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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대첩' 한화 대 롯데, 신데렐라의 마법엔 51안타 폭죽쇼?

'409대첩' 한화 대 롯데, 신데렐라의 마법엔 51안타 폭죽쇼가?
프로야구 중 전대미문의 진기명기쇼를 보다


새벽. 벌써부터 '409대첩'이라는 신조어로 네티즌 야구팬들이 후끈하다.
9일,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를 보셨는가. 보셨다면 당신은 행운아. 본전을 뽑다 못해 진까지 다 빼 놓은 희대의 진기명기였다.

저녁 7시경. 나는 채널을 돌리다 KBS 스포츠 채널에 잠시 손을 멈췄다. 내가 1, 2순위로 좋아하는 두 팀이 맞붙는 경기라 눈길을 끈 것. 이전에도 밝혔다시피 난 부산에서 한화를(빙그레 시절부터) 응원해 온 팬이고, 그 다음으로 롯데를 응원하는 야구팬. 물론 경기내내 일단은 한화를 응원했지만.

롯데자이언츠는 홈 경기, 한화 이글스는 원정 경기였다. 난 한화가 선제홈런으로 앞선 1대0 스코어의 1회말부터 시청했는데, 아뿔싸. 1회말에만 롯데가 스리런을 포함 5점을 뽑는게 아닌가.

급기야는 11대3까지 벌어진 스코어. 롯데에 스리런포만 두 방 맞았다. 그땐 거의 체념하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패전처리용 투수가 올라오고 다음 경기 컨디션을 조절할 때라고 하는 그런 순간.

그 때 난 나만의 징크스를 의식했다. 이 역시 일전에도 밝혔던건데, 내가 지켜보는 경기는 응원하는 팀의 승률이 아주 좋거나, 응원하는 선수가 득점을 올린다. 올림픽, WBC, 월드컵 등에서 한국팀의 국제경기나 박지성 경기에서 그런 경험 많이 해 봤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힘들지 않겠나 했는데...

얼라? 8점까지 뒤졌던 스코어를 야금야금 쫓아오던 한화. 급기야 12대 8까지 좁히더니 운명의 8회초. 대공사를 완성한다.

12대10이 될 때 '혹시' 했다. 12대 12 동점을 이룰 때 '이럴수가' 했다. 숨돌릴 새 없이 14대 12로 역전시킬 때는... 돌릴 숨도 없이 그대로 숨 넘어가는 것 같았다. 이럴 수도 있는가.

추격하는 입장이된 롯데가 8회말에 다시 2점을 추가하며 경기는 동점. 그렇게 14대 14라는 보기 드문 스코어로 연장 돌입하는 두 팀. 어느샌가 경기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 안타 경기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종전 40개 기록을 8회에서 깨버린 것. 그러나 아직도 갈길은 먼데.

이 날 해설자와 캐스터는 명대사를 주욱 읊었다.

"해설하다가 가슴 답답해지는 경기는 또 처음입니다."

"이거, 사직구장 근처서 장사하는 분들은 달갑지 않겠습니다. 끝나는 대로 다들 돌아가실 경기거던요?(이미 시간이 11시대에 닿고 있었다) 왜 다들 안 나오나 싶으실 겁니다." - 부산시민들은 아시다시피 롯데 경기 있는 날 사직동 인근 업소는 활황이다.

간만에 범타 처리가 이뤄지자 캐스터는 "특이하네요"라고 말했다. 세상에 범타가 특이한 경기도 있었다. 양 팀 다 불방망이가 불 뿜는, 타고투저라는 표현 정도가 아니라 '마운드의 무덤' 격인 경기였기에 그럴법도 했다.

그러나 마구 터지던 방망이, 정작 연장에선 잦아들며 연장의 최종 이닝인 12회까지도 추가 점수는 없었다. 이미 양팀은 본래의 마무리투수도 다 내려가고 다른 투수들이 연달아 대접전의 스토리를 짜 나가고 있었다. 중계석은 어느샌가 심판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화장실도 못가고..." 부분이 압권이다.

"이런 경기 일주일에 두번만 하면... 안되죠?"
"...1년에 한번만 하면 됩니다."

경기가 12시에 임박해 온다. 이젠 1박2일 수순이다. "이런 경기는 본 적이 없다"는 해설자. 내 말이. 이런 중계는 본 적이 없다. 보다보다못해 지쳐 옆으로 쓰러져 잠든 롯데측 여성팬, 그 와중에도 방그레 웃는 한화측 여성팬... 카메라가 양 팀 마스코트 인형을 비추자 캐스터는 "마스코트도 지쳤습니다"라고 우스개소리를 던진다.

경기는 12회초, 한화가 드디어 1점을 내며 15대 14로 다시 재역전, 균형을 깨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12회말 2아웃 후 다시 주자를 둘 내보내며 반격을 노린 롯데지만 결국 땅볼 아웃. 게임 세트.

그렇게 내 징크스는 오늘도 들어맞았다. 그러나 응원하는 팀이 8점차까지 뒤진 절망적 경기를 뒤엎다 못해 '운명에 거역한 반란군노무 시퀴'가 된 감회보다도 '이젠 제발 어떤 식으로든 끝나라'는 질림의 미학에 사로잡혀 있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비춰지는 스탠드 시계는 정확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데렐라의 마법을 연상케 하는 순간이었다. 두 팀 모두 즐겁게 어울리다가, 12시에 손을 놓고야 마는 순간...이라면 너무 로맨틱한가? "한화렐라! 롯데 왕자님!"하면서 오작교의 이별을... 그리고 그것을 장식하는 것이 51개의 안타 폭죽쇼.

게임이 끝나고 보니 역대기록이 줄줄이 경신, 그야말로 진기록이 숱하게 쏟아져나온다.
두 팀이 합작한 이날 안타수는 51개. 지난해 세워졌던 종전 기록 40개를 훨씬 뛰어넘는 갯수다. 한화는 27개로 역대 한팀 최다안타기록 타이를 이뤘고, 롯데 역시 24개로 자신의 타이기록을 세웠다.

한경기서 안타가 51개. 이건 뭐 기네스북이라도 찾아봐야 할 듯. 아니나다를까 중계진은 "해외 타전될지 모르는 경기"라고 웃는 것이었다.

개인기록도 풍성하다. 이날 홈런 2개를 쳐낸 한화의 김태완은 8타석 연속출루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홈런 2방 포함해 4안타에 나머진 볼넷. 

롯데 가르시아는 7타수 7안타의 기록을 세웠다. 역시나 역대 최초의 기록이란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두 팀 모두 다 에러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세상에, 안타 51개에 29점이 터질 때까지 무실책 기록이라니. 

캐스터는 "피만 안 터졌지 혈투였다"고 술회했다. 살다살다 12시까지 야구중계를 지켜본 건 내 생애 처음이다.

인터넷에선 벌써 '409대첩'이란 말이 돌고 있다. 그야말로 스포츠 진기명기.

한화 팬인 네이버유저 레지나 님 (http://blog.naver.com/esteelauder/120105239149)은 발빠르게 포스팅을 하며 감회를 적신다. 어찌된게 한대화 감독과 MVP 이여상 선수 인터뷰가 흐를 때 본인이 지인들에 축하 문자 받느라 바빴다고 너스레를 떤다.

여하튼 5시간 29분간 이어진 중계를 보며 응원하던 팀이 이긴 것은(상대가 두번째 응원팀이지만) 즐거운 일이지.

한편으론 말이다. 내가 이 두 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재확인한 계기였다. 이기던 지던 재밌는 일촉즉발의 경기를 펼치는, 파이팅 넘치는 두 팀이니까. 그런 둘이 만나니 이런 작품도 조합하는 모양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