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책에 내 글이 실려나온다는 경험, 그 짜릿함에 대하여

책에 내 글이 실려나온다는 경험, 그 짜릿함에 대하여




내 글이 책에 실려나오는 건 신문에 기사가 나오는 것과는 또다른 짜릿함이다. 종이지면에서, 또 인터넷지면에서 내 바이라인을 확인하며 내가 기자구나 하고 느끼는건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고, 책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 건... 일종의 외도?

남부러울 것 없을 듯한 양반들이 꼭 한번씩 책을 내는건 이런 맛 때문인가 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분좋은 자극이다.

책에 내 이름이 실린 적은 과거에도 몇번 있었다. 누구나 졸업생이 되면 학교 교지에다 '나도 한마디'를 짤막하게 남길 것이다. 이것 외에도 내 소설이 실린 적 있었다. 그리고 이에 앞서 국민학교(우리때 초등학교는 없었다) 5학년때 '20년 후의 나'란 제목으로 학급 모두가 공상일기를 노트에 써서 모았는데, 도서부장이던 나는 이걸 복사집에서 머리수만큼 복사 및 제본했었다. 책을 펴내는 경험까지 했던 셈이다.

하지만 버젓이 파는 책에다 내 이름을 올린 건 아마도 지금이 처음인 듯 하다. 물론 이번에도, 혼자의 독집은 아니고 많은 이들과 함께 원고를 모은 책이지만. 그래도 '내 책'이라고 여긴다.

도서출판 느티나무아래에서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을 펴냈다. 정가 14500원. 한달전 출판기념회를 가지고 대형문고 등에 풀렸다. 이 책의 저자 25인 중엔 내가 들어 있다.




오케이. 인증한다. 여차저차해서 김진혁 PD와 나란히 초청발언대에 끼게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다.

내 이름이 여기에 오른 건 언젠가 기사로도 소개한 뜻하지 않은 인연 때문이다. 1년전, 촛불 1주년의 현장에서 난 기념티셔츠를 파는 시민악대를 만난 적이 있었다. (http://kwon.newsboy.kr/1214) (http://kwon.newsboy.kr/1215)

이 때, 동영상을 찍고 돌아서려니 한 사람이 나를 붙들고 전단지 하나를 건네는 거였다. "우리 출판사에서 이러한 책을 내고자 원고 모집을 하고 있으니 원고 공모에 응해 보라"는 것이었다.

상금이 있다기에 잿밥을 염두하고 글 하나를 써서 보냈다. 사실 글이 잘 나오질 않아 몇번을 고쳐쓰고도 맘에 안들었던 투박한 원고였는데, 역시나 그 때문인지 난 입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책에도 내 글은 안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난 뒤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게 된다. 원고교정 막바지에 내 글을 추가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곤 입상작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투고한 초청발언대 코너에 덜컥 하고 함께 실려버렸다. 




그냥저냥 내가 경험했던 것을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미천한 원고인데, 황송하게도 벌써 내 원고에 대한 평이 있었다. 으뜸상 당선자인 김창규 님이 블로그에서 내 글 이야기를 꺼낸 걸 보고 (http://kimchangkyu.tistory.com/801?srchid=BR1http%3A%2F%2Fkimchangkyu.tistory.com%2F801) 적잖이 감격했다.

내가 펴낸 글을 다른 이가 읽고 반응해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멋진 감흥이다. 그에 앞서 기록지에 내 이름을 남기는 것 또한. 그건 기사의 바이라인에서도, 책의 글쓴이 소개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난 여기서 한발 나아가 그 감흥을 확대시킨다. "이 세상에 내 이름을 흔적으로 남겼다"라고.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세상에 나란 사람 있었노라고 존재를 알리는 순간...이라고 해석하면 너무 과하려나.





개인적으로 맥주캔 하나 딸만한 경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경험이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책에 또 언제 내 글이 나올거라 믿겠는가.

독집? 그게 뭐, 쉽나. 아무나 책을 내나.
뭐... 그렇다고 기사는 개나소나 다 쓴다는 말은 아니다. (먼 산)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