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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룡의 휴머니즘, 빈소에서 그리는 명장면들

배삼룡의 휴머니즘, 빈소에서 그리는 명장면들



생각을 잘못했다.
지난번 임수혁 선수의 빈소만 생각하고 쓸쓸함이 묻어날까 찾아갔건만, 여기엔 상당히 많은 취재진들이 자리해 있었다. 확실히 흑백TV시절 코미디와 쇼프로그램을 주름잡은 명인임엔 틀림없는 모양이다. 굳이 내가 미약하나마 채널 하나를 보탤 필요는 없지 않았나 했다.

그래도. 임수혁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에겐 빚 진 것이 있는 꼬꼬마, 멀리서라도 찾아와 본 건 잘했다 싶다. 무슨 이야기냐고? 이번에도 조금 길 거 같다. 2030세대는 기억할 만한, 그러나 젊은 세대는 잘 모를, 또 좀 더 나이 있는 40세대 또한 모를 우리 또래의 이야기.

23일, 서울 아산병원 배삼룡 옹 빈소.


향년 84세. 90년대까지만 해도 KBS, MBC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기에 젊은이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얼굴의 배삼룡. 그 때만 해도 배삼룡 옹은 구봉서 옹과 더불어 원로라는 말보다 중견이란 말이 더 어울릴만치 왕성한 활동을 했다.

사실 80년대 들어선 코미디언이란 말보다 개그맨, 개그우먼이란 말이 더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개그와 코미디의 개념이 참으로 모호한지라, 오래 전 배우들에겐 코미디언이라 부르는게 예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다.

배삼룡의 코미디는 개그콘서트가 대세인 현재의 트렌드와는 확실히 다르다. 어쩜 그의 사람 웃기는 방법을 '코미디'로 정의해 현재 개그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도 하나의 분석방법일지 모르겠다. 

그의 시기를 흔히 '슬랩스틱', 때려서 웃기는 시대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내가 봤던 시절은 그의 전성기가 아니라 말년을 정리하는, 80~90년대의 컬러 시절이라 모노로그 시절의 것과는 또 다를 수도 있겠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가 잡은 캐릭터, 그가 보여준 코미디는 슬랩스틱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웠다. 이는 구봉서 옹도 동일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들은 존재만으로 폭소탄을 던지는 그런 배우들은 아니었다.
'영구야 영구야' 등에서 배삼룡 옹과 호흡을 자주 맞췄던 심형래와 비교해 보자. 당대최고 인기인이자 슬랩스틱의 전형적 얼굴인 심형래는 제스처 하나만으로도 애들을 넘어가게 했던 반면, 배삼룡은 웃음을 던지는 역할을 죄다 그에게 맡기고 대신 극의 진행을 잡았다. 실은 그것이 '코미디언 배삼룡'의 진짜 매력이었다.

순간순간 재치와 애드립 등 개인기가 중점을 차지하는 요즘 개그와 달리, 당시 프로그램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웃음을 한꺼풀 제껴두면 순간 울음바다가 되는 순간도 간간이 목도했을 것이다. 캐릭터 그 자체보단 캐릭터의 포지션이 더 중요했던 시절. 처음부터 폭소보다는 해학극에 목적을 둔 작품도 상당수였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서.

화환 하나가 내 눈을 잡아 끈다. 내노라하는 개그맨 후배들을 비롯 여러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지난번 임수혁 선수 때도 그렇고, 참 아쉽다. 나도 들어가 향불 하나 피워올리고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싶건만, 생전 면식 없는 이가 조의금 봉투 없이 들어가기는 차마... 게다가 카메라들고 들어서기도 그렇고. 그저 바깥에서 이렇게 회상하는 수밖에.

배삼룡 옹이 나온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그래, 솔직히 말해 내게 있어 '푸하하'하고 '빵 터지게 하는' 그런 슬러거는 아니었다. 변방의 북소리에서 천하의 바보짓으로 폭소케 하는 심형래 씨나 고도의 액션으로 환성을 터뜨리게 하던 '밥풀떼기' 김정식 씨가 거기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세월을 90년대로 맞추면 맹구 이창훈 씨와 오서방 오재미 씨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고.

그러나 그는 웃음이 아니라 묘한, 정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 코미디언이 사람을 웃겨야지 다른 감정을 몰고 오면 어쩌느냐고? 누가 웃지 않았다고 했나. 그는 순간적인 폭발 대신, '배시시'하고 입가에 미소를 뜨게 하는, 그리고 그 여운을 참으로 오래도록 가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여운은 수초도 아니요, 수일도 아니요, 20년이 넘도록 남아 있는데.

그의 작품 중 아직도 잊지 못하는 명장면이 있다. 20년이 넘었다는 그 여운의 장면이다. 금요일 오후시간대였나. KBS 9번에서 재방영하는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유머1번지나 쇼비디오자키, 코미디하이웨이 같은 트렌드 프로그램보다는 다소 올드한 작품. 메인 프로는 아닌 듯 하고, 막말로 '이젠 한물 갔다'는 중견급 코미디언들을 데려다 복고풍의 꽁트 코미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마지막 코너는 그가 주인공이었다. 오래된 극단 무대, 희극을 보러 온 관객들 앞에서 무대 연출을 보조하는 노직원이 그의 역할.

그의 그 역할은 언뜻 보기에 영구나 맹구와 비슷하다. 무능한, 사고뭉치의, 바보 같은 캐릭터.

신파극에 눈 내리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그는 천정에 올라 밀가루를 뿌려댄다. 선남선녀는 아래서 "눈이 오는군..."하고 대사를 친다. 그런데. 그는 그만 밀가루판을 떨구고 만다. 밀가루 한포대 분량이 통째로 무대에 쏟아져 내리고, 극은 엉망이 된다. 어쩔 줄 몰라하는 배삼룡. 그러나 수습하려고 하면 일은 더 커진다. 악의 없는 실수라 어찌할 수도 없는 단장.

그 모습을 미운 아홉살 꼬마는 참 따스한 감성으로 바라봤다.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오는 거였다. 그의 그 역할은 어딘가 모자라보이지만 매우 선량하고, 뭔가 열심히 해보려는 순박한 캐릭터. 그렇기에 엇나가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방금 SBS뉴스가 올림픽 소식 막간에 그의 인생을 다룬 신문 보도 타이틀을 전하던데,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 했나. 딱이다. 단순히 세상사를 우그러뜨려 희화하고 해학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 감동 비슷한 뭔가를 전하는 모습. 내가 현란한 연출과 개인기의 개그콘서트를 보면서도 순간순간 그 해묵은 장면을 떠올렸던 건 다름이 아니다. 정작 지금의 개그 프로는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정말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즉, 개그 안에 휴머니즘을 담았던 과거의 상실이 아쉬워서였다. 컬러로 전환했음에도 그 흑백 시절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던 배우, 그 사람이 배삼룡이다.

그는 주로 선역을 맡았다. 영구가 독립운동가라면 놀라려나? 사실이다. 일제시대를 무대로 한 그 작품에서 아버지도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사람이었고, 영구도 비밀요원 쌍라이트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고 다녔다. 이들을 키워낸 할아버지가 배삼룡이었다. 캐릭터 설정에서 '존경받는 위인'을 전제했으니 지금의 개그 프로에선 쉽지 않을 도입이다.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개그 프로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 그건 그거대로 당대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코미디하이웨이에선 '자라 조금산'을 살려준 덕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농촌후계자 심형래'와, 그하고 결혼하게 되는 '재벌집 규수 김미화' 등이 나올 때 역시나 사람좋은 할아버지로 출연했다. 주역은 모두 젊은 기수들에게 내주면서도 극이 엇나가지 않도록 뼈대를 제대로 지탱한 중견이었다.

실은 이 날 빈소에서도 김미화 씨가 찾아와 있는 걸 봤다. 20년전 극 중 며느리였던 그녀. 순간 시할아버님의 빈소를 모시는 며느리 같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 때의 기억때문이겠지.

그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어릴적 그를 보고 자라난 햇병아리 저널리스트에겐 추억이 전설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그를 극에서 어른으로 모셨던 후배에겐 대선배이자 어른을 보내는 시간이다. 구봉서 옹과 같은 동년배 동료들에겐 저물어가는 당신들 인생을 또 한 페이지 정리하는 경건하고도 애틋한 시간이다. 슬프면서도 부럽고 존경할법한 일이다. 나이들어 가는 사람의 숙명을 슬프게만 보지 말고 아름답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말이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