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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저널리스트 이야기] 7. 이글루스의 디지털 괴물 '자그니'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이야기]
7. 이글루스의 디지털 괴물 '자그니'
를 만나다



# 인터넷 시대를 맞아 언론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터넷 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 인터넷 기자, 블로거 기자들이 털어놓는 오늘날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들어본다.



그는 자기 얼굴을 블로그에 공개하는 몇 안되는 블로거다. 잘 짜여진 블로그 디자인에서부터 전문가 냄새가 난다.


이글루스엔 디지털 괴물이 산다. 1년여만에 600만이 넘는 카운터를 기록한 그 괴물은, 한달에 100만 조회객을 먹어치운 적도 있다. 그러나 야성의 괴물과는 거리가 멀어 포식 후의 디저트는 책이다. 월 20권이 넘는 책을 먹어치우는, 지적 괴물. 게다가 얼리어답터다. 말 그대로 '디지털 괴물'.

이글루스에서만 웅크리고 살진 않는다. '매니악한 이들의 집합소'로 여겨지는 이글루스에 둥지를 틀었어도, 그의 포효는 다음 뷰를 비롯 인터넷 블로그 영역 전방위로 닿아 왔다.

신규 디지털 기기에 있어 가장 강력한 전문 리뷰가며, 책 리뷰로도 알려진 그 괴물의 그림자엔 현자의 망또가 드리워져 있다. 시사 쪽에도 관심이 많은 토론가. 때문에 격렬한 논쟁을 벌일 때면 괴물을 사냥하려는 헌터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마냥 신비에 쌓여있지도 않고, 무실체 속에 숨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엔 보란듯 실물 사진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가기도 하기에 굳이 만나겠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거칠 것이 없는 행보 뒤에 남겨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권태감인가 자신감인가.

인터뷰 자리에, 그 괴물은 그 기이한 감각을 질질 끌며 모습을 드러냈다. 현자의 실루엣을 갖춘 괴물, 이글루스의 파워블로거 자그니님을 만났다.



자그니 (http://news.egloos.com/)
2007, 2008 이글루스 탑 10.
누적 카운터 650만.
디지털라이프에서 시사까지 아우르며 온,오프라인을 횡보하는 오픈 마인드의 유저.




[인터넷 저널리스트의 이야기] 7. 이글루스의 디지털 괴물 '자그니'를 만나다


그는 언젠가 김진애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과 블로거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웃었다.

"제 블로그 이름은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 입니다."

디지털 괴물은 뜻밖에도 낭만적이다. 최소한 사이버펑크물에 등장하는 금속체의 차가운 그것과는 한층 다른 느낌을 블로그 첫 화면에서 받는다. 그래서 실상 그의 첫 인상은 로맨티스트 내지 낭만파 철학자에 가깝다.

"제목도 그렇고, 부제목도 그래요. '거리로 나가서 키스를 하면 어떤 맛이 날까요?'라는 그 말. 혹시 마돈나에게서 영감을 얻었나요? (마돈나는 공항과 같은 공공장서에서 키스를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었지 아마.)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는 매우 강하게 거부 표시를 한다. 그 모습이 의외로 큐트하다) 사실 키스 이야기는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에서 얻어온 거예요. 거기서 등장하는 노인이 키스한번 못해봤다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하죠. '인생의 즐거움을 한 개도 모르고 어떻게 살았느냐'라고요. 그리고 저 제목과 부제는 어느 에세이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뭐랄까, 자유롭게 살자는 생각을 저렇게 표현했다고 할까."

내가 그를 '디지털 괴물'이라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디지털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블로그...이긴 하지만'이란 소개글에서 보듯 '일단은' 첨단 기기 리뷰와 IT 포스팅에 강한 전문 블로거다. 둘째가 '괴물'이란 표현에 부족함 없는 그의 강력한 영향력이다.  

"한달에 한 20만명? 뭐 그정도 들어와요. 가장 많이 들어왔을때? 한달새 110만명 들어온 적이 있었네요."

"엄청난 수치인데요."

"그리고 하루 최고 조회객 기록은 40만명이 들어왔을 때네요."

그러나 그는 "난 이글루스에서 탑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실제로는 훨씬 대단한 초대형 블로거가 존재한다"고 밝힌다. 티스토리 등 타 블로그와 달리 카운터 표시를 대외적으로 하지 않는 이글루스엔 예상을 뛰어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겸손의 표현이었던 것인가.   

"그럼 지금껏 누적 카운터 수는?"

"650만명이요. 촛불집회때부터 많이 들어왔어요. 아니, 그 때가 사실상의 카운터 출발점일까요?"
 
이글루스 블로그를 처음 연 것은 2003년. 사실상의 시작은 2005년. 그러나 650만 카운터의 실질적 출발은 불과 작년이었다는 설명이다.

"시사 이야기도 많이 하시죠?"

"시사 쪽 이야기는 촛불 이전에도 많이 했어요. 다만 확실한건, 촛불을 위시해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폭증했죠."

사실 그의 인터넷 라이프는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블로그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1998년에 개인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었다. PC통신 시절을 난 세대라면 기억할 파라다이스네트가 그의 첫 둥지다. 

"pc통신 가입시 10메가 계정을 줬었죠. 거기서 매거진 형식으로 운영을 했는데, 당시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사, 영화, 게임이 주 메뉴였고요, 에세이 등도 있었어요."

"이후엔?"

"그 외에도 블로그 서비스 업체란 업체는 다 섭렵했습니다. 네이버, 다음... 여하튼 그래요. 이글루스 안착 계기? 네이버 블로그를 쓰다 넘어왔어요. 당시 네이버는 검열이 제일 심했거든요. 새 둥지를 찾다가, 당시 기술력에 있어서 괜찮은 데라 싶어서 이글루스를 정했습니다. 맥북을 쓰던 입장에서 이글루스는 매킨토시와 친했거든요."

자. 그리고 여기서 이견이 갈릴 법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는 '컬쳐뉴스'의 편집장을 했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자기가 만든거나 마찬가지라는 그 신문사를 두고 그는 '블로거를 탑재한 최초의 언론사일 것'이라고 밝힌다. 이는 국내 최초 인터넷신문이자 '블로거틱'한 최초의 신문사를 주장하는 본지 '뉴스보이'와 같은 맥락의 것.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참고로 컬쳐뉴스는 과거형이 됐다. 



"왜 아이디가 자그니지요?"
 
"pc통신 시절 아이디가 ‘작은이’였어요. 학교낙서장엔 필명으로 그것의 발음나는 그대로인 ‘자그니’를 썼죠. 뜻이요? '아직 큰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 아직은 소인배'라는 의미예요. 물론 아직도 멀었죠. 다만 마음은 굳세졌네요. PC통신 시절부터 별의별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어지간한 일엔 이골이 났어요."

그는 전형적인 논쟁가다. 논쟁성 글을 올렸다가 댓글파이트가 붙으면 '백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 펼쳐지곤 한다.

"왜 많이 싸우냐고요? 이유는 그래요. 그간 설전이 벌어진 글을 살펴보면요, 어느 한쪽 입장에 확실하게 서서 강하게 썼던 경우가 많아요. 또 논쟁성 이야기를 즐기기도 하고요. 논쟁을 할 땐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상대 쪽을 제압하고자 씁니다. 중앙대 대학원 시절, 진중권 교수님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그 영향일지도 몰라요. 거기다 제 글은 감성이 묻어나는 스타일입니다. 이렇다 보니 '죽여버리겠다'는 글도 많이 봤습니다."

가장 아끼는 글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연애에서 실연당한 마음의 이야기인 '뒷더듬이가 길었던 그녀는?'을 소개한다. 그리고 오후의 잔디밭을 비롯, 감성적인 글을 꼽는다. 

반향이 가장 높았던 글은 또 따로 있다.

"확성기 밴드라고요, 촛불집회 당시 메가폰 통해 노래부르던 친구가 있어요. 이를 소개했더니 하루새 40만명이 들어오더군요." 

촛불집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당시 그의 동향을 물었다. "촛불집회 당시, 블로거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을 했다"는 그다.
 
"집회 현장에 매일같이 나갔어요. 5월부터 8월까지요. 물론 현장중계는 언론인, 다른 블로거들이 해줄거라 믿었고, 난 주로 뒷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죠. 말하자면, 촛불집회는 축제이기도 했고, 또 그 단면엔 소외된 모습도 있었어요. 그리고 전 그 변두리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었죠."

"좀 더 촛불집회에 대해 평해 준다면요?"

"촛불집회는 소통이었다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원했던 건 그거죠. 수입쇠고기 문제를 왜 당신 멋대로 결정하는가 하는 불만. 그건 옛날식이 아니던가요. 높은 이가 결정하면 아랫사람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과거를 그대로 답습했던거고 사람들은 그게 싫어 일어난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생판 민심을 무시하는게 문제입니다. 자기가 무조건 진리라고 믿는 거, 문제있죠.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은 정신질환과도 같은 문제입니다."

그는 "사실 디지털 쪽에 주력하는게 맘은 훨씬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수가 없단다. "내가 당장에 화가 나는데 그 목소리를 못내면 그건 그거대로 비겁한 것이 아니냐"는 그다. 덕분에 방문객도 우방도 적도 나날이 늘어간다.

"들어오는 사람들 성향을 보면요, 친mb도 있고 이래저래 다양하게 많아요.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쪽에서도 많이 넘어 와요. 좌파도, 우파도 많이 오죠. 적도 많지만, 그래도 이글루스를 통해 좋은 인연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인연일까요?"

"글이란건 그 사람의 인격 그 자체예요. 글을 남긴 이들 보면 좋은 분이 많죠. 예를 들면 들풀 님. 글 쓰는데 있어 차분하고 상황에 있어 많은 생각을 하는 그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클리어 메디아 님도 그래요. 두 분 다 직접 만난 적은 없네요. 두 분 다 미국 이민자거든요." 

어쩌다가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이 둘인데요, 하나는 LG화학 주재원이예요. 사실 두 동생과 나는 통장잔고의 차가 많이 나요.(웃음)"

"연애 이야기도 꽤 많이 하시던데. 경험이 많나요?"

"빙고. 많이 만났죠. 인기요인? 말 잘하고 용기있고...(웃음)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고백하는 용기 말입니다. 철학과 출신이니까 말 잘하는 법은 그럭저럭 배운 편이고."

그러나 그는 지금 여전히 혼자다. 그래도, 연애를 통해 많이 배웠다고.

"연애에 대한 소감이라... 끝날때마다 고맙죠. 내게 좋은 시간을 같이 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곧 사람의 생각을 넓히는 것 같아요. 함께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세계를 알 수 있거든요. 만날 때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그것을 두루 얻을 수 있었죠."

이야기가 길어졌다. '파워블로거'로서의 '자그니'에 대한 질의로 정리하고자 했다.

"전 파워블로거라고 자평하지 않아요. 나도 그 파워블로거라는 의미를 잘은 모르겠네요. 영향력? 사실 누구나 다 어느 누구를 향해 있지 않나요. 영향력 없는 사람은 없어요. 굳이 파워블로거란 말을 써야 하는 건지 도리어 되묻고 싶네요. 블로그 조회수? 누구나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건데. 그래서 그 말 자체를 부담으로 느낍니다. 파워블로거라는 말은 그 대상에게 뭔가를 짊어지게 만들잖아요? 어떤 이가 그러더라고요. 비밀댓글로 '자그니님은 맞춤법 틀리면 안되지 않느냐'라고. 블로거란 본디 개인 영역인데도 동시에 공적인 자리라는것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워요."

"그럼 이번엔 가벼운 질문을 하죠. 블로그에 오르는 글을 보면 개인 취미 생활 이야기도 즐기시던데."

"살사댄스를 배워요. 동기는 2002년에 실연당했을 때로 거슬러 오릅니다. 친한 친구가 두 명 있는데, 이 중 한 사람은 일본여행을 데려다 줬고 한 친구는 살사댄스를 가르쳐 줬어요. 이 둘이 내게 있어 지금도 가장 큰 취미가 됐죠."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왕성한 만남을 하시잖아요? (그는 매달 커피와 책이 어우러지는 만남의 자리를 블로그에서 주선한다)양 쪽 세계를 넘나들며 느낀 건 없나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보면요, 실상 그 존재엔 차이가 없어요. 내가 보기엔 그래요. 난 그 두 영역의 차를 못 느껴요. 인터넷에서 만나던 사람을 바깥세상에서 만나보면, 글이나 사람 본인이나 결국은 그 성격이 똑같더라고요. 다른 척 해보여도 결국엔 같은 존재가 맞아요. 사람 성격은 어디까지나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라는 존재는요, 대하는 상대가 연인이던 부모던 친구던 간에 그 누구에게도 다를 수가 없는 것이예요."

"자그니 님을 파워블로거라고 의식하는 ,그리고 이를 선망하면서 블로그에 첫 발을 내딛는 초심자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 쓰세요. 그리고, 그걸 계속 쓰세요. 사람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요. 헌데 쓰다보면 그 답을 알아요. 누구는 아이템 좋은 걸 골라 쓰라 하는데 그건 누구도 몰라요. 그리고 그렇게 해선 오래 못 써요. 헌데, 쓰다보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를 깨닫게 될 겁니다."

이번엔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본다. '블로그의 가치란?'이란 짤막하고도 난감한 질문이다.

"내게 있어선 개인적인 데이터베이스 측면이 강합니다. 머릿속에 있는걸 푸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저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걸 정리하는 자리인 거죠. 다만, 내 딴엔 나만의 입장 정리라고 한 것이, 남에겐 그걸 자신들에게까지 강요하는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게 문제긴 합니다. 그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하고요. 블로그라... 좀 더 사견을 달자면 '나를 찾는 여행'이랄까? 처음엔 그럴수가 있어요. 그러다 나중엔 기억의 저장창고가 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 속은 어느 기점부터 다 기억할 수 없게 됩니다. 2,3년 전에 썼던 글을 들춰 보면요, 내심 놀라기도 하고 또 가치있다고도 생각해요. 참 예쁘게 연애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죠. 만일 저 때 내가 블로그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다른데다 썼다면 어땠을까, 난 지금쯤 어디서 시간을 허비했을까 하는 생각들도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블로그는 살아있는 존재다. 아직도 그의 블로그는 출발점에서부터 그 태동을 간직하고 있다.

"어떤 방문객은 내 글을 역주행해요. 지금 블로그에 올라가 있는 내 글이 거진 3000개거든요? 99년부터 다른 곳에서 썼던 글까지 다 가져와 정리해 놓은 것들 통틀어 말예요. 그게 거의가 지금도 매일마다 다 읽혀요. 한두명씩은 꼭 본다는 거죠. 오늘 글부터 첫 글까지... 최소 천개 이상은 매일마다 읽힌다는 겁니다. 저 스스로도 놀라곤 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글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죠."
 
그는 '살아있는 글'이란 것을 정말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준다.

"어느샌가 읽는 사람이 없으면 그 글은 죽은거죠. 하지만 제 글은 살아있어요. 누군가가 지금도 계속 읽어주고 있다면 그 글은 살아있는 거니까요."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