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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이 기사(newsboy.kr)/라이프

[바의 칵테일] 13. 쿠바리브레, 결전의 날 기울인 한 잔

[바의 칵테일] 13. 쿠바리브레, 결전의 날 기울인 한 잔




결전의 날.
누구에게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결전의 그 날이 있다. 내게도 찾아들었다.

심기일전의 그 날을 앞둔 전야. 난 스스로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BM을 찾았다.

"제가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거든요. 이런 날 전의를 가다듬을 만한 메뉴 없을까요?"

매니저 바텐더가 추천해준 것은 '카미가제'였다. 일본의 카마가제 특공대가 출격 전에 한잔씩 마셨다나. 하지만 지금의 나하곤 맞지 않았다. 독한 술이라는데 취기로 동요를 가라앉힐때라면 모를까, 지금 나는 일정에 지장이 없을 법한 스무스하고 감미로운 응원을 원했다.

그러자 다시 추천해 준 것이 바로, 이 한 잔이다. 쿠바리브레.  



쿠바리브레. 남미의 정서가 담겨 있으려나.

"럼 콕에다가 ...를 넣고..."

콕 종류로군. 콜라로 만들어내는 칵테일이 많기도 하다. 럼주와 코카콜라, 그리고 라임주스를 대신한 뭔가를 넣는다고 하던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기본 레시피는 라임 주스란 말씀.

향이 상당히 멀리 퍼진다. 저 언더락 글라스에서 피어나는 향기, 지금은 단종됐는지 보이지 않는 펩시 트위스트의 그것을 느끼게 하는데.

럼주야 독하기로 소문이 났지만, 주인장이 약하다고 하니까, 믿고 마셨봤다. 첫 느낌.

으음.

...

빨대로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오호라, 역시나 레몬즙이 끼어서 사람 얼굴을 붉게 만든다. 취해서가 아니라 빨아들이기 힘들어서. 웃흥.(--;)

이 술은 너무나도 명쾌해서 설명이 쉽다. 지금껏 마신 어떤 술보다도 신 맛이 강한 음료.

칵테일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님 정말로 그 기운이 약해서인지, 이 술은 술같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정말로 탄산음료마냥 벌컥댈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선 알콜보다 들이키기 더 힘들수도 있다) 덕분에 아주 오래도록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콜라가 주 레시피라지만 콜라의 그 달콤한 느낌조차도 싹 가셔 있다. 정말로 이 술, 레몬인지 라임인지 신 과일의 맛이 강렬하다. 붉은 사과를 한 입 베어물었을때의 그것과 비슷한 청량감.

"근데 이 술하고 시험의 파이팅하고 관련이 있나요?"

"아뇨..."

"......"

기사 쓰기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어주신다. 하지만 '스태미너 보충'이란 측면에 있어선 꽤 근접한 테마다.

왜 있잖은가. 운동 선수들이 하프타임 때 휴식하면서 레몬 음료 등 신 과일의 그것을 섭취한다고. 더운 날, 격한 운동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체력소모와 탈진감에서 빨리 회복시켜 준다는 그 신 맛, 이 한 잔에 제대로 녹아들어 있다. 비록 격무나 격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마음을 팽팽히 당겨주는 듯 하는 그 긴장감 어린 맛이 꽤 만족스러웠다.



약한 도수...라곤 하지만. 반잔쯤 마시니 예상 외의 취기가 찾아온다. 통로막힌 빨대로 조금씩 밀어올렸는데도 불구, 잔이 저 정도 비었을 땐 알콜 특유의 어질함이 머리속을 감돈다. '엄습한다'는게 딱인 표현.

뜻밖의 안주가 찾아왔다. 그와 나의 공통화제.

"어떤 시험이시길래..."

"아, 그게..."

"어라? 그거 나도 한때는..."

별일이다. 하긴, 기자나, 바텐더나. 어찌 보면 모두 이어질 법한 일이긴 하지. 서로 같은 화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어가는 대화만큼 맛있는 안주도 없더라. 덕분에 아주 즐겁게 잔을 비워갈 수 있었다. 이 날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즐기는 법까지 함께 체득한 셈이다. 



마지막엔 레몬즙을 꺼내 깔끔히 뜯어 먹는 센스. 추하지 않게, 댄디하게 레몬을 발라먹을(?)수 있는 방법 아시는 분 어드바이스 좀 부탁한다.

"어우, 생각보다 취하는데요."
"그쵸, 럼이 들어간데다가, 무심코 얕잡아봤다간 나중에 곤란해 질 수 있는 술이예요."

기분 좋은 내일을 위해, 좋은 컨디션을 위한 전날밤의 잠자리에 이 술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유래를 좀 알 수 있을까 싶어 나중에 찾아보니, 아아 그렇군. 만화 바텐더에서 잠깐 나왔던 칵테일. 아마도... 그 쿠바의 국민 가수에게 건넸던 메뉴로 기억한다. '자유의 쿠바'란 이름도 그렇거니와 그 가수가 매우 반기며 '쿠바 리브레!'라 외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거기선 알콜이 거의 없는 술로 그려지지 않았나? 지병이 있어 술을 마셔선 안되는 그녀에게 잔을 내놓고, 이에 항의하는 관계자에게 '물론 이 술도 안 마시는게 좋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설명했었지 아마?

글쎄올시다. 막상 마시고 보니 순간 휘청하기도 했건만. 나, 나는 뭐 잘못되면 이 정도 술도 못마시는건가. 씁쓸하구만.


쿠바리브레

언더락

기본 레시피 럼, 콜라, 라임주스 내지 대체제, 얼음.

신촌 바 BM

가격 5000원
   
촌평 - 큰 어려움 없이 섭렵할 수 있는 도수, 그러나 신 맛은 사람에 따라 친해지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반대로 신 맛을 사랑하는 이에겐 꼭 한번 권해보고픈 풍미. 뜻밖에도 나중엔 예상 외의 취기가 찾아올 수 있으니 두어잔씩 벌컥대려는 이는 요주의.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