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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시사

노회찬, 꽤 괜찮은 남자더라

노회찬, 꽤 괜찮은 남자더라 
"용산참사 희생자들이여 김남훈 경사 만나거든 위로해 주소서"


2010년 1월 9일, 토요일 오후 서울역 광장.

작년 이맘때, 정국을 충격으로 얼어붙게 만들었던 용산참사. 숱한 우여곡절 끝에 1주년을 꼭 열흘 앞두고서야 희생자들의 장례가 비로소 이뤄졌다. 이 날이 바로, 355일만에 치뤄진 장례식날. 영결식이 치뤄지던 도중, 야당의 대표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순서대로 조사를 이어가던 그들. 사실 이들의 조사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야당 대표로서 여러분들을 지켜드리지 못한 점에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이었다.

정세균 대표는 "이 나라의 제1 야당 대표로서 미안하다"고 했다. 강기갑 대표는 "힘없는 우릴 용서해달라"고 했다.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저 한 편엔 참사 직후 현장에서 조사를 벌이다 경찰들과 충돌했던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사를 읽은 것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4인의 조사 중 가장 강하게 뇌리에 각인됐다. "뻔뻔한 대통령이 고인들 무덤 앞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겠다"고 이 대통령을 맹비난해서? 아니다. "따뜻한 국물이라도 드시게 하고 보내드렸다면"이란 감성적 부분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밝힐 대답은 아니다. 그 이유는, 조사의 마지막 부분 때문이었다.

노 대표의 조사는 당일 포스팅한 그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chanblog.kr/entry/언제까지-죄송해하고만-있지는-않겠습니다) 

단, 여기서 텍스트로는 소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미리 준비된 원고에선 없었던 부분이 즉흥적으로 추가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미공개 부분은 본문 중 자료로 함께 첨부, 다음 TV팟을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 수록돼 있다.




출처는 상동.

 

그것은 이 영결식의 추모대상인 희생자 5인 뿐 아니라, 당시 함께 목숨을 잃은 김남훈 경사를 함께 언급한 부분이었다.

그가 '고 김남훈 씨'를 밝힐 때, 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또 한가지, 테러... 테러를 진압하기 위해 테러진압부대에 배속되었다가..."

이 첫부분 말인데. 아무래도 단어 선택에 있어 스스로도 뭔가 부적절하다 느낀 것일까. 잠깐 '테러' 부분에서 멈칫거렸던 노 대표.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은 내가 처음 예상했던 맥락과 같은 것이었다. 진압 작전에 동원됐다 순직한 김남훈 경사 역시 참사의 억울한 희생자 중 한 사람으로서 추모하는 내용인 것. 아울러 그가 진압을 한번 더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는 '살인 진압'으로 달라져 있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살인 진압에 강제동원되어 그 참사 과정에서 함께 운명하신 특공대원 고 김남훈 씨, 돌아가신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노 대표는 희생된 철거민 5인에게 "김남훈 씨를 만나시거들랑 위로해 주소서, 함께 손을 잡고 보듬어 주소서"라고 밝혔다. 깊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망자들에게 부탁하는, 생사의 선을 넘어 전하는 한마디였다.

그것은, 어떤 울림이 있었다. 약간이지만 모험을 감수한 것이었기에 더 크게 느껴졌나 보다.

작년,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그 날 한강로에서 벌어졌던 집회를 기억한다.(http://www.newsboy.kr/news/articleView.html?idxno=4860)

그 때, 어느 대학생이 그들을 추모하는 연설하던 중 김 경사를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오늘, 이 곳에서 다섯분이, 그리고 경찰 한 사람까지 해서 여섯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집회자 중 한 남자가 "한명은 빼!"라고 외쳤었다.

그와 같은 반응은 이후 관련보도가 나올 때마다 댓글광장에서 네티즌들을 통해 연거푸 확인할 수 있었다. 용산참사 희생자에 대해선 추모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경찰 희생자에겐 진압과정에 대한 분노를 내보이며 그 추모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 그 때문이었을까. 용산 참사 100일 추모제에도 취재를 나갔었지만 연단에 올라선 이들 중에서 김남훈 경사를 함께 추모하는 목소리는 들었던 기억이 없다. 다른 곳에서도 추모 연설 및 조사에서 그를 함께 언급한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듣질 못했다. 용산 참사 희생자 5인에 대한 연민과, 정부와 경찰에 대한 날선 노여움. 이렇듯 성격과 대상이 확연히 다른 감정으로 가득찬 집회장소에서 그의 이름을 추모대상에 올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결식장에서 조사를 읽던 야당 대표 4인 중 노회찬 대표가 마지막 순서, 마지막 순간에 김 경사를 다섯 희생자와 더불어 억울하고 아까운 목숨, 용산참사의 엄연한 희생자로서 추모한 것은 내게 강한 울림을 전하기 충분했다. 쉽지 않은 분위기, 자칫하면 곱지않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던 찰나에 기꺼이 또 한사람, 그간 쉽게 밝힐 수 없었던 또 한사람의 희생자를 배려한 것이었고 이는 분명 용기가 필요한 언행이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한 것임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용산 철거민은 물론이요, 맡겨진 임무로 사망한 경찰 역시 진압 과정 중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희생자임을 안다. 그러나, 추모와 분노의 대상이 너무도 명확히 갈리는 집회 현장에서 이를 밝히는 것은 묵언의 압박을 요하는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그 추모의 말 한마디가 실상은 절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그런데 노회찬 대표는 이것을 감수하고 입을 뗐다.

난 노회찬 대표를 모른다. 직접 만나본 적도, 말을 걸어본 적도 없다. 그저 멀찍이서 바라봤던 경험이 두 번. 그의 실물을 처음 대한 건 지난달이었고(김대중 전대통령 노벨평화상 9주년 기념식이었다), 이 날이 두번째였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그에게서 그 한 순간, '이 남자, 꽤 괜찮은 남자인것 같다'는 감흥을 받았다. 정말로 저 세상이 있다면, 또 한사람의 참사 희생자 김 경사는 그의 배려에 필시 감사했을 거라고 믿는다.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