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3.1절 돌아본 그 때 현장, 민주올레길

3.1절 돌아본 그 때 현장, 민주올레길
"문화재 지정도, 제대로 된 표식도 없다"






3월 1일, 3.1절을 맞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이 자리엔 한명숙 전 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 정계인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민주올레길 행사가 우천 속에서도 진행됐다. 이 코스는 중앙고등학교와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했던 집, 손병휘 선생 가택 옛터, 독립선언서 인쇄터와 파고다공원 등 3.1 만세운동의 현장으로 이어진다.





시작되는 올레길. 함께 따라나서보기로 했다.



3.1운동의 태동 간직한 중앙고 숙직실, 지금은 방치 중



중앙고등학교의 뒷뜰로 나아가니, 당시 중앙고보 숙직실이 나온다. 중앙고를 민족운동의 중요한 터로 인식케 하는 장소기도 하다. 바로 이곳에서 3.1 운동이 논의되고 또 2.8독립선언서 초안이 들었다.

해설자는 "이 곳이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되면 좋겠건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그냥 방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했던 집, 문화재 지정 요원한 현실 


중앙고를 나서 잠깐 걸었을 뿐인데, 이 가까운 거리에 몰랐던 곳이 나온다. 애국지사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님의 침묵', '복종'의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했던 집.





생가는 아니지만, 당시 거처했던 집으로 벽돌이 쌓아올려졌다거나 하는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남아있는 옛 집이라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3.1 유적이라고 해설자는 말한다.

"이 곳은 문화재도 무엇으로도 지정되지 아니한 상태로 있습니다."

서울시는 아직 이 곳을 역사 유적으로 지정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따랐다. 이에 "정치인들 많이 오셨는데 검토하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3.1 독립선언서 낭독자이자, 광복을 1년 앞두고 눈 감은 그의 체취가 남은 이 곳은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손병휘 선생 가택 옛터




안국역 근처에 손병휘 선생의 옛터가 있었다. 지금은 비석 하나 없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이 집은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고종 황제의 승하 후 많은 문상객들이 이 곳으로 향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 독립운동을 은밀히 꾀하는 지사들의 왕래가 숨어있을 것이란 추측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음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당시 이들이 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처벌됐다는 설명이 나오자 장중에선 실소가 터졌다.

"지금이랑 똑같네?"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된다. 천도교 중앙총부 옛터와 선언서가 인쇄됐다 방화로 소실된 보성사 옛터로 향한다.


지금은 덕성여중이 들어선 천도교 중앙총부 옛 터.




인쇄 후, 화재로 소실된 보성사. 일제의 짓이라는 해설자의 설명이 따른다. 이어서 경운동 이종일 보성사 사장의 옛집 터로 향한다. 선언서가 배포된 자리다.





그리고 여기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지난번 승리한 민주주의 보고대회에서 뵈었다"고 하니 "아 그랬죠"하며 날 알아본다. 당시 최문순 사장과 함께 라이벌에서 파트너가 된 모습을 보였던 그는 이제 KBS에 이어 MBC에도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이는 상황을 목도하게 됐다. 그러나 자유인이 된 듯, 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에서 울린 만세 삼창

삼일독립선언유적지. 당시 유명했던 요릿집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이 있었다. 이 자리는 현재 성신양회 건물로 바뀌어 있다.




"여기서 만세 삼창 한 번 합시다"

어느 할아버지의 요청이 들어온다. "파고다공원에서 할건데"라고 하자 "여기서도 하자"고 한다. 즉흥적으로 만세가 울려퍼졌다.





이들의 행렬은 이후에도 인사동 숭동교회, 파고다공원으로 계속해 흘렀다. 80여년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쏟아져나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그렇게 수시간을 다녔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