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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정운찬 총리의 원고 통째 외운 기억력과 '약속' 말한 망각력

정운찬 총리의 원고 통째 외운 기억력과 '약속' 말한 망각력


난 정운찬 총리에 대해 두번에 걸쳐 고도의 안티설을 꺼낸 바 있다. 한번은 신임총리 청문회 때(http://kwon.newsboy.kr/1428), 그리고 또 하나가 731부대와 마루타에 실언했을 때(http://kwon.newsboy.kr/1486)다.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11일 오전, 생방송으로 십수여분간의 발표문을 접한 후의 소감?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없지. 오늘은 놀라움과 더불어, 긴가민가한 것부터 꺼내보인다.

오늘 그의 수정안 발표를 보는 내내 감탄한 것이 있다. 그건 그의 가공할 기억력이다.

내가 본 바, 그는 원고를 보며 읽은 것이 아니라 아예 내용을 통째로 외워 왔다. 십오분쯤 걸렸던가. 그 발표 내내 그가 고개를 내려 아래에 있을 원고를 흘깃 하는 모습을 본 사람 있는지 먼저 묻고 싶다. 내 기억엔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원고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어온 듯 줄줄 발표해가는 모습, 실로 경탄하고 말았다. 그 놀라운 기억력 하나만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나, 서울대의 수장이었던 지식인이 맞긴 맞나 보다 고개를 끄덕일 정도. 정말 똑똑한 사람이구나 하고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니깐. 아니 근데 왜 이전엔 그리 무방비 상태로 야당 의원들 공세에 얻어맞았지?

자, 전문을 소개한다. 미디어다음에 오른 뉴시스의 이 날 발표문 전문이다.(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111100319363&p=newsis) 정말이지 범상한 기억력으론 소화하기 어려운 장문인데 말야.

그런데 내용을 보아하니, 이번엔 물음표가 절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은 기억력이 좋은거야 나쁜거야?

그는 세종시 원안을 버리고 수정안을 택한 변에 대해 '약속'을 언급했다. 초반부에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과오를 인정하더니, 연이어 "그러나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 아니냐"고 당위성을 주장했다. 내가 짚어보기엔 이날 발표의 핵심이자 거진 전부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총리님, 실수하셨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대선 당시 표 잃을까봐 원안대로 한다 말했었다"며 번복함을 사과한 게 불과 지난해 11월 27일. 사오십일 전 대통령 스스로가 약속을 깬 것을 인정했건만 이를 딱 복기하게 만들어버리는 대목을 넣을 줄이야.

다름 아닌 대통령께서도 스스로 그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재언약을 했고, 또 이를 깸으로 거짓말이 된 것에 인정하고 사과하셨다니깐요. 정치적 복선이라 함은 선거를 의식해 못지킬 약속을 했다던 대통령의 사정, 딱 그거 아니던가. 약속을 번복한 것을 용기있는 결단이라 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첨부터 약속을 마셨어야 설득력이 있는 것을.

지독한 망각을 탓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좋은 쪽으로만 해석해 내놓는 것에 국민들 우습게 아느냐고 한탄해야 하는지...

아니지. 역시. 이러면 납득이 가.
이걸로 또 한번 고도의 안티설을 꺼내게 됐다. 저 놀라운 기억력을 보건대, 필시 머리가 비상한 인재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 반면, 그 놀라운 기억력으로 꺼내보인 발표문 중에 정부에 독이 되는 키워드를 꼭 집어 넣은 것을 보면 이거, 은근히 물 먹이는 거다. 아직은 '신임' 딱지가 어색하지 않은 총리 언행에 정부가 벌써 얼마나 많이 물을 먹고 있는가.

그리고 마침 터져나오는 민주당의 해임안을 보니, 희한한 예상 시나리오를 꺼내게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이것이 정말 통과되거나 혹은 스스로 사임을 하는 충격적 상황이 기다린다면?
그리고, 그 때 밝히는 거다. "여러분 사실 저는 엑스맨이었습니다"라고. 아마도 세계 정치사에 유래를 보기 힘든 새로운 지평, 새로운 전략적 모델을 제시하는 순간이 될 거 같은데.

상식적으로는 블랙코미디에서나 가능할 법한 시나리오지만, 불가능할 건 또 뭐 있나 싶기도 하다. 요 근래들어 워낙 희한한 세상이 펼쳐져서 말이지. 아직은 당최 미스터리지만 말이다. 내 보기엔 역시나, 감탄하는 편이 맞지 싶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