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 보려했던 나, 인생의 궤적 하나를 뼈저리게 배웠다
아아.
아아.
눈물이 멈추질 않는군요.
권근택입니다. 기사체는 날려먹기로 하고 (이미 자유로워진지 오래지만) 편안히 쓸게요.
유성우, 보셨어요? 별똥별 쇼. 어제는 정말 관심이 뜨겁더군요. 아래는 오늘 새벽 2시께 포털 다음 실시간 뉴스 검색어 차트입니다.
새벽 4시부터 6시사이가 절정이라...
그래요. 저도 심기일전하고 새벽 4시 30분, 집을 나섰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방도가 없었지만 이젠 하이엔드 카메라도 있겠다, 삼각대도 있겠다... 한번 멋지게 사진까지 찍어보겠노라는 생각으로 나섰습니다.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는 미처 몰랐네요.
새벽 5시경.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정처없이 걷습니다. 동남쪽 하늘이 타겟이라지만 전 거꾸로 북서쪽으로 걸었죠.
강서구는 여러모로 멋진 동네입니다. 서울 치고는 별을 꽤 많이 볼 수 있더군요. 비록 유성비는 보이질 않지만 반짝거리는 별만으로도 센티해집니다 그려. 내가 사는 동네, 서울치곤 정말 별 볼 일 있음에 감탄.
여기저기 찍혀있는 별점. 실제 육안으로 본 하늘은 사진보다 더 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나름 수확이죠.
11월 중순의 서울 새벽은 춥습니다. 장갑을 꼈지만 별 도움이 안 되는 듯. 그래도 마냥 즐거워 걸었습니다. 당초 목표했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문이 걸어잠겨진 상황이라 단념, 이젠 동남쪽으로 향합니다.
이사 온지 1년. 그러나 아직도 낯선 길목이 있네요. 언덕의 비탈진 가로등 길을 걸어가니 사람사는 동네의 불빛은 점차 수그러들고 대신 하늘의 별빛은 점차 밝아옵니다. 감탄할 만 하더군요.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 별헤는밤 중
뭐. 우짜라고.
이쯤하니 그런 생각 들더군요. 유성우를 못 본다 해도 별밤 하나는 건졌다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훗. 말이 씨가 될 줄이야.
골목 위로 올려다보이는 별의 융단. 비록 별자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주 낯익은 나선이 펼쳐집니다. 빛의 나선. 카메라엔 또렷한 별만 새겨질 뿐, 상당수가 잡히지 않아 아쉽군요. 카메라를 탓할수 있으리오. 그저 자동모드에 의지한 본인의 무능함을 탓할 뿐.
자. 그럼 과연 소기의 목적인 유성우를 볼 수 있는가. 그게... 그렇지가 못합니다.
시력 좋으면 전국 어디서나 관측 가능하다메? 대체 어디에 근거를 둔 보도들이었던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서울 치곤 가능성이 꽤 높다 생각했던 이 곳에서도 유성은 볼 수가 없었네요.
(전략)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중략)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조지훈 - 승무 중
아아. 뜬금없어라. 며칠전 수능 언어영역에서 떡하고 충돌했던 싯구가 생각나서 읊어봅니다.
그래도, 카메라를 장시간 노출시켜놓고 기다리면 언젠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카메라가 잡아낼지도 모르죠. 과학책에서나 보던 그 별 폭포수의 멋진 작품을.
해서 이번 출행의 메인 프로그램인 유성우 찍기에 돌입, 어둑한 골목 한 구석을 찾아 삼각대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글에서 사진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답니다. 대신 아주 좋은거 배웠네요.
'삼각대 다리는 그냥 쭉쭉 펴면 되는거지 마디를 돌리면 안 된다.'
삼각대 사용을 한번도 안 해봤던 본인, 어두컴컴한데서 삼각대 다리가 쭉 빠져버린 것을 수습하려다 일만 더 크게 벌였습니다. 왠걸, 플라스틱 부품이 계속 흘러나오는데... 어쩌면 좋아요 삼각대... 수리해야 돼!
결국 시름하며 삼각대와 씨름하다 볼 장 다 봤군요. 물론 유성우도 제게 찾아오질 않았고요...
지금은 삼각대 수리 어디다 맡겨야 하나 검색 중입니다. 돈만 날리게 생겼네요.
삼각대 괜히 갖고 갔어~ 으엉엉~ (그만) 괜히 갖고 갔어~ (뚝!) 괜히 갖고 갔어~ (띠리링~) ...샤악~ 싱긋.
날이 밝아옵니다. 결국 유성우는 보지 못하고, 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세트 하나 사들고 와 심신을 달래는군요.
아... 나 대체 뭐하러 나갔던거지. 이거 뭐 삽질만 하고 왔네.
실은 오늘 개인적으로 중대한 일이 하나 있거든요. 꼭 유성우를 이 눈에 잡아 붙들어놓곤 소원을 세번 빌고 싶었답니다. 이젠 모닝세트 커피의 쓴맛을 인생의 그것인양 음미하며 고개만 도리도리.
그런데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순리인거 같아요. 소원이라는건 열심히 정진한 뒤에 빌어야 하는 것이건만, 전 그렇지 못했네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 그 기회조차도, 나태한 자에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배웠습니다. 좋은거 배웠어요.
훗. 3천원짜리 햄버거 세트로 위안하는 것까지 어쩜 이리도 내 처량한 신세와 꼭 맞는다요.
그래도 단념은 안해요. 지금보니 매년 11월 18일을 전후해 사자자리 유성우 쇼가 펼쳐진다굽쇼. 뭐야 정기 행사였어?
내년엔 꼭 붙들고 말 겁니다. 꿈도, 소원 빌 기회도.
우선은 삼각대부터 고쳐놓고 봅시다.
추신 - 실은 한 순간, 뭔가 쉭하고 지나가는 빛을 봤습니다. 다만 그것이 유성인지 아닌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어요. 정말 유성이라면 비껴가듯, 그렇게 희미하게나마 희망 한 줄기를 얻은 것이겠지요.
추신 2 - 누가 서울서 찾아갈 삼각대 수리점 소개 좀...
추신 3 - ...조회수마저 바닥이면 진짜 난감한데. 나 대체 오들오들 떨며 새벽에 뭐한거지.
뉴스보이 권근택 기자 kwon@newsboy.kr