장의 의미

어느새인가 광장은 선거판에서 여당과 야당의 줄다리기판이 되었다. 민주당을 비롯 야권은 "시민들에게 반드시 돌려줄 곳"이라며 물밀듯 여권을 압박할 공격 포인트다. 반면 여권은 "정치적 이용"이라 반발하며 실드를 칠 수 있다. 
광장에서의 집회 활성을 꿈꾸는 시민들에게 나올 모범답안은 "민주주의의 메카"다. 물론 정반대라면 의미는 완전히 뒤집히겠다. 그래서 선거의 결과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승자의 것이 곧 '시민의 뜻'으로 해석됨으로. 최소한 승자는 이를 곧장 간판에 내 걸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사판을 뛰는 기자 내지 블로거 등 저널리스트들에겐 또다른 의미를 지닌다.
"서울에서 상주해야 할 이유 -" 라고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